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날이라고 말이다. 목욕하다가 젖은 수건을 건조기에 돌려두고,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았다. 똑같은 브런치인데 어느 날은 하얀 여백이 꽉 찬 듯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고 (글이 잘 안 나올 때를 말한다) 또 어느 날은 대차게 써 내려가는 요술 지팡이 같다. 각자의 이야기를 뿜어내고 또 누군가는 우리의 글을 읽는다. 사실 글쓰기도 습관이다. 글쓰기 근육이 붙어있지 않으면 시간이 주어져도 자리가 주어져도 커피가 주어져도 쓰기 어렵다. 나는 요리나 살림에는 관심이 없다. 많이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내 관심사에서 조금 떨어진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하는 대신에 맛있는 반찬을 그때그때 사 먹는다. 한 달에 한두 번쯤은 청소 요정님을 요청한다. 그러면 집이 훨씬 깔끔하다.
분야마다 전문가는 늘 있다. 나는 그림책 성교육 전문가다. 30 중반에 집 근처 작은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책과 친해졌다. 자기 계발, 에세이, 독서에 관한 분야를 읽어나갔는데, 그중에 몇 권은 나의 인생 책이라 불러도 좋은 정도로 나의 인생 방향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아이들의 독서교육에 관한 책도 있었다. 책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야?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 거기서 거기는 아니다. 나랑 맞는 책이 있고 맞지 않는 책이 있을 뿐이다. 나의 의식 수준이나 타이밍에 찰떡같이 맞아떨어지는 책들은 나에게 인생 책이 된다.
이상화 작가님, 김병완 작가님, 짐 트랠리즈, 육일약국 약사님은 그 당시 나에게 감명과 깊은 깨달음을 준 작가님이다. 책을 오랜 기간 아주 많이 읽어주라는 메시지를 접하고 나는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책은 또 다른 책을 불렀고 아이와 함께 도서관 나들이를 시작했다. 책은 그림책으로 연결되었고 아이에게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책이 쓰고 싶어졌다. 제대로 원고 작성하는 법을 배우고 책이 한 권 두 권 출간되기 시작했다. 만약 거기에서 멈추었다면, 책과 함께 성장도 멈추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계속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좋은 생각에 원고를 지속해서 응모하고, 그 글은 브런치에도 연재하기 시작했다. 방문간호사를 3년 동안 하면서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매일 아침 적어서 내려고 갔다. 그 당시 투고한 원고가 한 출판사와의 인연으로 계약하기도 했었다.
당시 인연을 맺었던 더블엔 출판사 대표님과 함께 작업한 책이 바로 <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성교육>이다. 202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에 출간된 의미 깊은 책이다. 내 인생에 책을 꽂으라면 나는 단연 이 책을 꼽고 싶다.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어준 책이기 때문이리라. 브런치스토리에 올린 그림책 성교육 원고 글을 보고 도서관사서가 강의 요청을 한 것을 시작으로 ‘그림책 성교육 전문가’라는 자리를 만들어 나갔다. 세상에는 이미 존재하는 일과 직업도 많지만, 아직도 만들어지지 못한 직업과 일도 정말 많다. 완벽한 직업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림책과 성교육을 함께 구상해 성교육을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신선하고 재미있고 쉬웠다. 특히 성교육은 십 대 청소년에게만 해당하는 거 아니야? 라는 기존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과 틀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4세, 5세 유아 친구들이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성교육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 절실하게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육이 많지만, 학교 교육에서 빠져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돈 교육, 성교육, 책 교육이다. 하루하루 생활하고 살아가는데, 돈은 정말 중요하다. 돈의 가치를 알고, 돈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루어지는 성교육은 인문학이다. 수학이나 영어처럼 분리해서 교육받을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나를 가장 잘 아는 부모와 함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성교육이 이루어질 때 자신을 지키는 힘을 키우고 더불어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다. 책 교육은 어떨까? 내가 강의할 때마다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어주던 부모도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글자를 알기 시작하면 책 읽어주는 행위를 멈추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이다. 우리는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책이라는 건 즐거움이자 놀이, 재미로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 꾸준히 이어져야 하는 친구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책들은 진도와 과제, 숙제에 치우쳐 아이들도 어른도 책에 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책의 재미를 알려면 재미있는 책을 많이 만나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은 부분만 보아도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조건 글 책만 보는 게 아니라, 만화책도 원 없이 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나 역시 이런 책의 재미를 30대가 훌쩍 지난 어느 시점에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육아하면서 집 근처 작은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하던 무렵 나는 책의 재미를 ‘처음으로’ 알기 시작했다. 책이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사실을 처음으로 느꼈다.
책을 읽다 보니 책에 나온 작가들처럼 책이 쓰고 싶어졌다. 독서 노트를 적고 나에게 필요한 글쓰기 강의를 들어가며 나는 그렇게 내 인생의 첫 번째 책 <책 먹는 아이로 키우는 법>을 출간하게 되었다.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10권의 책을 출간하는 다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성교육 전문 강사’로 활동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책이라는 소재로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읽힌다. 내가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상담하진 않지만, 책은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나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나의 책을 통해 강의 요청을 하거나, 개인적인 상담이나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어쩌면 내 인생에 가장 필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나의 단어가 한 줄이 되고, 한 줄이 모여 5줄 10줄이 되는 경험은 글쓰기를 시작하고 꾸준히 글쓰기를 실행하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값진 경험이다. 누구나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나는 글을 못써. 라는 평생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글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의 경험이 있고, 인생의 고난과 역경을 버티고 지내오는 모든 이들이 쓸 수 있는 것이 글이다. 나라는 사람이 고난과 역경을 맞닥뜨리면서 어떻게 이렇게 지내오게 되었는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용기를 주고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방법이 바로 글쓰기다.
글을 쓴다는 건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다는 뜻이다. 내 글을 읽고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아가시라는 뜻이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원 없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은 시기가 있었고 반납하는 당일 원 없이 책 사진을 찍은 시간이 있었다. 추운 겨울날 책을 담고 다니던 책 캐리어 바퀴가 난간에 부딪혀 깨지는 시간이 있었고, 추운 겨울바람에 벤치에 앉아 책을 보던 시간이 있었다. 책에 원 없이 내 시간을 내어줄 때 책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주변에 책이 널려있고 침대 곁에 책이 있다는 건 내가 책과 친해졌다는 뜻이다.
첫째 아이의 주변에도 책이 널려있다. 유튜브를 보고 영상을 보더라도 아이는 책으로 다시 돌아온다. 읽고 싶은 책이 곁에 있고 보고 싶을 때 책을 본다. 아이는 책과 소통하고 책을 늘 곁에 둔다. 소설도 좋고 만화책도 좋고 자기 계발 에세이도 좋고 경제 서적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있다면 그 책에서 시작해도 좋다. 고명환 작가의 말처럼, 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 재미있는 책을 만나지 못한 것이라는 말에 나도 백번 천번 동의한다. 당신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당신의 흥미를 일으킬 만한 재미있는 책을 만나지 못해서다. 재미있는 책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주변에 서점이나 책방에 가도 좋고, 20권 가까이 빌릴 수 있는 도서관에 가도 좋다. 마음껏 책을 빌려오고 마음껏 책을 반납해보자. 다 읽어도 좋다. 20권 중 단 한 권이라도 마음이 끌리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을 마음껏 읽어보자. 책이라는 건 자유를 줄 때 비로소 책이 나에게 다가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책이 재미로 다가온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내가 책을 싫어했던 사람이었고 왜 책이 싫었는지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책을 안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어떻게 하면 책이 재미있고 쉬워질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책이라는 재미를 알기 시작하면, 글도 쓰고 싶어진다는 사실도 말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내가 하는 일이 나의 가치를 만든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군가 보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묵묵히 내 글을 쓸 때 한 줄 한 줄 축적된 글이 모여 내 인생의 글이 만들어진다. 이때까지 남의 글을 보기만 했다면 이제는 나의 글을 써보자. 재미있는 글을 보기만 했다면, 이제는 나만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번 적어보자. 책을 마음껏 읽고 만나는 경험은 인생에 한 번쯤 꼭 필요한 일이다. 책과 함께하는 여행은 나만의 가치 있는 자산으로 돌아온다. 책을 싫어했지만, 책과 함께하는 경험 덕분에 책이 좋아지고 글 작가로 사는 나처럼 당신의 일상에도 책의 재미가 내려앉았으면 좋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나는 앞으로도 책의 재미를 전하고 그림책 읽어주기의 힘을 전할 것이다. 그게 곧 내 인생의 사명이자 인생의 의미일 테니 말이다.
p.s
<쓰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않는다> 최고북스에서 3번째로 출간 예정인 원고 내용 중 일부입니다.
누군가의 일상에서 따스함이 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힐링이 되는 그런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공동저자님들과 함께 책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