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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Nov 28. 2019

집만 아니면 어디라도

-  가출청소년, 선아

선아가 사라졌다. 평소 선아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키던 아이였다. 항상 교실 뒷편을 지키는 대걸레나 빗자루마냥 묵묵하게. 문제를 일으키거나 사고를 친 적도 없었다. 특이점이 있다면, 장애를 가진 한부모 가정의 아이라는 것 뿐이다. 아이가 사라졌으나 학교에 전화를 할 수도, 찾아올 수도 없는 보호자를 대신해 교사들이 선아를 찾아 헤맸다.   

갑자기 사라진 아이는 갑자기 나타났다. 가출한지 열흘 만의 일이었다.   

“보건쌤, 저 자퇴할래요.”

선아가 제일 먼저 내뱉은 말이었다. 함께 온 이모 역시 체념한 듯 보였다. 고집이 대단해요, 아무도 못 이겨. 입모양으로 속삭이는 이모와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집에 있기 갑갑해서 가출했어요. 처음에는 친구네 있었어요. 며칠 있으니까 눈치 보여서 이모네 집으로 갔어요. 알바를 찾았는데 구하기 힘들더라고요. 그러다 방학 때 일했던 까페에서 다시 오라고 해서요. 낮타임이랑 저녁타임이랑 뛰면서 돈 벌었어요.”  

“자퇴 후에는 뭘 하고 싶어?”

“저는 커피를 좋아하니까 학원 다니면서 바리스타 자격증 딸 거예요. 시장님이 저더러 재능있다고 했어요.”

“그건 학교 다니면서도 할 수 있잖아.”

선아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모네 집 근처 학원이 저녁 여섯 시에 시작해요. 학교 다니면 시간 맞추기 힘들어요.”

“그럼 다른 학원을 알아보는 건 어때?”

이번에도 선아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다시 알아보는 건 싫단다. 학교에 대한 미련이나 친구에 대한 아쉬움도 없어보였다.

“선생님, 저는 사실 학교에 왜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배우는 것도 없고요. 제 인생에 도움이 안돼요. 중학생 때는 수학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모르겠어요. 잘하는 애들 위주로만 진도를 나가니까 따라갈 수가 없어요. 이젠 포기했어요.”

선아는 잠시 머뭇거리다 부끄러운 듯 고백했다. 학교에서 좋았던 건 보건실에서 달콤한 사탕이나 캬라멜을 얻어먹는 것뿐이었다고. 별 일 없이 찾아와도 별스럽지 않게 맞아주던 보건샘이 제일 좋았더란다. 솔직히 나는 선아를 주의 깊게 살펴본 적이 없었다. 보답할 길이 없는, 너무 늦게 눈치 챈 짝사랑이었다.

“네가 자퇴한다니까 어머니는 뭐라시든?”

“네 맘대로 하래요. 제가 고 1때부터 계속 학교 다니기 싫다고 했거든요. 원래도 거의 대화를 안 해서 잘 모르겠어요. 별로 친하지도 않고, 저한테 관심도 없어요.”

말끝에 선아가 피식 웃었다.  

“선생님, 근데요. 저는 엄마가 장애인이라고 표창장 받은 적도 있어요. 전교생 앞에 불려나가서, 막, 엄청 쪽팔렸어요. 내가 뭐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웃기죠.”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선아는 당차보였다. 알바하는 까페 사장님이 제조법을 가르쳐 준다니 열심히 배워서 나중에 까페를 차리겠단다. 학력이야 검정고시를 치르면 될 것이다. 친구는 사회에서 만나면 된다. 선아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 아이에게 학교에 계속 다닐 것을 권유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자신보다 그 인생에 대해 깊게 고민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사된 입장으로 자퇴를 마냥 밀어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휴학을 하면 어떨까, 학교와 학원을 병행할 방법은 없을까, 담임선생님과 함께 이런저런 제안을 해보았다. 그러나 선아는 흔들림이 없었다.            

“쌤, 저요. 가출하니까 정말 행복했어요. 집만 아니면 어디서라도 잘 살 자신 있어요.”

선아는 교복치마를 툭툭 털고 일어나 이모와 함께 보건실을 빠져나갔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이 가출하는 가장 높은 원인은 부모님 등 가족과의 갈등이 70%로 가장 높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집을 떠나는 아이들의 마음은 한결같을 것이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7.1%). 선아가 자유의 대가를 기꺼이 감당하는 어른으로 커가기를 바랄 수밖에.   

결국 나는 선아를 믿고 응원하는 쪽을 택했다. 지금처럼 진지하게 걸어간다면 올바른 길을 선택할 거라 지지해 주었다. 선아 말대로 사장님이 되어 학교 앞에 까페를 차리면, 매일 아침 그곳에서 커피를 사갈 것이다. 더 이상 너의 보건샘이 되어줄 수 없으나 미래의 단골 손님이 되겠다고 마음으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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