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기록2
노예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로 가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모세는 묻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의 이름을 묻는다면 무엇이라 해야 합니까. 즉, 그들이 모세 자신을 믿고 따를만한 명백한 이유를 달라는 거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모세에게 하나님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스스로 있는 자, 우리가 차마 그 이름을 알 수도 부를 수도 없을 만큼 높고 존귀한 분이, 자신의 이름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칭했다. 누구누구‘의’ 하나님, 언제 어떻게 사라져도 모를 비천한 존재의 소유격이 된 것이다. 심지어 ‘나의 영원한 이름’이자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라고까지 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선하고 악하고를 떠나 정직하고 부정직하고를 떠나 하나님이 삶에 투영된 사람들이었다. 접할 수 없는 창조주의 빛이 혹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이들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었다. 즉, 우리가 지금 접하고 만나고 있는 하나님은, 앞서 걸어간 사람들의 하나님이 켜켜이 쌓여 더욱 분명해지고 선명해진 하나님이다.
어쩌면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란 이름을 ‘나의 영원한 이름’이자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관계를 기반으로 한 이름으로, 이제 여기에 나의 하나님, 윤지혜의 하나님, 누구누구의 하나님이란 이름이 쌓일 것이다.
이전에는 죄, 욕망, 슬픔, 좌절의 노예였던 우리가, 우리를 되찾기 위해 우리의 삶에 직접 임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에 의해, 창조주를 소유격으로 만드는 이름을 얻는 엄청난 축복의 자리에 올랐다. 이 흥분 가득한 사건에 우리를 밀어 넣은 그분의 투철한 열심이, 친히 ‘나의 하나님’이 되어준 그분의 성실한 사랑이 매순간 감사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