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다
뒤를 돌아봤는데 돌아가기에 꽤 멀리 온 것 같았다.
그런데 앞으로 또 나아가기에는 이 길이 맞는 건가 하는 두려움이 든다.
까마득한 산 정상, 그렇다고 돌아가기엔 너무나 멀어져 버린 출발지. 그 애매한 중간에 서서 이도 저도 못한 채 꼼짝없이 정지해버렸다. 묵직한 답답함과 함께.
엊그제 회사 상사로부터 더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일해야 할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의 미래가 조금이라도 더 달콤해지기 위해 상사로서 기꺼이 뱉어주는 쓴소리였다.
가끔 유명한 사람의 인터뷰들을 보면 그런 이야기가 꼭 나온다.
“처음에 적성에 안 맞아서 때려치울까 했어요, 이 길이 제 길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버티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래서 더 헷갈린다. 과연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막연함이 훗날 유명해져서 인터뷰했을 때 하나의 후일담으로 뱉을만한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도망가라는 조상신의 신호일까.
성격상 일 욕심은 많고, 어설프게나마 야망은 들끓는다. 이런 나의 욕심에 지금 내 상황이 못 따라주는 것 같아 괜스레 우울해졌다. 게다가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글 쓰면서 작가도 되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다. 그런데 지금 하고 있는 일 또한 사랑까진 아니어도 꽤 좋아한다. 이전에는 다재다능한 것이라 스스로 자위했겠지만, 이제는 갖가지 재능들이 모두 얕아서 이도 저도 안 되는 건 아닌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서른이 원래 그런 나이일까?
나름 이십 대 동안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뭐 하나 이룬 것 없어 보이고, 앞으로 10년은 더 나를 채찍질하며 살아가고 싶지만 이 길 따라 질주하는 게 맞는 건가 싶다. 갔다가 더 돌아올 수 없을 만큼 멀어져 버리면 어떡하지. 가끔은 정말 적성에 딱 맞는 일을 찾아 그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추진력과 집중력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 부럽다.
이런 생각에 한동안 잠식되어 있다가도 관성에 따라 다시 밥을 먹고 잠을 잔다. 그리고 또 출근한다. 이러다 서른 중반이 되고, 또 잠시 이런 고민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어느새 마흔이 되겠지.
오늘도 별 수 없이 세월의 흐름에 그저 나를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