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감각

내 인프라는 나 자신이었다

by 최지훈
내 인프라는 나 자신이었다.
-드라마 미생 中-


드라마 미생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1화 2화를 연속으로 감상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웹툰 리스트에 미생이 올라와있는 걸 보고 한 번 봐야지 봐야지 했는데 이제야 드라마로 보게 된 거다.


웹툰이 드라마에 얼마나 사실적으로 반영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극 중 현실이 우리네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다는 건 틀림없었다.


낙하산을 타고 대기업 영업 인턴으로 입사한 장그래.
고졸검정고시에, 무스펙에, 아무 경력도 없다. 복사기도 잘 다룰 줄 모르며 상사와 인턴 동기들에게 무시받기 부지기수다. 바둑에서 성공 못한 유년시절에 대한 아쉬움이었을까? 그는 그렇게 맨 땅에 헤딩하듯이 노력한다. 정말 열심히.


미생.


살아있으나 살아 있지 못한 자.


제목의 의미를 한참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우리 현실을 생각해보게 됐다.

어릴 때부터 학생들은 명문 초중고를 비롯한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를 엄청나게 해댄다. 소위 대학 학벌을 딴 명문대생들은 적자생존의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점하게 된다.


극심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생의 여유를 느낄 새도 없이 미생으로 남게 된다.
아니, 미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현실은 냉혹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의 상태로 있으면 도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업을 위해 대학 4년을 또 바친다.
10종이니 9종이니 이력서에 쓸 스펙을 마련하고 기업마다 치르는 각종 인적성 평가를 준비한다. 면접 준비는 덤이다.
바쁜 학업 생활 중에도 내 사회성을 검증하기 위해 대외활동도 불사하지 않고 수행해내며 내 희생정신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해외봉사활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학생이라면 인턴은 해봐야지, 라는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명제 아래 인턴 생활을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내가 중심이 아닌 회사가 중심이 되는 것. 이 난관을 극복하며 그들은 회사에 입사한다.


입사하고 나서는 어떤가? 당연히 마음 놓지 못한다.
회사에 가면 더 심하다. 노력이라고 해서 무조건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노력이라면 뭉개버린다. 미생의 대사를 빌리자면 '최선은 학교에서 대우해주는 거고 회사는 결과를 대접해주는 곳'이다. 업무뿐만 아니라 사내 인간관계도 고려해야 하며 회식이다 뭐다 참여해야 비로소 회사생활을 잘한다고 평가받는다.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미생인 채로 살아간다.


언제부터인가 미생의 상태가 너무나 익숙해져 버려서, 우리는 생의 상태가 어떠한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생의 감각은 기본적으로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 깨어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 가슴 두근거리는 일을 할 때처럼 말이다.
'돈이면 어찌어찌 다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내 생의 감각을 포기하며 살아온 사람이 대다수다.

우리는 인간이다. 생의 존재다.
왜 생을 포기하고 미생을 종용하는 시스템으로 계속 들어가려 하나.
회사가 요구하는 능력치를 먼저 생각하고, 내가 부족한 게 무엇인지를 생각할 게 아니라
내가 현재 갖고 있는 능력이 무엇이 있는지
내가 무얼 좋아하고 무얼 할 때 가슴이 두근거리는지를 먼저 생각해볼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외적인 부분에는 논리 이성을 외쳐대면서 정작 자기 자신한테는 논리와 이성을 이용하지 않더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미생의 명언이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내 인프라는 나 자신이었다, 라고.


명문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하는 거? 공부로 정말 승부를 보고 싶고 내가 열심히 하는 게 보람차고 뿌듯하다면 해도 좋다. 그 학생은 생의 감각이 넘쳐날 것이다.


좋은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스펙 쌓는 거?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한다면 우리는 미생이 아니라 생이 될 수 있다. 나날이 발전해가는 자기를 보며 뿌듯해할 것이다.


최소한 고민하자.
나의 인프라는 나 자신인가?
아니면 나 자신인 척하면서 다른 데에 의지하고 있는가?

나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될 때, 생이 시작된다.


당신, 꽤 훌륭하다.
당신, 꽤 할 줄 아는 거 많다.
당신,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받을만하다.
무엇보다 당신, 이제는 미생에서 벗어나 생의 감각으로 넘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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