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지 못한 그리움, 바람에 실어 보내는 나의 진심
2023년 내 평생의 은인을 떠나보냈다.
마지막 가는 길조차 뵙지 못한 채 보내드려야 했다.
예성의 노래 중 '바람결에 날려 보아요' 가사처럼
닿을 수 없다 해도 꼭 눌러 담은 내 마음을
저 하늘 높이 띄워 바람결에 날려 보내고 싶을 정도로
늘 감사했던 평생의 단 하나뿐인 은인을 떠나보냈다.
그분은 2015년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
내가 몸담았던 영업부의 부장님이셨다.
부장님은 인자하고 따스한 분이셨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를 위해 영업을 다녀오신 후
퇴근 전 시간을 따로 내어 회사 제품 교육을 직접 해주셨다.
그땐 그저 당연한 신입사원 교육이라 여겼고,
철없게도 왜 꼭 퇴근 직전에 불러서
칼퇴도 못하게 하실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이어온 지금에야 안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쪼개어
새내기 직원을 챙기고 가르쳐주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그때는 왜 그것을 몰랐을까.
매일 아침 회의가 끝나면
부동산 이야기, 사모님과 연애이야기,
주말에 다녀오신 여행 이야기를
환하게 웃으며 들려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이야기를 해주며 행복해하던
부장님의 환한 웃음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함께 미소가 지어지곤 했다.
당시 회사는 복지가 좋은 편이 아니라서
명절에 보너스는커녕 선물조차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 부장님은 명절만 되면
사비로 항상 선물세트를 사주셨다.
회사에서도 안 챙기는 걸 꼭 챙겨주셨다.
매번 주시는 게 감사해서 이듬해부터는
몰래 부장님 영업가방에 카드와 함께
명절선물을 넣어두곤 했다.
영업 나가기 전에 보시곤 그렇게 좋아하셨다.
이렇게 평화롭게 회사를 다니던 날이 계속되면
참 좋았겠지만 회사 사정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공장에서는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고
곧이어 사무실까지 그 여파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 중 부장님께서 가장 먼저 퇴사를 하시게 되었다.
4년을 함께한 부장님이 갑작스럽게 떠나셨다.
마지막까지 사무실을 지키다
나도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나오게 되었을 때
부장님은 놀라서 전화까지 하셨다.
회사사정으로 부하직원까지 해고되자
놀란 마음에 급하게 전화주신듯 했다
멀리서도 나를 걱정해 주던 따스한 분이셨다.
부장님과 함께 일하던 2015년은
내 개인적인 사정이 너무나 심각해서
하루하루 버티기조차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직장에서만큼은 달랐다.
주어진일을 맡으며 수월하게 다닐 수 있었고,
회사생활이 눈물날만큼 힘든 적도 없었다.
그땐 미처 몰랐다. 내가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건
언제나 뒤에서 애써주신 부장님 덕분이라는 것을
감사한 마음에 매번 명절엔
꼭 안부전화라도 드리고자 했었다.
그렇지만 그게 말처럼 잘 되지 않았다.
사실 부장님과 직원이 안부전화를 한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있었겠나.
그저 어색함뿐이었다. 잘 지내시죠 부장님?
네 잘 지냅니다. 사실 이 대화가 끝이었다.
어색하다는 이유로 안부전화를 뜸하게 했다.
명절 때도 전화보단 문자나 카톡만 드렸다.
그렇게 늘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도..
늘 내 곁에 계시니까 시간이 지나도
언제든 연락드리고 찾아뵐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게 부장님과 안부연락까지 점점 뜸해졌다.
그러던 2023년 9월, 당시 회사의 중국공장에
계시던 공장장님이 오랜만에 연락 오셨다.
그때 같이 일하던 분의 안부전화에
부장님이 생각이 나서 전화를 드렸더니
바쁘신지 연락을 받지 않으셨다.
그저 바쁘신가 보다 했다.
그러다 종종 연락을 주시던 거래처 사장님과
안부전화를 하다가 부장님 얘기를 했더니
그분이 화들짝 놀라신다.
모르셨냐고.. 부장님 2달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순간 너무 놀라서 내가 뭘 잘못들은 줄 알았다.
7월에 설암 말기 판정받고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미 두 달 전에 떠나셨다니
믿기 힘든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마지막 가시는 길도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같이 일했던 분들께 연락을 돌려서
부장님의 사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부장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못 봬서 죄송하다고..
너무 감사했던 분이라고 했더니 그렇게 우셨다.
마지막 가는 길에 감사했다고 연락하는 사람이
나뿐이었다고.. 가슴 아프게 우셨다.
생전에 항상 베풀고 사는 분이셨는데도..
이런 마지막인사가 나뿐이라고 했다
부장님은 내가 사는 곳과 가까운 추모공원에 계셨다.
추모공원 홈페이지에 고인 검색을 하니
부장님이 계신 곳 정보가 떴다.
기분이 이상했다. 여기서 부장님의 성함이 뜬다는 게..
부장님께 인사드리러 가는 날은
하늘도 쾌청하고 맑은 날이었다.
마치 오는 길 고생하지 않게 편하게 오라고
부장님께서 배려해 주시듯이
뭐가 그렇게 바빴을까..
뭐가 그렇게 전화하는 게 어색했을까.
왜 바쁘다는 이유로 어색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평생의 은인과도 같은 분께
연락을 미루고 살았을까
이후 힘든 회사생활을 하고 나니 알게 되었다.
부장님처럼 마음 따뜻한 분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세상은 나를 언제나 따뜻하게만 바라봐주지 않았다.
이 냉정한 사회에서 개인적인 일로 힘들었을 때도
부장님이 계신 회사에서는 잘 버틸 수 있었다.
그때는 그저 당연한 줄만 알았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그 모든 게 부장님 덕분이었다는 걸,
가시고 나서야 깨달았다.
부장님을 뵈러 벽식봉안당에 가면
앞에 붙어 있는 부장님 사진만 멍하니 보고
한참을 울다가 앉아서
바람결에 날려보아요 노래를 들으며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본다.
그럴 때면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분다.
예성의 노래 바람결에 날려 보아요
가사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듣지 못해도 들을 수 없어도
창가에 기대어 앉아 속삭여보는
나의 이 고백을 용기 내 이제 보내요
전하지 못해 꺼낼 수 없어도
꼭 눌러 담은 맘 저 하늘 높이 띄워
바람결에 날려 보아요"
이 가사에서 전하고 싶었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지금은 전할 수 없는 진심일까
내가 전하고 싶은 마음은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함께하지 못한
바보 같은 부하직원의
살아생전 미처 전하지 못한 진심이었다.
감사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부장님이 계셨기에, 내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그 4년을 버틸 수 있었다.
늘 따스하게 대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사실 부장님이 내 평생의 은인이시라고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차마 말로 다 하지 못한 그 감사의 마음을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결에 날려 보내며
부디 부장님이 계신 하늘에 닿기를 바랐다.
비록 지금에서야 말하는 내 진심이
부장님께서 들을 순 없어도
저 하늘 높이 닿을 수 있게
그렇게 바람결에 날려 보내고 싶었다.
매년 7월이 되면 화훼단지 가서 국화화분을 사서
부장님을 뵈러 추모공원에 간다.
부하직원 오는 길 힘들지 않게
늘 밝게 비춰주시는 듯한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결에 날려보아요 를 듣는다.
가사처럼 흘러가버린 시간을
거슬러 달리면 닿을 수 있을까
더는 부장님께 직접 전할 수 없지만
그동안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켜왔던 감사의 마음을
내 진심을 저 하늘 높이 띄워
바람결에 날려 보낸다.
비록 닿을 수 없다 해도 늘 기도한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내 진심이
부장님이 계신 하늘에 닿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