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이맘 때면 집집마다 도리깨질로 분주했다. 도리깨질을 할 때는 아이들은 접근금지였다. 도리깨의 회전 반경이 넓어서 자칫 맞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만치 떨어져서 보고 있으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도리깨에 맞아 콩이며 들깨가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어 보였다. 어른들이 잠시 쉬는 짬에 얼른 가서 따라 해 보았지만 보기와는 달랐다. 내 키보다 큰 도리깨를 돌리기는커녕 들기도 벅찼다. 어찌 흉내라도 냈다 싶을 때는 조금 도는가 싶다가 도로 떨어지는 도리깨에 뒤통수를 얻어맞기 일쑤였다. 머쓱하기도 하고 혼이 날까 두렵기도 해서 얼른 도리깨를 집어던지고 돌아서던 기억이 난다. 아마 "타작도 못하는 놈이 도리깨만 나무란다"라는 옛말이 이래서 나온 말일게다.
도리깨는 콩이나 깨, 보리 등과 같은 곡식의 이삭을 햇볕에 말린 후 두드려서 낟알을 떠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를 말하는데, 아닐 불弗이 그것이다. 물론 다른 설도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나무다리(橋)를 뜻한다."라고 했다. 혹자는 화살대를 묶어놓은 것이라고도 한다.
불弗의 갑골문은 나무 막대기 두 개를 끈으로 묶어 놓은 모양이다.
불弗은 도리깨 불柫의 처음자이다.
글자의 형태는 도리깨의 부품 중에 하나인 휘추리(노리 혹은 아들이라고도 한다) 두 개를 끈으로 묶어놓은 모양이다. 휘추리는 직접 마당에 깔아놓은 곡식을 내리치게 되므로 강한 충격에도 부러지거나 갈라지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보통은 재질이 강한 물푸레나무나 닥나무를 이용하여 휘추리를 만든다. 이때 구부러진 것은 불에 구워서 모양을 바로 잡는데,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끈으로 고정시켜 놓는다. 이로부터 '어긋나다, 다스리다'라는 뜻이 나왔다. 후에 이를 빌려 강한 부정의 의미로 사용했다.
이렇게 모양을 바로 잡으면 휘추리들의 모양이 비슷해지므로 '비슷하다'라는 뜻이 나왔다. 비슷할 불彿은 사람이 길을 가다가彳 갈래길을 만나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뜻한다. 이쪽저쪽이 서로 비슷하다彿는 뜻이다. "붕괴현장이 전쟁터를 방불彷彿케 한다."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부처 불佛은 원래 생김새가 비슷한弗 사람人을 뜻했다. 후에 불교가 유입되면서 부처를 뜻하는 범어 '불'의 음역으로 사용되었다. 원래의미에 따르면, 사람이지만 깨달음을 얻어 신적 존재로 거듭난 사람으로 풀이된다.
도리깨의 휘추리를 만들 때는, 먼저 다스릴 불弗을 하여 재목을 곧게 편 다음 보통 2~5개를 바닥에 펼쳐 놓는다. 이때, 펼친 손가락 모양 혹은 부챗살 모양으로 끝을 벌려서 배열한다. 이는 휘추리의 가락끼리 부딪히는 것을 막고 두드리는 면적을 넓게 하여 일의 효율을 높이려는 것이다. 그런 후에 삼줄이나 칡넝쿨 등을 이용하여 서로 연결하는데 얽힌 실 불紼이 그것이다.
불弗의 원래의미는 '떨다'이다. 떨칠 불拂은 손으로扌도리깨弗를 잡고 곡식의 낟알을 떨고 있는 모습이다. 이로부터 '떨이'의 개념도 나왔다. 흔히 시장에서 상인들이 물건을 팔 때 "떨이로 싸게 드립니다"라고 할 때의 그 떨이 말이다. 소비消費, 비용費用, 낭비浪費 등의 비費가 그 뜻으로 쓰였다. 도리깨질로弗 곡식을 떨듯이 돈貝이 떨어져 나가는 것 즉 '소진하다'를 뜻한다.
도리깨질은 혼자 하기도 하지만 타작할 량이 많을 때는 이웃 또는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로 함께 하기도 하였다. 이로부터 '돕다, 보필하다(拂)'라는 뜻이 나왔다. 이 때는 '필'로 읽는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함께 도리깨질을 할 때는 거리를 잘 못 재어 다른 사람이 다칠 수 있으므로 두 패로 나누어 엇박자로 행했다. 이때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 노래를 주고받았는데, 이를 '도리깨질소리'라고 한다. 도리깨질소리는 선창과 후창으로 나뉘는데, 먼저 한 사람이 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후렴을 받는다. 이 모습을 다산 정약용은 '보리타작'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옹헤야 소리 내며 발맞추어 두드리니
삽시간에 보리 낟알 온 사방에 가득하네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는데
보이느니 지붕까지 나는 보리티끌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네...
도리깨질소리에서 서로 호흡이 맞지 않는 것을 어길 불咈이라 한다. 도리깨질에 서툰 사람이 한 조가 되었는지 위의 시와 달리 '소리가 어긋나서 기쁘지 아니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도리깨질로 콩과 같은 곡식을 타작할 때는 알갱이가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데, 그 모습을 끓는 물에 비유한 글자가 끓일 비/용솟음 칠 불沸이다. 발끈할 불怫(艴)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도리깨의 원래 용도는 타작이지만 잡초 따위를 쓰러뜨리는 용도로도 사용했다. 풀 우거질 불茀은 우거진 풀艹을 도리깨로弗 쳐서 쓰러뜨리는 것을 뜻한다. 이 모습에 대해서 [농사직설]에는 '고로(도리깨의 다른 말)를 사용하여 살초하고 씨를 뿌린다"라고 기록하였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는 말이 있다. 일손이 모자라는 가울 추수 때에는 어른들이 도리깨로 타작할 때, 아이들도 아궁이의 부지깽이를 들고 나와 타작을 도왔다는데서 유래한 말이다. 어릴 적, 도리깨로 깨를 타작하는 어머니 옆에서 막대기를 들고 도왔던? 그 시절이 그리운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