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김원봉이요
<한국산문> 2019년 8월 게재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요.”
영화 <암살>에 등장하는 약산 김원봉의 첫인사였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 영화에서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암살>에서 김원봉 역은 영화배우 조승우가 연기했는데 그 역이 비중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카메오에 가까울 정도라 저런 조연을 주연급 연기자인 조승우가 맡은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김원봉이요.” 하는 단순한 인사 한 마디에서도 그의 범상치 않음이 느껴져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영화의 내용이 가물가물 멀어질 즈음, 우연히 듣게 된 강연에서 그 김원봉이 어떻게 인사 한 마디까지 강렬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에서 “인물로 보는 항일 독립운동사”에 대한 강연 중 한 시간으로 “항일문화예술가 열전”이라는 제목이었다. 디지털대학 수업시간에 만난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 교수님의 강연이었다.
강연에서 이야기한 주요 인물은 사실 이육사와 김학철이었다. 그런데 내게는 독립운동가 중 가장 억울한 두 사람을 꼽으라면 김원봉과 김학철이고 그중 금메달이 김원봉이었다는 이야기가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궁금한 마음에 자료를 찾다 보니 그는 경찰서 폭파와 요인 암살은 물론이고 의열단을 조직하고 그 단장으로 대규모 암살 계획, 동양척식 주식회사 등에 대한 폭탄 투척 사건 등을 배후에서 지휘 조종하는 등 일제와의 무장투쟁에 앞장선 사람이었다. 중학교 땐가 3.1 만세 운동과 같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일제에 저항했다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가르쳐 주셨던 역사 선생님이 계셨다. 어린 마음에 그렇게 당하면서 맨몸으로 태극기만 들고 대항한다는 것이 대단하다기보다 답답하게 여겨졌다. 그러니 얕보이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했었다. 그 답답함이 김원봉의 투쟁사를 보며 풀리는 기분이었다. 단순히 평화적인 방법보다 무장 대응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는 그들에게 그런 방법도 꼭 필요했다는 생각이다.
그런 인물이 독립이 된 후 친일경찰에게 뺨을 맞고 북한으로 갔고 북한에서도 결국 숙청당했다고 하니 억울한 독립운동가 금메달이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뺨 맞은 사연을 여쭈니 교수님도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하셨다. 자료를 찾다 보니 1946년 대구 10월 항쟁 등과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구금되어 1947년까지 일제강점기 형사 출신의 경찰에게 체포와 고문,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뺨만 맞았을까. 게다가 북한으로 간 이후 1958년 숙청되었을 것으로 추측만 하고 있으며 정확한 사망원인이나 연도도 알 수 없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한 청중이 영화에서 다루었으면 하는 인물에 대한 질문을 했다. 교수님은 그런 생각을 크게 반기며 김원봉을 1위로 꼽았다. <암살>이나 <군함도> 등의 영화를 제작할 당시에 관계자들이 <민족문제연구소>를 찾아 자문을 구했다며 소재가 없는 소설가들은 언제든 찾아와 자문을 구하라는 말씀도 덧붙였다. 그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 <암살>을 만든 영화인들이 김원봉의 역할을 아무에게나 줄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런 인물이니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요.”하는 인사 한마디에도 포스가 철철 넘쳐흘러야 했을 게다. 그래서 주연급 인물에게 맡겼고 나처럼 잘 몰랐던 사람들이 심상치 않은 인물임을 눈치채길 바랐던 것은 아닐까.
학교 다닐 때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역사과목에 재미를 못 느낀 것은 아니었는데 왜 그때는 김원봉 같은 인물을 몰랐을까.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뒤늦게 제대로 문학공부를 해보겠다고 들어온 학교에서 처음 백석이라는 시인을 알게 되었다. 굵직한 인물들이지만 북으로 갔다는 이유만으로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제된 인물들이다. 반쪽의 역사를 배운 결과였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뭘까. 지나간 일들, 이미 죽어버린 인물들의 업적에 대해 연도와 사건을 외워가면서 배우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 간혹, 역사 선생님 중에 역사의 흐름이나 인물에 대해 옛날이야기하듯 재미나게 들려주신 경우가 있었기에 그런 수업이 좋았던 적은 있었다. 한데 어떤 선생님도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 역사를 배우면서 그 속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가르쳐주셨을 수도 있지만 시험에 나오지 않았고, 강조하지 않아서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살아온 시간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자연스럽게 깨달아졌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현명하게 살아내기 위해 또,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닐까.
물론 민족의식이랄까, 선조들에 대한 마음가짐, 즉 그들이 만들어준 이 땅에 사는 후손으로써 당연히 알아야 할 것들을 배우는 것이 ‘역사과목’이긴 하다. 그러나 40년 넘게 퍽퍽하게 살아온 나로서는 그저 ‘민족의식’이나 ‘학문’으로써 역사를 배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 100세 시대라는 지금 앞으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았을지도 모르는 내게 역사나 과거가 미래를 위한 가르침이 되지 않는다면 그저 재미난 소설 한 권,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더 유익한 시간이 될 게다. 언젠가 그런 재미난 얘기 속에 그의 삶과 가르침을 담아 보겠다는 결심을 해 본다. <나 김원봉이요>라는 제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