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 온’, 부족함 없는 청춘들의 소통법
JTBC 드라마 ‘런 온’은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온 청춘들이 만나 사랑을 하는 이야기다. 물론 여기서 세계란 국적을 운운할 때의 공간과 장소가 아닌, 이들이 현재까지 꾸려온 삶의 모양새를 지칭하는 것으로, ‘런 온’에 등장하는 중심 인물들은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신기할 정도로 제각각의 세계를 살아가며 제 세계의 언어를 쓰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통을 한다.
“앞으로 뛸 것보다 여태 뛰었던 것들에 미련은 남았죠.”
먼저 ‘기선겸’(임시완)부터, 국회의원 아버지와 영화배우 어머니, 세계 랭킹 1위 골퍼 누나에다 본인은 육상 국가대표선수다. 실로 엄청난 가족력을 지닌 그는, 이런 조건의 인물들이 으레 갖곤 하는 허세나 거들먹거들먹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실은, 보통 정도의 이기심마저 발현되지 않아, 곁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정잡배’ 된 기분을 겪게 만드는 기이한 인물 유형이다.
“외국어 번역보다 그 사람이 한 우리말 한마디가 훨씬 더 어렵고 해석이 안될 때가 많아요.”
이러한 선겸과 상반된 세계에서 살아온 여자가 오미주(신세경)다. 부모를 여의고 홀로 자라나야 했던 불우한 어린 시절은 그녀에게 누구보다 강인한 정신력과 강단, 독기 등을 선사하여, 상대가 누구라도 절대 기가 죽지 않는, 후에 비굴해질 상황이 올 수 있다 하더라도 할 말은 다 하고 마는 오늘의 그녀를 만들었다. 게다가 실력 좋은 외화번역가이기도 하니, 제 삶 또한 야무지게 가꿔온, 그야말로 멋들어진 여성이다.
“겨우 이 정도에 상처 받은 눈깔 하진 말고, 방금 그 패기 넘치던 학생 어디 갔어?”
이해타산에 철저한 사업가이면서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대할 줄 아는 마성의 인물, 서단아(수영)도 빼놓을 수 없다. 서명그룹이란 재벌가의 첫째로 부족함 없이 자랐을 것 같지만 배다른 형제들과의 끊임없는 라이벌 구도 속에서 본인의 몫은 알아서 챙기며 살아와야 했다. 이 성장과정이 어쩌면 비뚤어질 수 있는 시절을 성취감으로 채우면서 그녀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열등감이나 우월감 대신 높은 자존감을 장착한, 콩가루 재벌집안이 배출하기 쉽지 않은 이단아적 기질을 가지게 되었다.
“공감능력이 되게 쓰레기신 것 같아요.”
누가 이런 여자에게 다가설 수 있을까. 적어도 그녀와 유사한 세계에 속한 사람어이야 하지 않겠나 싶다만, 여기 겁 없이 덤벼드는 아주 보통의 대학생, 미술 학도 이영화(강태오)가 있다. 태오의 흥미로운 점은 단아와 자신이 속한 세계의 거리감을 아주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면서, 두 세계의 서로 다른 위치나 차이에 압도되지도, 자존심 상해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하나의 객관적 사실로서만 받아들이며 두 세계의 거리를 어떻게 뛰어넘어 그녀에게 갈 지가 고민일 뿐이다.
속한 세계의 색감을 뚜렷하게 띠고 있는 이 네 존재는 ‘런 온’이 제공하는 로맨스의 영역 아래에서 서로 마주져 얽힘으로써 소통을 하고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겪는다. 그로 인해 이들이 속한 각각의 세계 또한 접촉하게 되는데, 여기엔 비교의식이 만들어내곤 하는 못생긴 감정들이 출몰하거나 충돌하는 법이 없다. 마치 인물들을 따라 각각의 세계 또한 자연스럽게, 차이가 아닌, 서로의 다름을 인식하며 소통하는 느낌이다.
인물들의 성격적 매력이 주어진 세계의 틀을 압도할 정도로 상당한 데다가 배우들에 의해 아주 생생하게 구현된 결과다. 덕분에 ‘런 온’의 세계에서만큼은 양극화 현상이 가져오는 문제들이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배경과 상관없이 인물 그 자체를 보게 하여, 다들 저마다의 상처와 고민이 있지만 저마다의 저력을 가지고 있어 이겨내고 성장할 줄 아는, 더없이 충만하여 부족함 없는 청춘들임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자라온 이들이, 저마다의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꾸밈 없는 소통과 사랑을 나누어갈 수 있는 이유다. 팽배한 비교의식 속에서 소통은커녕 다른 이보다 한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 아등바등 해야 하는, 그럼에도 부족하고 또 부족한 게 당연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더없이 비현실적인 지점으로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로 되찾아야 할 모습임을 또 알기에 ‘런 온’의 세계 속 인물들의 소통 방식에 더욱 눈과 귀를 기울이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