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격하는지혜 May 10. 2020

선량한 사람인 동시에 괴물로서의 인간

'슬의생'과 '부부의 세계'에서 '셔터 아일랜드'까지


오늘 가장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드라마 콘텐츠를 꼽으라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과 ‘부부의 세계’다. 흥미롭게도 두 드라마가 세계와 인간을 담는 방식은 극과 극이라 할만 한데, 한 쪽은 인간의 내재된 선함에 힘을 실어 준다면 다른 한 쪽은 인간의 내재된 악함에 힘을 싣는다. 그래서 두 드라마를 번갈아 보고 있노라면, 희망과 회의감을 오가다 예기치 못한 균형감각까지 획득하는 느낌이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공식홈페이지


“걔 때문에 내 인생 이렇게 보내는 게 시간이 너무 아깝더라고요”

tvN ‘슬의생’(연출 신원호, 작가 이우정)에서 악을 담당하는, 즉 보는 이들의 분노를 받아내는 인물은 극히 일부며 그 정도 또한 우리가 보통 목격하고 겪어온 것들, 그러니까 자기 중심의 생각에서 비롯된 이기적인 행동들,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경우가 태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의 이기적인 행태는 드라마가 품고 있는 따뜻한 온도의 세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도리어 비슷한 상처를 지닌 다른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동력이 되어, ‘슬의생’의 세계에 따뜻함을 더한다. 인간 본연의 모습은 악하고 이기적일지라도 노력하면 충분히 선할 수 있는 게 또 인간이라는 사고방식이 드라마의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하나의 장면을 예로 들자면, 실력과 인품, 재치까지 표면적으론 부족함 없어 보이는 의사 ‘익준’(조정석)에겐 바람 난 아내에게 이혼을 당한 상처가 있는데 이것은 남편의 외도로 절망에 빠진 환자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불어넣어주는 위로의 근거로 작용할 뿐이다.


JTBC '부부의 세계' 공식홈페이지


“본능은 남자한테만 있는 게 아니야, 여자라고 바람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야”

이제 상반되는 세계관에 놓인 JTBC ‘부부의 세계’(연출 모완일, 극본 주현)를 이야기할 차례다. 완벽한 삶이라 여기며 살다가 배우자의 외도로 고통을 겪는다는 점, 그리고 직업이 의사라는 점까지 ‘슬의생’의 ‘익준'과 비슷한 ‘선우’(김희애), 하지만 주어진 상황은 좀 더 악독하여,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과 반응은 전혀 다르다. 남편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속여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분노로 바닥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면, 친한 동생이었으나 결국 자신을 속인 사람들 중 하나에 불과했던 이의 남편과 하룻밤을 보내기까지 한다. 일종의 복수인 셈이다. 즉, ‘부부의 세계’에서는 ‘슬의생’과 반대로 본능을 이야기하며 타락을 선택하는 인물은 수두룩하나 본성을 이기고 선함을 선택하려 노력하는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하여 이 세계에는, “사랑한 만큼 원망도 크겠지만 거기서 더 나가면 위험해, 잘못하면 나처럼 인생 망가지는 거야”라며 유일하게 선우를 저지하는 강석(박충선) 외에, 복수에 복수를 더하는 관계로 가득하다.


영화 '셔터 아일랜드' 스틸컷


‘부부의 세계’가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은 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 속 대사를 떠오르게 한다. “세상에 순수한 도덕성은 없어요. 도덕성 자체가 없죠. 진리는 단 하나, 누가 더 폭력적인 사람인가? 사회적 규범이 없다면 당신은 생존을 위해 날 살해하고 내 살점을 뜯어먹겠죠.” 인간의 선함과 도덕성이란 그럴 만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것이며 그럴 만한 상황이 제거되면 본연의 악함과 이기심을 보이는, 뼛속까지 위선적인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극과 극의 관점을 지닌, 게다가 재미있기까지 한 두 드라마가 동시에 방영하는 덕에, 우리는 둘 사이를 오가면서 인간이 지닌 양면성을 목격하는 기회를 얻으며 우리의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이쯤에서 스스로에게 문득 드는 질문은 이것이다. ‘셔터 아일랜드’의 주인공이 마지막에 던진 물음으로, 비록 맥락은 좀 다를수 있지만, 어쩌다 그럴 만한 상황, 즉 타의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선함이나 도덕성을 지킬 만한 상황이 제거되었다 가정할 때 당신은 괴물로 평생을 살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량한 사람으로 죽겠나.


by. 윤지혜


영화 '다크나이트' 포스터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의 빌런은, 또 누군가의 히어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