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원짜리 양심
2018. 9. <한국산문> 신작에세이
“아이고, 하하하. 그냥 너 가져라, 꼬마야.”
초등학교 1학년 봄, 길에서 주운 10원짜리 동전 하나를 들고 의기양양 파출소에 들어간 나를 경찰 아저씨들은 웃으면서 돌려보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선생님이 길에서 물건을 주우면 파출소에 가져다줘야 한다고 했는데? 남의 것을 가져가면 나쁜 사람이라고 했는데, 경찰 아저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동전을 가지라고 했다. 한 명이 그랬다면 나쁜 아저씬가 보다 했을 텐데, 그 파출소에 앉아 있던 아저씨들 몇몇은 모두 껄껄 웃기만 했다. 기분이 나빴다. 나는 남의 것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10원이 큰돈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배웠는데, 이걸 가지고 나면 더 큰 걸 탐내게 될 것만 같았다. 동전을 쥐고 집으로 가는 길, 점점 화가 났다. 길가의 돌부리에 화풀이하던 나는 담벼락 모퉁이에 동전을 패대기쳐버리고 돌아왔다.
그날 그렇게 내 십 원짜리 양심은 길가에 내던져졌다.
낯선 길에서 어느 차 앞을 지나다 지갑을 주운 적이 있다. 첫 직장에서 만났던 남자 친구와 놀러 갔던 때였다. 몇 살 때였는지, 무슨 계절이었는지, 어디로 갔었는지도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남자 얼굴마저도 가물가물한데, 그 지갑이 있던 자리는 정확히 기억난다. 운전석 지붕 위였다. 차키로 문을 잠그는 동안 지갑을 올려뒀다 잊은 것이지 싶었다. 남자 친구는 자연스럽게 지갑을 주워서 나를 끌고 으슥한 곳으로 가서는 돈만 빼냈다. 그러지 말라고 말해야 했다. 그건 주운 게 아니라 반쯤 훔치는 건데, 파출소에 가져다주면 차주를 찾아 돌려줄 수 있을 텐데. 어쩐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두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가져갈 거고, 파출소에 신고하면 귀찮기만 할 테니 그냥 우리가 쓰자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는지, 인상을 찌푸렸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갑 속에 있던 돈은 낯선 곳에서 하루 먹고 놀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다. 지갑은 그냥 버리고 나왔다.
부피가 커진 양심을 내던지던 순간이었다.
“엄마! 이거. 내가 주웠어!”
손을 놓고 한참 뒤처져 따라오던 여섯 살 아들이 의기양양하게 동그란 플라스틱 딱지를 내밀었다. 알아듣지도 못할 캐릭터 이름을 줄줄이 읊으며 신이 난 아이에게 누가 모르고 떨어뜨린 걸 수도 있으니 있던 자리에 두는 게 좋겠다고 얘기해주었다. 아이는 주인을 찾아주겠다며 소중히 챙겨 들고 따라왔다. 크기도 작고 이름도 쓰여있지 않은데 어떻게 주인을 찾아줄 생각일까? 아이에게 물으니 막연히 찾아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아이는 고심 끝에 딱지를 주웠던 근처에 다시 놓아두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이의 양심은 있던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흔히들 ‘양심에 손을 얹고’ 어쩌고 하는 말을 한다. 내 양심은 적당히 어느 길가에 버려두었던지라 손을 얹을 수가 없다. 크게 나쁜 짓을 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아이들을 키우며 가끔 어딘가에 굴러다니고 있을 양심이 콕콕 찔린다는 신호를 보낸다. 정직하게 살기엔 세상이 너무 타락했다는 핑계를 내던지고 십 원짜리 양심을 찾아와야 할까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