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일기]
내가 고등학생 시절 아침에 등교 준비를 할 때마다 항상 엄마를 바라보며 했던 말이 있었다.
"나도 엄마처럼 하루 종일 집에 있고 싶다. 엄마가 부러워 죽겠다~"
투정과 부러움이 섞인 내 말에 엄마는 어서 등교나 하라며 손사래를 치시곤 했다.
그렇게 아빠와 내가 각각 직장과 학교라는 곳을 향해 집을 나가고 난 후, 나는 엄마가 하루 종일 집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지도 못했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24평 좁은 집에서 크게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을뿐더러, 아마 엄마가 좋아하시던 라디오를 듣고 계시겠지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갑자기 감자탕집에서 일하게 됐다고 말씀하셨다. 그것도 알바생으로 말이다.
아빠와 나는 40대 후반에 무슨 알바생이냐며, 일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주방에서 그리고 홀에서 사람대접하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냐며 강하게 말렸다.
평소에 내성적이시던 엄마는 그 날 만큼은 끝까지 해보고 싶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셨다. 처음에 학교 급식실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겨우 자기를 써준 한 곳이라는 말까지 덧붙히며 말이다.
나는 도무지 엄마가 이해가지 않았다. 급하게 돈이 필요할 만큼 집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서 고생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엄마는 식당에 손님으로 갔을 때 반찬에 머리카락이 나와도 잘 항의도 못했던 위인인데, 그런 성격의 엄마가 넉살스럽게 손님들을 맞이한다니. 고생할 게 눈에 뻔했다.
또 그 당시 어렸던 내 생각을 더하자면, 40대의 엄마가 감자탕집에서 '알바생'으로 일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 감자탕집은 내가 다니던 학교 밑에 있었기에 나를 아는 학교 친구들이 자주 찾아가는 집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부끄럽다기보다는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이슈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저녁 타임으로 알바하셨던 엄마는 3개월 정도 일하신 뒤 그만두셨다. 왜 갑자기 그만두셨냐는 질문에 말을 아끼셨다. 잘리신 건지 아니면 생각보다 너무 고되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쪽이든 본인이 우겨서 시작한 일의 끝마무리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굳이 말하고 싶지 않으셨겠지.
그 뒤로 엄마는 어디서 일해보고 싶다는 말은 꺼내시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일상으로 돌아와 아침이면 나와 아빠의 등교, 출근을 도와주시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여지없이 그 자리에 엄마가 계셨다. 엄마가 감자탕집에서 알바하겠다고 우기시던 그 일은 우리 가족에게 그저 단순한 해프닝으로 지나가버렸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 중이다. 처음에는 출근 안 한다는 사실에 너무 좋았다. 그러나 좁은 방에 혼자 우두커니 노트북만 바라보며 있으려니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단 일주일 만에 재택근무가 질려버린 셈이다.
요즘 부쩍 엄마가 감자탕 집에 일해보겠다고 우기시던 그때가 많이 생각난다. 그리고 얼핏 엄마의 심정이 이해 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 당시 엄마의 마음은 본인만이 아시겠지만, 혼자 방에 하루 종일 있어보니 대략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늘 조금이라도 밖에 나가려고 하셨던 것 같다.
뜨개질, 퀼트, 인형 만들기, 요리, 영어공부 등.. 뭔가를 배우기 위해 종종 외출하셨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외출하기 위해 뭔가를 배우셨던 게 아닌가 싶다.
집을 날마다 나가는 사람 입장에선 안락해 보였던 공간이었지만, 매일같이 집을 지키던 엄마에겐 답답한 감옥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코로나로 집에만 붙어있는 요즘 십여 년 전 감자탕집에서 알바생으로 일했던 엄마가 생각난다.
그리고 같은 공간이 누군가에겐 다른 의미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왠지 가슴이 시큰해진다.
이제는 다 키운 외동딸까지 독립해버린 집에서 공허하게 계실 엄마께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