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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May 11. 2022

방문사유

Welcome to my office

원래도 참새방앗간인 보건실이

코로나19 이후 더더욱 방앗간이 되었다.

온갖 곡식들과, 곡식들을 빻으러 온 사람들과,

곡식들의 구수한 먼지들로 가득한 곳이 방앗간이라면

보건실에 방앗간이라는 표현은 매우 찰떡이다.


보건실에도

온갖 사연들과, 사연을 들고 온 아이들과, 그 친구와

아이들 특유의 솔직함과 다양성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몰려온 아이들의 호소들을 듣고,

처치해서 교실로 돌려보내려면

시간이 너무 벅차서

궁여지책으로 보건일지 양식을 출력해두고

방문사유를 적게 하고 있다.


아이들은

오늘이 며칠이에요?

벌써 이렇게 많이 왔어요?

뭐라고 써야될지 모르겠어요. 하면서 질문을 쏟아내지만,

자신의 불편함을 자기 스스로 표현해보는 것도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서

잘써야 되는 것 아니니까 나름대로 써봐. 하고

도와주지 않는다.


간간히 나를 크게 웃게 하는 내용들이 있는데,

올해 두번째가 나타나서

같이 웃자고 올려본다.


첫번째는 이것이었다.

예전에 브런치에 올린 적이 있을 것이다.

양무릎이 깨진 아이가 춤을 추다가 그랬다길래

도대체 '모고'가 뭐길래 너를 춤추게 하더냐?하고 물었더랬다.


모고=모의고사

그러니까 고1이 되서 처음으로 보게 된 전국연합고사인데,

왜 그것이 춤까지 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이의 반어법을

눈치없는 보건샘이 못 알아들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 글을 올리게 한 두번째

가스통!!!!

으응? 가스통???


그러나 나는 찰떡같이 알았들었다.

가스가 차서 배가 아프다는 거야?

아픈 아이는 고개만 끄떡끄떡 한다.


아침은 먹었니?

언제부터 아프니?

어제 응아는 했니? 등등


몇가지 건강사정을 하고서 아이에게 위로가 될만한

가장 무난한 약을 한 알 주어 보냈다.


가스통을 '들고' 다시 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2단계로 나의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 것이다.

얼음여왕 엘사가 우리 학생의 배를 따뜻하게 해줄 것이다.


그래도 또 위험천만한 가스통을 들고 오면

나는 보건실에서 쉬어보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3단계까지 거치고도 안된다고 하면

병원에 보내거나 보호자께 연락을 드리게 될 것이다.

이게 내가 세운 보건실의 프로세스이고,

아마 대부분의 보건선생님들의 프로세스가 아닐까 한다.


오늘도 바쁘게 시작된다.

그러니 잠깐 숨돌리고 앉아 있을 때,

심심하시겠어요? 같은 신소리는 하지 말자.


보건교사를 하면서 심심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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