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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Dec 19. 2019

들키기 싫은 비밀

페브리즈 세례를 받은 수경이

처음 KFC를 가본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장미원이라는 동네에 살았는데, 배철수의 음악캠프 배순탁 작가도 말했듯 그다지 잘사는 동네가 아니었다. 정거장 이름도 다 이상했는데 장미원 앞 정거장 이름은 가오리였다. 나는 가오리와 장미원 사이 개미골목에서 살았다.

KFC는 우리 집에서 5정거장쯤 떨어진 덕성여대 입구에 있었다. 그 옆에는 한국에 슬슬 들어오기 시작한 세븐일레븐이 있었는데, 슬러시가 엄청난 이슈였다. 90년대 꼬마들이 아는 슬러시란 좀처럼 사먹기도 힘든 간식이었다. 운 좋게 산다한들 주인이 컵 위로 얼마나 봉긋하게 담아줄까 쳐다보며 두근대는 것이지, 감히 직접 담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세븐일레븐에서는 컵을 산 뒤 4가지나 되는 맛을 스스로 골라 담을 수 있었다!

버스비도 없던 동네 아이들 사이에선 다섯 정거장을 걸어가 세븐일레븐에서 슬러시를 먹고, KFC에서 치킨버거를 먹는 것이 대유행을 했다. 나도 그 치킨버거를 본 적이 있다. 별다른 소스나 야채도 없이 그저 커다랗고 먹음직스런 닭튀김이 동그란 빵 안에 들어있어서, 한입 베어물면 커다란 치킨과 마요네즈가 반대쪽으로 쭉 나오던 그것 말이다.

나는 용돈을 받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감히 가볼 생각은 못했다. 친구들이랑 어울리며 구경이나 하는 축이었다. 다행히 나는 단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치킨버거는 느끼할 거라 생각했기에 그다지 괴롭지는 않았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지켜내는 법이다.

상상 속에서만 보던 치킨버거를 실제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나는 동네 교회에서 성가대를 했는데, 대학생 선생님이 오늘 간식은 KFC라고 했다. 평소 성가대석 구석에 초코파이 상자가 놓여있던 걸 생각하면 파격적이었다. 드디어 나도 치킨버거 한 개를 혼자 다 먹어보겠구나. 설레어하며 걸어가던 다섯 정거장의 골목 골목이 아직도 선연하다.  

그러나 나는 치킨버거를 받지 못했다. 다소 늦게 도착한 나에게 선생님은 버거를 살 돈이 다 떨어졌다고 했다. 대신 뻑뻑한 비스켓과 음료를 사주었다. 다음에 꼭 사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선생님과 다시 KFC에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돌덩이같은 비스켓을 씹으니 목이 탔다. 성가대를 나만큼 성실히 나온 아이는 없었는데.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치킨버거를 먹은 아이들은 한번 나오면 두 번 빠지는 아이들이었는데. 안개가 낀 듯 뿌연 기억이지만, 그 비스켓은 별로 맛이 없었던 것 같다.

롯데리아에 처음 가본 것은 중 3때의 일이다. 미아삼거리점에서 딸기 쉐이크를 샀다. 그때에는 단과로 학원을 다니는 것이 유행이어서, 나도 단과를 두어 개 끊어서 수백 명이 한꺼번에 듣는 학원을 다녔다. 학원 친구와 같이 들어간 롯데리아는 참으로 어색했다. 무엇을 어떻게 주문하는지도 몰라 친구가 주문한 대로 받아먹었다. 나는 쉐이크를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딸기 쉐이크라니! 얼마나 시원하고 달고 부드럽던지. 아이스크림을 처음 맛보는 앤 셜리처럼, 이렇게 맛있는 것을 팔다니 하고 소스라쳤다. 이런 느낌을 친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던 것이 생각난다. 나는 사르르 녹아내리는 쉐이크를 꼼꼼하게 핥아먹었다.  

그 날도 수경이가 보건실을 찾아왔다. 말수도 적고 표정이 없던 아이였다. 감정 표현도 하지 않았다. 표정만큼이나 옷차림도 칙칙한 회색빛이었다. 속상한 얘기를 할지언정 울지는 않던 수경이가 그날은 울었다.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때는 여름이었고, 장마철이었다. 수경이는 반지하 집에 살아 빨래가 잘 마르지 않았다. 선풍기를 틀어 잘 말려서 입고 왔지만, 같은 반 친구들이 수근거렸더란다. 야, 어디서 꼬랑내 안 나냐? 이거 아주 팍 쉰 냄샌데. 등에서 진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수경이는 더욱 굳게 입을 다물었다. 수경이의 바람처럼 고통은 빨리 지나가지 않았다. 반 아이들이 가방을 뒤적이더나 페브리즈를 꺼냈고, 수경이 주변에 칙칙 뿌려댔다.

차라리 수경이에게 옷이 잘 안 말랐는지 냄새가 난다며 말을 걸었다면 상황이 더 나았을까. 자기한테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면서 직접 말하지는 않고 서로 눈을 맞추고 깔깔대며 페브리즈를 뿌리는 것이 너무나 상처가 됐다며 엉엉 울었다.

당연히 나도 나쁜 냄새가 싫다. 아이들이 떡 진 머리로 와서 자고 싶다고 하면 난감하다. 보건실 예산으로는 1년에 4번 밖에 세탁소를 이용할 수 없다. 베겟잇은 수시로 손빨래를 하거나 집에 가져가 세탁기에 돌린다.

수경이는 아직 미숙한 청소년이다. 어려운 형편에 최선을 다했어도 냄새나는 옷을 입고 학교에 올 수밖에 없다. 수경이가 감추고 싶어한 마음을 나는 알 것 같다. 마지막까지 들키고 싶지 않았던 마음, 들켰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대로 아닐 거라고 부정하고 싶은 그 마음을 나는 이해한다.

나는 KFC에 처음 왔다는 걸 끝까지 숨겼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지만 남들이 늘 먹는 치킨버거 따위 부럽지 않은 척을 했다. 꿈꾸던 치킨버거 대신 비스켓을 받았어도 섭섭하지 않고, 처음부터 먹고 싶지 않은 양 모른 척 해야 했다. 나는 롯데리아에서 1000원 남짓 하던 딸기쉐이크를 사먹는 게 얼마나 큰 지출인지 친구에게 들키기 싫었다. 내가 돈이 없다는 걸 알아챌까 봐 더욱 명랑하게 굴었다. 나는 수경이고, 수경이는 나다. 수경이의 덜 마른 옷을 해결해 줄 방법은 없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같은 반 아이들이 너무 했다라고 말해줄 수도 없다. 수경이가 어서 크기를, 집안 형편이 더 나아지기를, 모두가 다 비슷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위생관념이 없고 게을러서가 아니라 피치 못할 사정으로 냄새나는 옷을 입고 등교해야 하는 친구도 있다는 것을, 그까짓 냄새 따위 좀 참아줄 너그러움을 우리 학생들이 갖게 되길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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