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동에서의 추억
깃발
유치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나의 손수건은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유년기를 곱씹으며 많은 깨달음을 길어 올렸다. 그 시간에 대한 향수는 30년의 삶을 은은히 채운 향기였다. 다신 오지 않을 날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나는 현재 서울 서쪽의 끝인 마곡이란 동네에 산다. 작년 이맘때쯤 이사 왔으나 이 동네는 내게 그리 어색한 동네가 아니다. 지금은 신도시가 된 마곡 지구가 공항동이라는 허허벌판이었던 시절 나의 영아기와 유년기는 이 땅에서 만들어졌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다른 동네로 갔으니 태어난 후 6~7년 정도를 이 터에서 살았다. 스물 몇 해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지금은 상전벽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눈에 띄게 변했지만 내 기억 속 공항동은 이 땅 곳곳에 남아 있다. 가끔 유년기의 추억이 서린 터를 가보면 그때는 신식이었던 건물이 부서져 있고 재개발 중이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유년기의 주택가가 살아 있다. 그곳은 서울이지만 군부대가 있어서 그린벨트였다. 그러므로 개발되지 않은 지대였고 집 밖을 나서면 전부 논밭이었다.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조그만 동네였다. 함께 시간을 보내던 친구들의 이름도 희미하게 기억나고 어디쯤 누가 살았는지도 아슬아슬하게 기억난다.
어른이 된 지금도 강하게 기억하는 공항동에서의 일화가 있다. 우리 동네에는 아주 크게 짖는 진돗개가 한 마리가 있었다. 나는 그가 너무도 무서웠다. 제발 그가 나를 놀라게 하지 않았으면 하고 매일 빌었다. 우리 집은 2층짜리 주택이었는데 가끔 옥상에 올라가 그가 밖에 나와 있나 염탐했다. 그가 없음을 확인한 후 길을 나서면서도 혹시 밖으로 나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어느날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도 들어 그에게 맞서는 시도도 해보았다. 내 집을 내가 오겠다는데 두려움을 안고 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나는 나뭇가지인지 무엇인지 모를 물체를 들고 진돗개와 싸울 생각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와의 거리가 점점 좁아졌다. 그는 좀처럼 짖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엄청나게 큰 소리로 나를 향해 짖었다. 손에 들고 있던 물체를 떨어트린 채 부리나케 도망갔다. 그는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소리는 막을 수 없었다. 참으로 무서운 개였다.
같은 동네에 살던 형이 있었다. 마음씨도 참 착하고 가끔 동네 슈퍼마켓에서 맛있는 것도 사주던 그런 형이었다. 어느날 형이 자기 집에 나를 초대했다. 그의 집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 그때, 그놈의 진돗개가 큰 소리로 짖었다. 나를 보고 짖었다기보다는 우연히 시점이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엄청난 두려움을 맞이했다. 그의 소리를 듣자마자 냅다 우리 집으로 달렸다. 나를 맞이하러 나오던 친구는 내가 냅다 집으로 도망치고 있음을 보고 영문을 모른 채 쫓아왔다. 집으로 들어온 나는 대문을 걸어 잠그고 방으로 숨었다. 귀를 막고 있었다. 친구가 영문을 모른 채 철로 된 대문을 냅다 두드리고 있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영문을 모르는 진돗개도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 위로 짖고 있었다. 총체 난국이었다. 나는 방문에서 귀를 틀어막고 두려움에 떨었다.
유년기를 돌이키면 이렇듯 겁쟁이인 나를 발견한다. 그곳을 벗어난 이후에도 난 호기롭게 행동하지 못하고 쉽게 겁을 내었다. 왜 그렇게 겁쟁이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글로 정리하다 보니 어릴 적부터 내가 겁을 먹었을 때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터졌을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상과 다르게 삶이 흐를 때 담대하지 못하고 지레 겁부터 먹어버리는 것이다. 겁을 먹으면 침착함을 잃고 방문으로 도망친다. 큰 소리로 짖는 진돗개 소리에 귀를 막는다. 눈도 꼭 감는다.
그러나 상상력을 동원해 뒷이야기를 예상해 보자면… 귀를 막고 버티다 보니 어느새 진돗개 소리가 잦아들었을 것이다. 귀를 막던 나는 겁에 적응하고 이 상황이 예상보다 최악은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때 나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왔을 것이다. 시간이 몇 시간이 걸렸을지언정 분명 나는 방 밖을 나왔을 것이다. 겁은 이내 사그라들었을 것이고 나는 또다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내가 진돗개 소리에 질려 영원히 방에 갇혔더라면 만 서른이 된 지금의 내 삶 또한 없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