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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Jan 12. 2021

나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교차선들에게

'관계'란 결국은 언젠가 교차점을 찍고 멀어질 뿐

언젠가 한 친구가 내게 모든 인연들은 언젠가 스쳐 지나가고 말 교차선이라고 말한 적 있다.

'나'라는 선과 '상대방'의 선이 평행선이 아닌, 서로를 향해 이어지다가 교차점을 지나친 후 결국에는 멀어지게 되는 그런 엑스선 말이다. 모든 인연은 완벽한 평행선을 이룰 수 없고, 완전히 일자로 포개질 수도 없다.

즉, 이 생에서 인연을 맺는 그 누구라도 언젠가 헤어지게 되어있으며 그 교차점이 다른 사람보다 빨리 만나거나 늦게 만나거나, 혹은 다른 선들에 비해 서서히 멀어지느냐 급속도로 멀어지느냐의 차이일 뿐이라는 뜻이다.


서른이 된 지금 요즘따라 더더욱 그 말이 와 닿는다.

내게 저 말을 해준 친구도 나와의 교차점을 지나 어느 순간 멀어졌다. 대학 시절 내내 함께 붙어 다녔던 친구였지만 달라진 서로의 삶의 방향 때문에 언제부턴가 서로의 안부조차 쉽게 묻지 못하는 사이가 돼버리고 말았다. 

모든 인연은 숱하게 만나고 헤어지기 마련이라지만, 잠시 머무를 뿐 결국엔 스쳐 지나가고 만다는 말이 괜히 허망하게 느껴진다.


돌이켜보니 위 친구처럼 모든 일상을 다 공유하던 친구가 졸업과 동시에 멀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친구는 서서히 멀어지는 탓에 인지하지도 못한 채 멀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

오늘따라 이미 나와의 교차점을 지나 조금씩 더 멀어지고 있는 많은 인연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

내가 떠나 온 인연들, 나를 떠난 인연들, 어쩌면 자연스레 멀어진 인연들 등등.


결혼을 기점으로 나와의 교차점을 지나 어느 순간 멀어져 버린 고등학교 친구,

'나'라는 선과 너무 멀리 멀어져 버려서 교차점 마저 희미해진 옛 연인들,

나는 멀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평행선을 유지했으나, 나와 달리 혼자 급속도로 다가왔다가 급속도로 빗나가버린 이전 남자친구,

내게 한없이 자신의 우울감을 토로한 탓에 내가 먼저 급경사로 멀어져 버린 대학교 친구.


돌이켜보니 내 삶은 가지각색의 사연들을 가진 숱한 교차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끔은 미웠던 사람이지만, 다신 보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애써 피했던 인연이지만, 어느 날 문득 안부를 묻고 싶은 그런 날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내게 교차점을 찍고 멀어져 버린 이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교차점을 찍으며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나이 서른. 적지도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앞으로 만날 인연들이 가득한 나이이기도 함과 동시에 그만큼 안부를 물을 사람들이 많아지기도 한 나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숱한 인연들을 떠나보내기도 하고 맞이하기도 하며 어느덧 서른이 된 지금, '영원'이라는 단어의 무색함을 점점 체감해간다.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랑하는 가족과도 언젠가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언젠가 내게 찾아온, 혹은 찾아올 수많은 교차선들이 결국엔 다 스쳐지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은 더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겠다.

모든 인연은 결국 만남과 동시에 이별 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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