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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May 17. 2022

스승의날에 대한 소회

없애던가 옮기던가

오늘은 월요일

아침부터 1학년 4반 교실이 왁자하다.


벌써부터 보건실에 찾아온 학생에게

'어느 반이 타이밍을 놓치고 뒷북을 치냐'하니

아프다던 아이도 웃는다.


올해는 스승의날이 일요일이어서

대부분 13일의 금요일이던 지난 주에

반마다 떠들썩히 잔치를 다 치뤘다.


아마도 그날 행사를 놓쳤던 1학년 7반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이 섭섭했을까봐

조회시간부터 세레모니를 치르나보다.


나도 그날에 손님 1명이 찾아왔고, 사진 1장을 찍었는데

손님 1명은 3년 내내 희귀질환으로

보건실을 드나들던 졸업생이었다.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더니,

보건선생님한테도 인사드리라고 해서 왔다며

음료수를 사와서 선생님들께 나눠줬다고 뿌듯해한다.

나는 음료수 종류를 먹지 않지만,

나에게 줄 음료수는 들고 오지 않은 아이에게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학교에 와서 기분이 좋은 졸업생에게

학교 다닐 때보다 이뻐지고 씩씩해졌다며 한껏 격려하고,                                                                  찾아와줘 고맙다고 인사해서 보냈다.


그리고 사진은, 내 사진을 찍은 건 아니다.

내가 이웃사촌이라고 부르는 옆반 반장이 찾아와서

자기반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단 한명도 빠질 수 없으니

나더러 와서 찍어달라고 한다.

내가 왜 찍어줘야 돼~하고 툴툴거렸더니

아이~ 선생님은 착하시잖아요~ 한다.

내가 착해서

너희들이 필요할 때마다 사진사도 됐다가

짜증받이도 됐다가 해야 되는 건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자기네 행사에 들러리 서달라는 것 쯤에

맘상할 내가 아니다.


이쁘게 서봐, 그래그래, 너, 여기 보고,

자 사진 찍고 싶으면 보건샘한테 칭찬샤워!


하고 레크레이션 강사마냥 활기찬 멘트를 날리자

보건선생님 이뻐요, 착해요, 고마워요 난리났다.


그래그래 너희들이 뭘 알겠니,

아직 아가들인 걸.

그렇게 감사하고 고마워할 줄 알면서 크면 됐다 하고

세로로 가로로 원하는 대로

사진을 실컷 찍어주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보건교사를 막 시작했을 적에

원인이 정확치 않은 간염을 앓고

늘 시들시들 기운이 없이 보건실을 들락날락하던

아빠랑만 살던 학생이 있었다.

나는 아마도 심한 오지랖이었겠지만,

그 아이가 걱정스러워서

약사 친구가 권하는 간영양제를 사서

꼬박 석달 간, 매일 아침 보건실에 오게 해서 먹여

졸업시킨 적이 있다.

아이는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다.

대학에 간 것만 안다.


몇년 뒤 우리 학교 학생이 보건실에 와서

'선생님 저 과외하는 대학생 언니가 선생님 안대요.

선생님 너무 좋은 분이래요. ' 한다.

누굴까? 궁금했는데


그 아이가 그 아이였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의 선행은, 아니 나의 초보교사로서의 열정은

어딘가에 닿아 있었나보다.


나는 간호사에서 교사로 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스승의날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스승의날에 나의 포지션은 영 애매하다.

괜찮은데 괜찮은 척 한다고 다들 의심해서 곤란하다.


그리고 꼭 축하받아야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교사가 동네북이 된 나머지, 스스로 교권을 말하는 시대다.

교권은 커녕 인권도 있는건지  없는건지 헷갈리는 시대다.

스승의날이 없어지던가,

아이들에게 강요된 축하를 받지 않아도 되게

방학 중에 스승이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 괜찮은 직장인으로 사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무슨 날을 정해서 축하받기엔 어색하고,

또 딱히 축하해 줄 학생들이 있지도 않다.

보건교사를 기억할만한 아이들은 대부분

건강하지 못해서 자기 자신을 돌보기도 힘든 아이들이기에

굳이 축하받을 마음이 없다.


올해도 연례행사가 지나갔다.

찬란한 5월이다.

그래도 한우는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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