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짧은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높빛 Mar 28. 2023

반찬통

부모님은 내게 단지 반찬통만을 준 것이 아니었다

  둥지를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번도 날개를 퍼덕여 본 적이 없는 아기새의 날갯짓으로 아기새의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모두 본가를 나오기 전까지는 한 마리의 아기새가 된다. 대학 시절, 나는 자신만의 둥지를 가졌던 사람들이 부러웠다. 옥탑방을 보금자리 삼은 한 형은 자취방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대학 동기들을 불러 밤을 함께 지새웠다. 그의 주변은 조용한 틈이 없었고, 그의 삶이 재미있어 보였다. 아기새는 둥지를 나오면 재미난 세상이 나를 반길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혼자 사는 것은 정말 외로운 일이야."


   "갑자기? 형은 재미있게 살잖아?"


   "재미있게 산다기 보다는, 외로운 하루를 보내기 싫어서 사람을 찾아 다니는거지?"


  20살, 재수와 함께 고향인 대구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형. 가족을 만나는 것은 1년에 명절 두 번을 포함해 4번을 넘지 못하고, 부모님께서는 장사를 하시기에 서울로 상경하시는 것이 어렵다고 들었다. 그런 그의 말이 엄살소리로 들렸던걸까 아니면 나는 나의 둥지가 싫었던 것일까. 바깥 세상을 보고 싶었던 마음에 독립을 마음먹기로 결심하였다. 마음을 굳게 먹고 부모님을 졸라 독립을 허락 받고 싶었으나 부모님께서는 단호한 답변 뿐이었다. 전철과 버스가 연결 되어 있는데 굳이 독립을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나의 요청을 거절하셨다. 내가 살던 곳은 학교와 전철로 연결되어 있어 지방에 거주했던 친구들처럼 물리적인 제약이 존재하지 않았던, 어정쩡한 경기도민의 슬픔이 담긴 동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원 합격이 결정되어 연구실로 출근을 해야 하는 나의 루틴에는 2시간이 넘는 교통편은 절대로 집에서 살 수 없는 상황을 낳았고, 드디어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며 신나한 나는 부리나케 학교 근처 부동산을 방문했다. 아무 연락 없이 무턱대고 방문한 부동산, 중개인이 보여주는 집들은 허름한 집들 뿐이었다. 나같이 막무가내로 들어 온 학생에게는 중개인도 좋은 집을 보여줄 수 없었다. 유튜브, 블로그에서의 초년생들은 본인이 원하는 집을 착착 잡아서 구하던데 난 그러지 못했다는 것에 아쉬움이 컸다. 나중에서야 좋은 매물이 발견되었을 때, 중개인에게 연락해서 부동산 계약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적당한 조건의 자취방을 계약하게 되었다. 첫 자취방. 나만의 공간. 어릴 때부터 들 떠왔던 나의 환상은 부동산 계약을 위해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다니며 훨훨 날려 보냈다.


  대학원이라는 곳은 아기새가 날갯짓을 하기에는 어려운 곳이었다. 사회도, 학교도 아닌 제3의 지대에서 나는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어정쩡한 날갯짓을 구사하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새로운 배움은 곧장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집에서는 돌부처처럼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친구를 만날 힘도, 용기도 나에게는 없었고, 나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자취방은 이내 곧 내가 침전되어 가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하루는 하릴없이 주말에도 과제를 하며 일상을 보냈었다. 우연치 않게 울린 휴대폰을 보고 전화를 받아보니 엄마였다.


   "잘있지?"


   "그럭저럭."


   "연구실 생활은 할만하니?"


   "그냥 뭐. 나쁘지 않아."


   "주말에 쉬고 있을 것 같아서 아빠랑 같이 반찬 가지고 가는 중이야. 집 앞 도착하면 연락 다시 할게."


  엄마의 연락에 나는 벌떡 일어나 집 안에 어질러진 나의 옷과 가방을 정리하고, 밀렸던 빨래를 돌리고 거들떠도 보지 않던 청소기를 틀어가며 사단장님 오기 전의 내무반처럼 내 자취방을 청소하였다. 이윽고 부모님께서 도착했다. 차에서 꺼내진 반찬통은 나의 빈 냉장고를 차곡차곡 채운다. 다 먹으면 그 때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다시 가셨다. 이후에도 부모님은 보름 내지 3주에 한 번 씩 나의 집을 방문했다. 아기새는 나도 하늘에서 날갯짓을 할 줄 안다며,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어미와 아비새를 밀어낸다. 괜한 어린 애의 투정이었을까. 청소하려는 부모님의 손짓을 거절하고, 반찬 가져다준다는 연락에 괜찮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집에서 쉬지 왜 왔어."


   "반찬 만들다가 남아서 주러 왔어. 아빠도 바깥 공기 쐬고 싶다해서 나온거고."


   "자주 오면 엄마와 아빠도 힘들지 않아?"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 너가 대학을 다니는 것, 취업 준비나 대학원을 가는 것은 우리가 너와 똑같은 과정을 겪는다고. 너가"


  이 말을 듣고 내 마음 속에는 뜨거운 것이 끓어 오르는 듯 했다. 사실은 반찬을 하다 남아서 내게 보내는 게 아닌 것을 알고 있고, 바람을 쐬고 싶어 황금같은 주말에 2시간이 더 걸리는 거리를 차로 내달리고 싶은 게 아닌 것을 알고 있다. 단지 아기새의 날갯짓에 함께하고 싶은 그 마음 하나 뿐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송구스러운 이유로 되돌려 보내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나는 혼자 날갯짓을 해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 연인과 친구와 함께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는 역풍을 밀어내며 비행을 해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소중한 부모님의 반찬통. 지금까지의 나를 있게 만든 반찬통.


  오늘도 빈 반찬통을 씻으며 생각에 잠긴다. 비록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의 사랑을 다 '먹었다는 깨끗한 증거' 뿐이지만, 언젠가는 '꽉 채운 반찬통'처럼 든든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생각이 가득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날, 내 소셜 미디어 계정의 과거 피드를 구경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