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이’의 의심이 계속되어야 할 이유
가끔은 시청률에 상관없이, 본 사람들마다 화제작으로 품는 드라마가 있다. 흔히들 하는 말로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그런 작품. 배우 이영애의 복귀작이란 꼬리표로 시작했으나 곧 작품 그 자체의 매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아 마니아층을 형성한 드라마 ‘구경이’의 이야기다.
죽여도 되는 사람들만 골라 죽이는 연쇄살인마와 한 순간도 의심을 멈출 없는 전직 경찰의 쫓고 쫓기는 하드보일드 코믹추적극, JTBC ‘구경이’(연출 이정흠, 극본 성초이)가 막을 내렸다. ‘구경이’가 막 시작했을 때, 범죄를 다룬 여타의 장르물과 별다르지 않은 모양새일 거라 생각했다. 여기에 특출 난 지점이라면 배우 이영애의 섭외 정도였을까.
하지만 ‘구경이’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나니, 캐릭터의 설정부터 다루는 방식과 이를 담아내는 연출력 등 모든 요소의 조합이 세련되어 어디서도 본 적 없을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그 속에서 이영애는 주인공 구경이를 맡은 배우에 불과할 뿐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을 꼽자면 주인공과 적대관계에 놓였던, 일명 악역 캐릭터들의 만듦새다. ‘구경이’에 등장하는 악인은 두 종류다. 우선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지닌, 살인 그 자체를 즐기는 ‘케이’(김혜윤)와 그녀와 상반된, 우리의 주변 어디에선가 있을 법한 보통의 사람들이 있다.
‘표면적’으론 ‘구경이’에서 절대악이라 할 수 있는 케이는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 일말의 죄책감도 갖지 않는다. 그녀에게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유희이기도 하고, 그녀가 살인의 표적으로 삼는 대상은 거의 대부분, 누군가에게 죽일 놈이 될 만한 행동을 저지른, 그러니까 그 누군가에게 죽어 마땅한 사람들인 까닭이다.
이렇듯 나름의 정당함을 확보한 살인은, 사법망을 피해갈 만한 꽤나 비상한 머리까지 타고난 케이에게 일종의 재능기부다. 물론 그녀에게도 어린 시절 아빠가 엄마를 죽이고 자살을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사연이 있으나, 이는 내재된 살인 본능을 일깨우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뿐, 다른 의미는 없다.
그리고 앞서 케이를 ‘표면적’으로는 절대악이라 표현한 이유가 되는 ‘용숙’(김해숙)과 그녀에게 더없이 안성맞춤의 하수인 ‘김부장’(정석용), 비록 용숙은 권력층이긴 하다만 케이와 달리 본인의 노력 혹은 선택에 따라 보통의 도덕률을 가질 수 있었던 사람이란 점에서 ‘보통의 사람들’에 포함된다. 악행이 보통의 사람들에게서 행해질 때 더욱 공포스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어쩌면 케이보다 더 진정한 악인으로, 복지원을 운영하는 등 사회 정의에 나름의 관심을 가진 척 하지만 알고 보면 도덕성이 제거된 인물인 용숙은 자신의 목적에 방해가 된다면 그 누구라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없애버리고, 김부장은 그녀의 지시라면 그것이 무슨 악행이든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지른다.
결국 경찰에 잡힌 순간에도 김부장에겐 지은 죄에 대한 뉘우침은커녕 더 이상 맛집 블로거로서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의 아쉬움만 느껴지니,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경계선이 없기로는 악행을 지시한 용숙이나 그것을 따른 김부장이나 매한가지인 것이다.
비정상적인 욕구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는 악인과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악인, 누가 더 악할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구경이’는 이 두 유형의 악인을 얽히고설키게 하여 세계를 더욱 혼돈에 빠뜨린다. 무엇도 믿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속에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구경이의 존재는 더없이 믿음직스러운 인물로 부각되며, 덕분에 우리는 작품에 한층 깊이 몰입되고 만다.
해당 장르에 있어, 이토록 매혹적인 만듦새의 악인들과 이들이 이루는 정교하고 깔끔한 형태의 구조를 맞닥뜨리는 기회가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이것을 알아본 이들이 ‘구경이’의 마니아들이 되어 시즌 2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