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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 Oct 02. 2024

묘한 얼굴로 인한 여자들의 누명

卯의 오명

오늘은 브런치에서 새로운 학설을 발표하려고 한다. 

아직 세상에 선을 보인 적이 없는 신선한 레시피로 요리한 학설이다.

감칠맛 나는 요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卯


한 이 글자는 무엇을 그린 것일까?

비교적 단순한 글자이지만 아직 그 누구도 확실하게 이 글자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없다.


지금까지 나온 추측성 설들 중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세 가지다. 


1. 음식을 저장하기 위한 용도로 땅을 파서 만든 움窌을 그렸다고 한다.


2. 개문開門설, 즉 양쪽 문을 열어놓은 모양이라고 한다. 


3. 제사용 희생제물을 두 쪽으로 대칭이 되게 잘라놓은 모양이라고 한다. 


이 중에 주목받는 설은 개문설과 희생제물설이다. 

개문설은 예전에 널리 통용되었던 설이지만 갑골문이 발견되고 나서는 힘을 잃었다. 성형수술을 한 지금의 모습卯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성형수술로 묘卯해진 얼굴 때문에 가장 많이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여성들이다. 매년 새해가 되면 첫 번째로 맞는 토끼날을 상묘일(上卯日)이라고 한다. 이 날은 여자의 금기일이라고 할 정도로 여자를 무서워 하고 피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 남의 식구를 집에 들이지 않고, 나무로 만든 그릇도 들이지 않는다. 특히 여자가 남의 집에 먼저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라고 하였다. 


이 날 여자가 먼저 남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재수가 없어 그 해에 불운이 닥친다고 여겼다. 이와 같은 상묘일의 속설은 묘卯의 성형한 얼굴이, 열린 대문을 닮았기 때문에 생긴 풍습이었다. 그럼에도 그 수명이 아주 길어서 지금까지 그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두 쪽으로 갈라놓은 희생제물설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이 경우 '칼로 자르다'가 원래 뜻인데, 이후 간지로 차용되자, 원래의미는 '금속 칼로 자르다'란 의미의 묘금도卯金刀를 합해 죽일 류로 썼다고 한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최근의 갑골문 연구에서는 고대 상나라에서 죄인의 몸을 절반으로 갈라서 죽였던 형벌을 뜻한 글자라고 한다. 죽일 류劉만 보면 일면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귀울 료聊, 움 교窌, 무역할 무貿 등의 글자와는 무슨 연관이란 말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묘卯는 무엇을 상형한 것일까?

묘卯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백방으로 찾아보다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묘卯를 빼닮은 얼굴을 발견했다. 그 현장으로 가보자. 


여기는 드리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 5번 교향곡이 연주되고 있는 어느 극장이다. 제4악장이 연주되고 있다. 시작부터 격렬하다. 관악기들이 일제히 트릴로 D음을 연주하고, 타악기들이 발맞추어 행진곡 풍의 팡파르를 울리며 출발한다. 다양한 변주는 마치 아름다운 그림 위에 마구 덧칠하듯 투쟁적이고 야만적 파괴행위를 노래하듯이 진행되다가,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어느 순간 템포를 누그러뜨린다. 이윽고 연주는 폭풍처럼 몰아치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다가 갑자기 '챙'하고 울리는 심벌즈 소리에 마저 이루지 못한 꿈에서 깨어난 듯이 약간은 아쉽지만 강렬하게 마무리된다. 



이때 필자의 눈에 들어온 심벌즈는 그 소리만큼이나 강렬하게 내 머릿속 한 편을 차지하고 있던 물음표 하나를 일깨웠다. 한 걸음에 집으로 내달아 컴퓨터를 켜고 심벌즈를 검색한 다음 묘卯자와 대조했다. 묘卯의 글자 형태는 심벌즈 한 쌍을 마주 대하고 있는 모양과 정확히 일치했다. 아마 미제사건을 오랫동안 수사해 온 형사가 범인을 확증하는 단서를 찾았을 때의 기분이 그때의 나의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 어떤 사건의 범인과 닮은 사람을 찾았다고 해서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듯이, 단순히 묘卯를 빼닮은 얼굴을 찾았다고 해서 그 글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반드시 관련된 글자를 통해 검증해 보아야 한다. 먼저 묘卯가 들어간 글자들에서 심벌즈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처음으로 찾은 글자는 귀울 료聊이다. 사람의 귀를 그린 귀 이와 심벌즈 소리를 뜻하는 묘로 이루어졌다. 아마 이명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글자일 것이다. 다음은 움 교窌이다. 이 글자는 움이나 동굴 등을 뜻하며, '깊고 공허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구멍 혈은 움이나 동굴을 뜻하고, 묘는 동굴 속에서 울리는 심벌즈 소리와 같은 울림소리를 뜻한다. 


그 외에 빈 집에서 울리는 메아리를 뜻하는 텅빌 료㡻, 큰 소리를 뜻하는 돌 쇠뇌 포奅, 바람 부는 모양 류飀 등에서 묘卯는 모두 심벌즈 소리를 가차한 것이다. 


  시편 150편을 묘사한 장식물, 이탈리아 두오모

  <출처: Wikimedia Commons>


심벌즈는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타악기이다.  그리스 회화에는 켄타우로스가 왼손에 심벌즈를 들고 있고 바쿠스신의 여사제가 오른손에 심벌을 들고 서로 부딪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심벌즈는 성경에도 등장한다. 임시로 모셔 두었던 언약궤를 궁으로 옮기기 위해서 조직되었던 다윗왕의 오케스트라에 심벌즈가 포함되어 있다.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삼하 6: 5)


이 구절에서 "제금"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첼라찰'이 심벌즈의 다른 이름이다. 첼라찰은 우리말의 '쨍그랑'과 같은 소리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 단어는 '울리다, 진동하다'를 뜻하는 '찰랄'에서 유래된 말로, 윙하고 울리는 곤충의 날개소리나 귀뚜라미 소리, 징과 같은 악기소리를 의미한다. 바로 귀울 료聊, 움 교窌, 돌 쇠뇌 포奅 등의 소리가 첼라찰이 뜻하는 소리이다. 


마찬가지로 죽일 류劉는 원래 심벌즈와 유사한 소리를 내는 칼 따위의 금속을 뜻했다. 이는 물 수를 더한 맑을 류瀏, 바람 소리 飀대나무 소리 류䉧 등이 뒷받침하고 있다. 심벌즈는 크기에 따라 높은 소리와 맑은 소리로 구분된다. 이 중에 맑을 류瀏는 물방울 소리나 금속이 부딪힐 때 나는 소리와 같은 맑은 소리를 뜻하고, 바람 소리 류飀 대나무 소리 류䉧는 높은 소리를 뜻한다. 


심벌즈의 원형인 제금은 다른 말로 자바라, 바라, 발자, 동반이라고도 한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영산재(齋) 바라춤의 바라가 바로  제금의 다른 말이다


바라 혹은 자바라는 중동지방의 찰파라(chalpare)의 한자 표기를 우리 발음으로 옮긴 것이다. 찰파라는 심벌즈와 유사한 형태로 접시 모양의 놋쇠판 1쌍으로 되어있다. 중앙의 볼록하게 솟은 그릇 모양의 가운데에는 손잡이로 사용하는 끈을 꿰는 구멍이 뚫려 있다. 묘卯가 뜻하는 장붓구멍의 유래이다. 이 구멍에 끈을 꿰고 그 끈을 손잡이로 삼아 양손에 한 짝씩 잡고 서로 부딪쳐서 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고려도경』에는 “보제사普濟寺 승당에서 거행한 의식에서 바라를 사용했는데 생김새가 작고 소리가 시름겹다.”라고 하였다. 


바라는 한 쌍으로 된 악기이므로 음양을 상징한다. 바라를 부딪힐 때 음양이 교합하는 형상이 되므로 '한 쌍, 마주 대하다'라는 뜻이 나왔다. 벼슬 경卿에서는 음식을 앞에 놓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을, 묘성을 뜻하는 별자리 묘昴에서는 가장 밝게 보이는 두 별을, 무역 무貿에서는 상인이 마주 앉아서 가격을 흥정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留

그런가 하면, 머무를 류留는 원래 묘卯와 관련이 없는 글자였다. 금문은 강이나 저수지로부터 물을 끌어오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관개수로를 그렸다. 논밭에 물을 대는 모습에서 '머물다'라는 뜻이 나왔다. 후에 남녀 한 쌍을 의미하는 묘卯로 바꾸어 부부가 터전 위에 눌러앉은 모습으로 변형했다.


그 외 버들 류柳에서 묘卯는 은행나무와 같이 암수 딴 그루(자웅이체)가 한 쌍을 이루는 버들을 뜻하였고, 순채 묘茆에서는 바라(심벌즈)와 유사한 모양의 잎을 가진 순채를 뜻했다.   


5월의 맑은 연못에는

청동 바라가 예쁜 꽃으로 피어난다


첫날은 여자로 태어나 작고 단아한 자주꽃을 피우고

다음 날은 남자로 성을 바꾸고 높은 꽃을 피운다 


머리에 바라 양산을 쓰고 있는 모습에 반해

부끄러워 몸을 감춘 물속을 살짝 훔쳐보니


우무로 풀 먹인 무명천 바라 끈이 물결에 살랑이는데

그 모습 비단옷 걸치고 수줍은 여인의 모습이다.


그 모습 卯하여 茆(순채 묘)라 부른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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