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장면들

느릿느릿, 기록1

by 목격하는지혜

우리가 으레 갖는 공의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내가 무언가를 잘못하거나 실수를 저지르면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실 거란 생각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기도하며 공들여 준비하던 어떤 일이 틀어졌을 때 먼저 나에게 숨겨둔 잘못이 없나 살핀다는 이야기다.


즉, 하나님이 나의 간절한 기도를 이렇게 응답하실 리 없다는 하나의 표현이랄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옹졸하신 분도 아닐뿐더러 우리의 어떤 잘못이나 실수가 하나님이 당신의 계획을 틀게 할 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바는 따로 있다. 우리에게 좌절감을 줄만한 일이 닥친다거나 유지해왔던 현실이 무너진다거나 원했던 걸 얻지 못한다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예수님의 십자가가 필요한 죄인이었단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 얼마나 큰 사랑을 받으며 죄인의 굴레에서 벗어났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사실 잘못이나 실수는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부터 지속해왔고, 만난 이후라 해서 불완전한 인간에게 잘못이나 실수가 사라지리란 법은 없다. 여기서 문득 드는 의문은, 그렇다면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미리 경고를 해준다거나, 아니 못 알아들을 수도 있으니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막아준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것.


하지만 알다시피 절대 그러지 않는다. 깊은 이해와 위로, 격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심적 힘은 넘치게 주시나 실수나 잘못이 일으킨 결과는 막지 않으신다. 그리고 우리는 피할 수 없이 다가온 그것을, 우리의 실수나 잘못이 일으킨 결과를 담담히 혹은 고통스럽게(어쩔 수 없으니) 감당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을 한다.


사랑의 하나님의 공의는 이러하다. 우리를 책임질 줄 아는 멋들어진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온전히 성장시킨다. 그러니 괜한 두려움이나 억울함으로 원망하기보다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누며 내 안에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지켜봐보자. 그 안에서 한층 더 깊어질 우리의 모습을 기대해보자.


결국 이러한 고백이 나올 터다. “하나님은 나에게 항상,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것 중에서 최선의 장면들을 허락하셨습니다(심지어 나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상황이더라도). 단 한 번도 최악의 장면을 주신 적이 없죠(내가 최악이라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이제야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