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글 -운이 좋은 아이에서 얘기한 대로 내 딸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불운을 겪으며 살아왔고 앞으로 또 어떤 난관이 길을 막아설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내 큰딸이 지금까지 운이 좋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실력을 갖춘 덕에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언제나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주변의 고마운 분들 덕을 본 것도 사실입니다.
나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몇 년 전 퇴사를 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출근을 하지 않는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일상의 규칙이 무너지고 무기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긴장감 있는 생활을 하기 위해 생활계획표를 짜기로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방학 생활계획표처럼 보기 좋게 만들어 벽에 붙여 둬야겠다 싶어 인터넷에서 생활계획표 서식을 검색했습니다. 그리고 만다라트라는 재미있는 생활계획표를 발견했습니다. 만다라트 계획표 작성법은 가로, 세로 9칸씩 모두 81칸의 사각형 모양의 양식의 맨 가운데에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최종 목표를 적는데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8칸에는 목표와 현실화할 실천 계획을 키워드 형태로 적어 나갑니다. 또다시 8개의 행동 계획을 하위 목표로 삼고 각각의 8칸에 그 하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실천 계획을 채워 넣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도서 출간을 올해의 목표로 정했다면 글을 쓰기 위한 체력이나 건강 관리를 해야 합니다. 주기적인 운동, 식단 관리 등 구체적인 실천 항목을 적습니다. 출판 이전에 홍보를 하려면 블로그나 유튜브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천항목에 블로그에 글쓰기나 유튜브를 키워드로 적어야 합니다. 출판사 담당자와의 소통이나 기획도 중요합니다. 출판사 담당자와의 소통을 위해서 필요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어 나갑니다. 하나하나 총 64 개의 세부 항목을 만들고 실천해 나가다 보면 핵심 목표에 가까워지는 원리입니다. 내가 생각했던 시계 모양의 계획표는 할 일을 시간 단위로 정하는 것이라면 만다라트 계획표는 거시적인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오타니 쇼헤이라는 일본 야구 선수가 만다라트 계획표를 활용했다더군요. 내 큰딸과 연배가 비슷한 그는 이제 갓 20대 중반인데 야구천재라는 호평을 들으며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계획표에는 대부분은 야구 선수가 갖춰야 할 육체와 기술을 연마하는 실행 목표가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실행 항목이 눈의 띄었습니다. 인간성과 운이라는 항목입니다. 감성, 사랑받는 사람, 계획성, 감사, 지속력, 신뢰받는 사람, 예의, 배려, 라는 실천을 통해서 인간성의 목표를 세우고 인사하기, 쓰레기 줍기, 부실 청소, 심판을 대하는 태도, 책 읽기. 응원받는 사람, 긍정적 사고, 물건을 소중히 쓰자, 라는 실천 항목을 통해서 운을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더군요.
오타니 쇼헤이는 운을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으로 간주하지 않고 계획과 실천을 통해서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이 그런 깨달음을 얻은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현명한 선배나 어른의 지도가 있었거나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나는 그의 계획표를 보면서 실패를 하더라도 금방 다시 회복할 힘이 있는 청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타니 쇼헤이의 만다라트 계획표
나도 한동안 운을 내 맘대로 관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게 타고난 운만은 아닙니다. 타고난 운에 인생을 고스란히 맡기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좋은 학력을 만들기 위해서 공부하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경제적 풍요와 윤택한 삶을 위해서 부지런히 일합니다. 평생의 행복을 좌우하는 결혼을 하는데 하늘이 맺어준 인연만 기다리는 사람도 없겠죠. 모두 좋은 운을 바라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운에 맡긴 채 방관하지도 않습니다.
금수저를 이길 수 있는 재물운이 얼마나 될까요. 그래도 재테크에 해박한 사람은 아쉽지 않게 재산을 모으기도 합니다. 유전적으로 유리하게 태어나 건강운이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허약하게 태어났어도 꾸준히 관리를 하며 천수를 누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관운이나 학업운도 타고난 운명보다 노력이 중요합니다.
나는 가끔 오늘의 운세나 일 년 운세를 재미 삼아 볼 때 반드시 등장하는 단어 하나가 나를 항상 신경 쓰이게 합니다. 귀인이라는 단어입니다. 단기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필요할 때 적절한 도움을 주거나 기회를 물어다 주는 사람이 귀인입니다. ' 동쪽에서 귀인이 나타나 바라던 일을 성취하게 될 좋은 운세입니다 '라는 오늘의 운세를 보는 날은 하루 종일 그 귀인이 누굴까 촉각을 곤두세우게 됩니다. 아무리 재미로 보는 오늘의 운세라지만 나를 도와줄 귀인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하루 종일 나를 흥분시킵니다.
나는 사실 인복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주변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 중에 한 부류가 인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인복은 인맥과는 좀 다른 느낌입니다. 인맥은 막연하고 넓은 범위의 관계라면 인복은 가까운 사람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맥이 좋아야 인복도 있겠지만 인맥이 좋다고 모두 인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운세 속의 '귀인'같은 존재가 적재적소에 나타나 꼭 필요한 도움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인생이 될 겁니다.
내 큰딸은 그런 면에서 운이 좋은 편입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주변에는 항상 귀인이 존재했습니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가상하게 여긴 어른들 덕분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정말 타고난 운명은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에 좋은 사람이 항상 존재했습니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 나타나 도와줬습니다. 엄마로서 감사하고 기분 좋은 일이지만 부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사를 하느라 짐을 싸다가 발견한 큰딸의 오래된 다이어리를 떠들어보다가 어렴풋이 인복도 노력으로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딸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깨알 같은 글씨로 다이어리를 쓰고 있습니다. 굳이 컴퓨터 같은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종이 다이어리를 사용합니다. 내가 본 것은 큰아이가 다니던 캐나다 작은 마을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그날그날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신 내용을 적은 것이었습니다. 일종의 알림장 같은 것인데 거의 날마다 아이들에게 권하는 좋은 말씀을 해주셨던가 봅니다. 그 내용을 아이는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를 해두었더군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인간관계가 좋다. 감사할 줄 알아야 좋은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 부지런히 남을 도와야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신뢰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다. 실력이 신뢰를 만든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실력을 알려라.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리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 누군가 나를 돕게 하려면 그 사람이 나를 돕는 것이 헛되지 않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동료와 협력을 할 때 상대가 양보받고 있다고 느끼고 빚진 기분이 들도록 하라. 진심이 없는 관계는 무너지기 쉽다. 나의 성공과 실패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나의 행운과 불행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통해서 온다.’
주옥같은 말씀이지만 사실 너무 많은 곳에서 들을 수 있고 누구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내 딸은 단순히 어록처럼 메모해두는데 그치지 않고 실천 항목을 빼곡히 적어 두었더군요. 예를 들면 남을 도와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문구 아래에는 언제 누굴 왜 도왔는지 적혀 있었습니다. '감사할 줄 알아야 좋은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라는 문구 아래에 누구에게 어떤 감사를 표 할 것인지 계획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그 감사를 표했는지, 상대의 반응은 어땠는지 결과까지 적어 두었더군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려야 한다는 대목 아래에는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실천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선생님이나 선배들에게 조언을 듣거나 친구들과 의견을 나눈 내용이 깨알 같은 글씨로 요약해서 적혀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 다이어리에 기록된 내용을 보니 한국에 돌아와서도 비슷한 실천을 했더군요. 성실함과 실력을 보여주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버릇을 실천하려 애썼습니다. 예의와 질서를 지키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다이어리 어느 페이지에는 빨간 볼펜으로 '욕먹을 짓 하지 말자'라고 쓰여있더군요. 늘 주변 사람들의 평판에 신경 쓰고 자기 관리를 한 것입니다. 고작 중학생이었으니 영악하게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거나 운명을 관리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단지 초등학교 때부터 연습 해온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다이어리를 보관하지 않았던지 찾을 수 없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만, 내 큰딸은 수시로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조언을 얻었고 비교과 활동을 하면서 만나는 어른들과 두려움 없이 소통하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공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노력과 열정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애썼습니다. 무엇보다 도움을 받은 어른들께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언제나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큰딸 주변에는 항상 귀인이 존재했습니다. 돌아보면 주변에서 도와준 분들이 없었다면 아무리 공부 잘하고 성실하다고 해도 결과가 좋았을 것 같지 않았다며 딸은 늘 그들에게 고마워합니다. 언젠가 은혜를 갚을 날을 고대 하기도 합니다.
내 딸은 사람의 운명은 인간관계에 달렸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인복 좋은 내 딸은 꾸준히 운명 관리를 한 셈입니다. 그마저도 인간관계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 주신 좋은 선생님을 감수성이 풍부하던 초등학교 때 만난 인복 덕입니다.
내 딸의 다이어리와 오타니 쇼헤이의 만다라트 계획표를 보면서 공통점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타니 쇼헤이가 관리하고 싶어 했던 운이란 결국 인복 있었습니다. 운의 세부 실천 항목을 보면 대부분 타인의 평판을 중요하게 생각한 듯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도 인간관계가 모든 운을 좌우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 딸은 의도한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인간관계를 관리를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아직은 좋은 쪽으로 운이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운도 관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인복은 복중에서도 가장 잘 관리해야 하는 중요한 복입니다.
자녀에게 좋은 재물운을 물려주려면 돈을 물려주는 것보다 경제 교육과 재테크 교육을 해야 하고 건강운을 위해서 꾸준히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학운이나 관운은 말할 것도 없이 다양한 방식의 교육을 통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인복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다른 운이 아무리 좋아도 궁극적인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오타니 쇼헤이의 계획표와 내 딸의 다이어리를 보고 깨달았습니다.
엇비슷한 실력을 갖춘 경쟁자들 틈에서 우열을 가리는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다면 주변 사람들의 평판입니다. 진정성 없는 아부나 불성실한 태도로는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실하고 부지런해야 하고 실력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자신을 보야줘야 합니다. 겸손이라는 덕목을 중시하느라 실력을 감출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사람과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자주 연락하고 관심사를 공유하고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해가 되는 관계는 과감하게 멀리할 줄 아는 결단과 기술도 필요합니다.
인복은 다른 어떤 운명보다 중요하지만 부모가 대신 관리해주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부모의 영향으로 인맥이 좋아질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관리를 잘하지 못하면 인복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인복을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 성적만 신경 쓰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가르치치 못하는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거나 작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사람이나 관계 때문에 쓰러지는 일도 많습니다. 반면 좌절을 겪을 때마다 사람 덕분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니 세상을 살아가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복은 인복입니다.
성공한 위인들은 반드시 고난과 시련의 시기를 지나더군요. 어느 누구도 평탄하게 늘 성공만 하는 위인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귀인이 나타나 도와줍니다. 마치 우연 같지만 사실은 미리 관리된 인복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