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에게도 우리에게도 봄_립살리스 폭스테일
나무에 새로 돋은 연둣빛 어린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는 봄입니다. 봄이 되면 아파트 단지 안이나 주택가 골목으로 바람을 쐬러 나와있는 화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텐데 이제는 굳이 멈춰 서서 한참을 들여다봅니다. 겨울 내내 남의 집 안에 있었던 식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감탄이 나올 만큼 훌륭한 외모의 식물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태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사람 키를 훌쩍 넘기는 근사한 여인초에서부터 다 죽어가는 공작선인장, 원래 모습을 가늠할 수 없이 말라비틀어진 각종 다육이들까지 다양한 식물들이 길가에 나와 있지요. 꽃집이나 농장에서 싱싱하고 깔끔한 식물들을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집 안에서 키워주는 사람의 손을 타고 그 집안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뭐가 부족했는지 줄기가 쭈욱 웃자라 있거나 잎에 구멍이 나있기도 하고 잎끝은 누레져 있는 게 대부분입니다. 덩치가 커져 화분 바깥으로 터져 나오기 일보 직전인 것들이 있는가 하면 한껏 쪼그라들어 화분이 휑해진 것들도 있죠. 대부분의 식물은 겨울이 휴면기라 푹 쉬며 다음 해의 생장을 준비해야 하는데 환경이 맞지 않으면 긴 겨울의 혹독함에 타격을 입습니다. 그렇게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것 같은 식물들이 꽤 많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봄을 맞아 햇볕 아래 나와 있는 식물들을 보면 따뜻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방치해 놓았던 건지 아니면 정성을 다해 키웠지만 그렇게 되었던지 간에 식물을 키우는 주인은 겨울 동안 비실비실해진 식물을 보고 마음이 아팠을게 분명합니다. 추위에 시달리다 적은 광량에 힘을 잃고 겨울이라 물도 자주 못 먹어 메마른 식물들이 안쓰러워 봄바람이 불기만을 기다리다가 얼른 들고 나온 것일 겁니다. 봄볕과 봄바람에 마지막 희망을 거는 거죠. 죽어서 내다 버린 것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바람 쐬는 중이니 가져가지 말아 달라는 쪽지나 몇 동 몇 호 거라고 이름표가 붙어있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너무 바쁘지 않은 한가진 곳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양 자체가 사뭇 애절합니다.
겨울을 지낸 식물들에게 봄바람은 따뜻한 햇살만큼 중요합니다. 화분 흙 속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어주고 잎들도 실컷 숨을 쉴 수 있게 해 주죠. 답답한 집안 화분 속에서 자라는 식물들에게는 꼭 필요한 일입니다. 다만 갑자기 직사광선을 쬐면 안 좋을 수 있으니 흐린 날부터 살살 내어놓아서 빛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게 좋습니다.
저와는 다르게 식물 금손이신 엄마도 바람의 힘을 믿으셨습니다. 저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지만 비실거리는 식물 때문에 제가 속상해하면 항상 화분을 밖에 한번 내놓아 보라고 하십니다. 도로와 가까워서 창문을 열어 놓기 힘든 집에 살 때 엄마는 종종 1층으로 화분을 들고 내려가 화단에 내어놓았습니다. “거풍 중입니다”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적힌 쪽지를 붙여놓았었죠. 그때 바람을 쐬고 돌아온 화분들은 대부분 제 키를 넘기는 나무들이 되어 지금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바깥에 내어놓은 식물들에는 그동안 잘 돌봐주지 못한 주인의 미안함이 묻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식물은 그 마음에 보답을 합니다. 며칠이 지나 가보면 다시 기운을 차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줄기가 일어서고 제 색을 찾은 잎이 자라나 몰라보게 달라진 식물도 있고 딱딱한 줄기 사이 나오는 연둣빛 새싹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다시 기운을 못 차리는 식물들도 있긴 하지만 이렇게 살아나는 식물들을 보면 구경꾼도 신이 납니다. 봄바람의 위대함에 다시 한번 감격하지요.
가늘고 긴 줄기들이 아래로 처지면서 자라는 식물인 립살리스는 행잉 플랜트로 인기가 좋습니다. 줄기의 굵기와 모양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종류로 나뉘어요. 사진 속 립살리스는 그중에서도 줄기가 가는 편인 립살리스 폭스테일(Rhipsalis baccifera)입니다. 갈대 선인장 또는 겨우살이 선인장이라고도 불리지요. 선인장 대부분의 원산지가 아메리카 대륙인 것에 비해 립살리스 폭스테일은 아프리카나 스리랑카에서도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록색 커튼이 사라락 내려진 것 같은 줄기들을 손으로 만져보면 감촉이 참 좋습니다. 가느다란 줄기가 아래로 뻗는 모습이 비 오는 풍경을 떠올려서인지 립살리스 레인이라는 서정적인 별명도 있습니다. 빼곡한 줄기들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물이 고여있기 쉬워 바람이 잘 통하게 해주는 것이 특별히 중요합니다. 촉촉한 걸 좋아해서 물을 자주 줘야 되는 편인데 물을 주고 난 후에는 특히 통풍에 신경을 써야 하죠. 너무 강한 바람을 많이 맞으면 흙까지 바싹 말라버릴 수 있으니 살살 부는 미풍이 제일 좋습니다.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창가에 걸어놓고 창문을 열어주면 좋습니다.
치렁치렁 늘어진 줄기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언제나 기분 좋은 풍경입니다. 바람이 어떤 일을 해줄지 기대하게 해 주죠. 길가의 크고 작은 식물들처럼 우리도 곧 봄바람을 실컷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립살리스 폭스테일 키우기>
빛 : 반양지에서 잘 자랍니다. 가끔씩 햇빛이 많은 곳에 놓아주시는 것도 좋아요.
물 : 물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 정도 겉흙이 말랐는지 확인하시고 흠뻑 주세요. 속흙까지 다 마른 채 오래 있지 않도록 해야 해요.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며 키우는 다른 행잉 플랜트들과는 달리 흙에 물을 주시는 게 좋아요. 줄기들이 덥수룩하게 덮여 있어 통풍이 잘 되도록 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온도 : 16도에서 25도 정도 따뜻한 곳에서 키워주세요. 겨울에도 10도 이상 유지해 주시면 좋아요.
제가 찍는 식물 사진과 사진으로 만든 포스터는 이곳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40plants/
제가 찍는 다른 사진들은 이 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jhl.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