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논리적 글쓰기
논리학을 수강하는 학생들의 기대와, 난생처음 보는 논리학이라는 교과서를 탐독해서 구성한 것은 ‘서평 쓰기’였다. 내가 자신 있게 수업에서 운영할 수 있는 매개체는 역시 책이었다. 나의 전공인 독서교육과 논리학에서 강조하는 논리적 글쓰기 단원을 접목해서,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절충안이었다.
수업에 대한 학문은 생소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방법은 나의 전공에서 찾았다.
5. 계획
난 계획형 인간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그냥 돌아다니는 종이에 정신없이 할 일을 적어놓고, 하던 일 하다 다른 일 하다 다시 하던 일 하는 그런 정신없는 유형이다. 계획을 세우면서 생활하지만 세운 계획을 다 한다거나 순서대로 계획을 실천하는 건 아닌, 뭐 그런 사람. 논리학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1학기 동안 진행할 수업에 대한 진도 계획과 평가계획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 일은 낯설었다. 그리고 어려웠다. 내 하루 계획도 엉망진창인데 한 학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니. 임용고시 준비하던 시절, 불과 작년 초에 9개월의 장기 공부계획을 세웠다. 막연한 계획이 흐지부지 되어 허름해진 기억은, 장기계획을 세워야 하는 일 앞에서, 나의 자신감을 조금씩 부식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계획서의 빈칸들을 채워나가기 위해, 차분하게 차시별로 수업 내용을 정하고 계획했다. 어느 순간 보니 막연했던 서평 쓰기 수업이 체계를 찾아가고 있었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 학생들이 알아야 할 지식, 그들의 필요와 흥미에 맞는 도서를 스스로 선정할 수 있게 내가 제공해야 할 정보원, 서평이라는 글을 작성하기 위한 세독 방법 등등. 계획서를 작성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어떻게 수업을 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 이 수업을 통해서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에 대한 가닥이 잡혔다. 글을 쓰기 전에 주제를 정하고 목차를 구성하는 일처럼. 그리고 수업에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것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다. 처음에는 계획서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 시작했지만, 수업에 대한 나의 빈칸에도 무언가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5. 시작
코로나19로 학생들과의 첫 만남은 온라인 클래스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작이 참 어려운 일이었고 전혀 알지 못했던 생소한 일이었다. 수십 년 간 수업을 해오신 선생님들도, 아니 교직 사회 전체가, 온라인 수업이라는 이 커다란 변화 앞에서, 새로운 세계에 당도한 신규의 마음으로, 혼란했다.
모든 게 생소한 이 곳에서, 어떻게든 공부한 분야와 접목해서 수업을 구성했고, 어떻게든 하려고 시도했다. 하기 싫다고 안 할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단지 내가 맡은 수업이라는 책임감으로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 큰 의미와 재미를 느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세계로 툭 떨어진 느낌이었는데 나름대로 잘 적응하고 물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큰 일을 해냈다는 느낌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는 시간을, 이상하게 더 편하고 안락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낼 때마다 기분이 좋았던 것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인 것 같다.
6. 만남
온라인 클래스를 마치고 드디어 대면 수업을 하게 되는 날이었다. 처음 보는 학생들의 눈. 마스크 너머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운 날이 길었다. 이게 맞는 건가, 내가 정말 수업을 해도 되는 일인가, 학생들한테 감히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다른 선생님들은 도대체 어떻게 수업을 하는 것일까. 수업은 많이 들었어도 해본 적이 없으니 뭘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운 날들이었다.
처음에는 교탁을 벗어나는 것이 무서웠다. 교실 사이사이를 돌아다녀도 될까, 굳이 감시하는 것처럼 아이들을 불편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공연한 걱정들을 해댔다. 그래서 난, 교실 앞쪽에서 고작 교탁 근처를 왔다 갔다 하는 수업을 했다.
한 번은 독서시간을 주는데, 분위기가 들떠서 떠드는 무리들이 있어 책상 사이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 뭐하시나요 ?
그저 배시시 웃는 학생의 얼굴에, 공연한 나의 긴장이 풀렸다. 교탁에서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은 딱딱했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눈을 맞추고 말을 걸 때의 얼굴은 영락없이 맑았다. 집단 속에서의 학생과 개인으로서의 학생은 또 달랐다. 허공을 보며 집단에게 말하는 나와 학생 한 명의 눈을 보며 그 아이에게 말을 하는 내가 다르듯이. 나는 교탁 앞을 벗어나서 학생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말을 하고, 말을 걸고, 대화를 했다.
7. 실현
첫 시간에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정적 속에 이야기를 이어가던 나는,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통과해 이제는 교실을 유유자적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익숙해졌다기보단, 학생들이 나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이 가장 큰 안심이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은, 수업을 잘하는 선생님이기도 했지만, 사서교사라는 꿈을 꾸게 해 주었던, 친구 같았던 선생님이다. 책이라는 매개체로 의미 있는 대화를 이끌어 가면서도 우리와 동년배 느낌으로 친근했던 선생님. 나도 커서 저렇게 제자들에게 친한 언니처럼 대화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조금씩 실천되고 있는 듯했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을수록 잃는 것은 없고 오로지 얻는 것만 있었다. 그 아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내가 해야 하는 것, 기억해야 하는 것. 잃는 것이 없었음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교실 속에서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모두 경험으로 승화시키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과 처음엔 실수를 해도 괜찮다는 명분이 그런 의지를 다듬어 준 것 같다. 좋은 아이들을 만난 덕분이기도 하지만.
도서실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첫 수업을 함께한 43명의 제자들. 고작 한 학기 교양수업으로 제자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양처럼 떨리던 목소리로 교탁 앞에만 서 있던 선생님을, 교실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서, 조금은 편하게 말하고 눈을 맞출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그 과정을 지켜봐 주어서, 함께 해줘서,
우리 논리학 학생들에게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