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살다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한국 교육이 부모(엄마)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습에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습니다. 물론 아주 낯선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캐나다도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모여 play date를 하거나 아이의 예체능 활동을 이끌어 갑니다. 때로는 단순히 모여서 노는 단계를 넘어 좀 더 적극적으로 구성원을 관리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팀을 만들어 강사를 초빙하고 스케줄을 조정하고 커리큘럼까지 관여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 그룹은 자연스럽게 해체됩니다.
어느 사회나 자녀 교육에 적극적인 부모는 있게 마련입니다. 캐나다에는 열일 제쳐두고 아들의 하키 선수 생활을 뒷바라지하는 (hockeydaddy) '하키 아빠'가 있습니다. 북미에서는 극성스러울 정도로 아이를 이끌고 가는 부모를 타이거, 잔디깎이. 헬리콥터로 분류해서 부릅니다. 어디나 그런 부모들의 행태를 곱게 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굳이 조롱 섞인 이름까지 붙여 따로 분류를 하겠죠.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 자기 자녀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까지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이른바 돼지 엄마입니다.
내가 경험한 돼지 엄마는 우수한 아이의 부모(주로 엄마)로, 자기 아이의 공부나 비교과 활동에 같이 참여할 아이를 ‘선발’합니다. 워낙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라서 자기주장이 명확하고 리더십도 강합니다. 수완도 좋고 교육이나 입시에 관한 정보력도 대단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사교육 시장과 끈끈한 연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이득을 확실히 챙깁니다.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 얼마 안 됐을 때 캐나다에서 알고 지내던 지인을 만났습니다. 그이는 나보다 먼저 한국에 들어와 영어 개인 교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험을 좀 더 쌓은 후 영어 학원을 운영하는 게 목표라더군요. 그러면서 나에게 영어 그룹 과외를 해보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원래는 본인이 가르치던 아이들인데 시간이 맞지 않아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형 영어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인데명문 고등학교의 이름을 건(민사고 대비) 반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라더군요. 과외 선생은 새로운 것을 가르치는 역할보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숙제를 도와주는 학습 관리자 역할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지인의 강권을 핑계 삼아 그룹 과외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재능이 있는지 확인해보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인이 나이에게 한 가지 충고를 했습니다. 절대로 돼지 엄마 말에 ‘노’라는 말을 하지 말라더군요. 가능하면 구구절절 긴 대화를 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나는 유학 업무를 오랫동안 해왔고 사람 상대하는데 나름대로 이골이 난 편이었습니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 할 정도 눈치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하고 말했지만 지인은 미묘하게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나는 그때만 해도 돼지가 어떤 아이의 별명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렇게 만난 네 명의 아이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영어를 잘했습니다. 6 학년인데 중학교 2학년까지 수학 선행 학습을 했다더군요.
엄마들과는 처음 과외 수업을 시작하던 날 잠시 인사를 나누었지만 연락처를 주고받은 것은 그룹의 리더 격인 한 엄마뿐이었습니다.
그 엄마는 나에게 수시로 연락을 했습니다. 본인의 아이가 수업 시간에 어땠는지 묻는 것으로 시작해 같이 공부하는 아이들의 수업 태도까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엄마가 어떤 아이의 수업 태도가 어떤지 묻더군요. 지목된 아이가 수업 태도가 나빠서 분위기를 흐린다는 말을 본인 아이에게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는 사실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적극적이고 숙제도 가장 잘해오고 실력도 좋은 아이였습니다. 가끔은 다른 아이들이 해야 할 답변을 가로채기도 했지만 수업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나는 왠지 그 아이를 변호해야 할 것 같아 그 아이 덕에 수업에 활력이 있다는 말을 덧붙여가며 문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전화 통화를 마친 후 그 엄마가 지목했던 아이는 더 이상 그 반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말에 의하면 그 아이가 학원을 옮기면서 과외에서도 빠지기로 했다더군요.
그로부터 며칠 후 수업에 불참한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본인 아이가 그 그룹에서 빠진 이유가 내가 그 아이를 싫어해서 라고 들었다며 자신의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얼버무려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지인에게 연락해서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지인은 마지못해 돼지 엄마에 대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그 엄마는 자신의 아이보다 실력 좋거나 적극적인 아이는 그룹에 끼워주지 않는다더군요. 자신의 아이 위주로 커리큘럼을 짜고 아이보다 조금씩 실력이 밑도는 아이들을 찾아내 과외 그룹을 만든답니다.
추측컨대 자신의 아이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도록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그 아이는 자연스럽게 공부에 자신감을 갖게 될 테니까요. 본인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영리한 방법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팀이 해체됐으니 더 이상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새로운 팀이 꾸려졌다는 소식을 지인에게 전해 들었지만 나에게 아이들을 맡아 달라는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몰아세워 실력을 올려줄 선생을 찾더랍니다.
나는 그 무렵 돼지 엄마에 대한 신문 기사를 보고 ‘돼지 엄마’의 역할과 그녀들이 휘두르는 권력의 힘과 영향력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경기 서남부 신도시, 그다지 교육열이 높을 것 같지 않은 곳에서 어리숙한 내가 처음 경험한 조금은 어설픈 돼지 엄마였습니다.
내가 진짜 수완 좋고 치밀하며 카리스마까지 넘치는 돼지 엄마를 만난 것은 아이가 특목고 입시를 준비할 때입니다.
영어 토론대회
“엄마 나 토론 학원 보내줘.” 하고 말하는 딸에게 나는 “토론을 왜 학원 가서 배우니?” 하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이미 국제 중학교를 지원했다가 불합격한 경험이 있었던 터라 특목고에 가려면 뭐가 필요한지 알아봤더랍니다. 다른 아이들이 뭘 하는지, 특목고는 어떤 아이들이 가는지 봤더니 비교과 활동으로 토론대회에 나가더랍니다. 캐나다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과 토론하는 것을 즐겼던 터라 잘됐다 싶었겠죠.
토론대회는 영미 문화권의 사립 중고등학교에서 전통적으로 가르치는 비교과 활동이고 명문 대학교 입시에 유리하다는 소문 때문에 해외 대학을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한때 한국 대학교에서도 좋은 비교과 활동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영어 토론을 배우는 중학생이라면 대부분 특목고를 목표로 하는 아이들입니다. 수상을 노리며 대회에 출전할 정도면 부모의 도움 없이 할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마치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처럼 코치가 있습니다. 토론 규칙을 배우고 끊임없는 실전 연습을 합니다.
대회에 출전하려면 팀을 꾸려 전략을 세우고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훈련받지 않으면 발전도 없고 눈에 보이는 성과도 없습니다. 한국에서 잘하는 아이들은 국가대표가 되어 해외 대회에 출전합니다.
일반적인 대화방법인 듣고 공감하는 능력을 배우지 않습니다. 상대가 틀렸다는 전제하에 논리와 지식으로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는 기술을 배웁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막힘없이 상대의 논리를 반박해야 합니다. 때로는 억지주장과 짧은 식견만으로 이미 검증된 사회과학적 이론이나 논리를 무색하게 만드는 괴변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래야 토론 대회에 나가서 상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절대로 아이 혼자 독학으로 배울 수 없는 영역입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승마나 골프처럼 아무나 할 수 없고 아무나 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이질적인 비교과 활동 중 하나입니다. 외국인 학교와 국제중, 일부 특목고 진학을 준비하는 아이들만 모이는 학원이다 보니 모이는 아이들끼리 서로 얼굴을 다 알고 누가 잘한다 못한다는 소문이 돕니다.
배울 수 있는 곳은 강남 일대를 통틀어 몇 곳 안됩니다. 실력 있는 선생도 많지 않습니다. 학원에서는 아무나 받아주지도 않습니다. 높은 토플 성적은 필수고, 학원 선생이 아이를 인터뷰해서 합격 여부를 결정합니다. 그렇게 선발된 아이들은 젊잖게 말싸움하는 기술을 배웁니다.
그때는 나도 영어 토론 학원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잘 몰랐습니다. 영어 토론 대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학원을 많이 다니지 않는 아이가 새로운 것을 배워보고 싶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멋모르고 아무 준비 없이 국제 중에 지원했다가 낙방한 아이가 특목고에 가겠다며 선택한 비교과 활동이라서 하지 말라고 말릴 수 없었습니다.
집 근처에는 마땅한 학원이 없었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던 청담동 학원에 등록을 해줬습니다. 좀 다니다 말겠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아이는 주말과 주중 하루씩 매주 두 번 지하철을 타고 학원까지 갔습니다.
마침 내가 다니던 회사 근처에 학원이 있어서 아이가 학원 수업을 마치는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기다렸다가 아이를 데리고 퇴근했습니다. 중학생 여자 아이가 한 시간 거리를 혼자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고 나도 피곤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지겨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하루빨리 포기하길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데리러 학원 마치는 시간에 갔더니 어떤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하더군요. 아이의 토론 학원 같은 반에 있는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낮시간에 잠시 시간을 내서 만나자더군요. 그 엄마가 바로 강남 돼지 엄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습니다
만날 약속을 정하고 헤어졌지만 뭔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엄마에 대해서 사전 정보를 얻으려고 내 딸에게 물어보니 토론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의 엄마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동안 창밖에서 수업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신의 아이가 뭔가 필요할 때마다 즉각 대령하는 엄마인데. 학원 선생들과도 친하고 원어민 선생과 장시간 대화를 할 만큼 영어도 잘한다고 했습니다. 내 딸은 은근히 그 엄마를 부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많은 아이들도 그 아이와 같은 팀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면서 내 딸도 그 아이와 팀이 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엄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뭘까 궁금해하면서 약속 장소에 나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본인의 아이에게 내 딸의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내 아이 칭찬을 침이 마르게 하더니 당시 유명한 영어 토론대회 준비를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잘 맞는 아이들끼리 팀을 꾸려서 유능한 선생님께 따로 배우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미 선생님도 섭외를 했고 내 딸을 포함해서 ‘똘똘한 아이들’ 몇 명이 같이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편한 시간에 맞춰 선생의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으니 더 편리하다고 했습니다. 토론 대회에 나가 우승하려면 수강 시간을 더 늘려야 하는데 기존에 다니고 있는 학원은 일정 조정을 할 수 없는 게 문제라더군요.
더불어 나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퀴즈 대회와 다른 비교과 활동도 거론하면서 같이 준비시키자고 했습니다. 다만 수강 일정이 정해지면 팀원 모두 반드시 지켜야 하고 아무 때나 팀을 탈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수학은 어떻게 어디까지 선행학습을 했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내 딸이 단 한 번도 수학 선행 학습을 해본 적이 없고 학교 수업 진도만 따라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공부해서 특목고 가기 어렵다며 좋은 수학 선생도 소개하겠다고 하더군요. 참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두 가지 모두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우리는 강남에 살지 않았고, 아이가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강남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무래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왕래하면서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게다가 수학 선수 학습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 진도만 잘 따라가도 될 텐데 굳이 선수 학습을 해야 하는지 되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외국에 살다 와서 한국 물정을 잘 몰라서 그렇다며 “ 한국에서는 수학 못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하더군요. 마치 작정하고 한수 가르쳐 주겠다는 듯 특목고에 가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한참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려면 엄마가 시간과 돈을 아끼면 안 된다며 한 시간 아니라 두 시간이라도 좋은 선생을 찾아서 공부를 해야 한다더군요.
나는 아이에게 내 시간을 그렇게 많이 투자할 수 없고 사교육에 많은 돈을 들일 형편이 안된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아이도 자라는 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익숙해져서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을 덧 붙였습니다. 그랬더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 아이 혼자 지하철을 타고 학원에 다닌다니, 엄마도 아이도 대단하네요.” 했습니다. 칭찬인지 비아냥거리는 말 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캐나다 겨울에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1시간 넘게 버스 통학했던 아이입니다. 한국에서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며 자원봉사도 했고 국제 인권 단체 캠페인에 참여했습니다. 학원이나 기타 비교과 활동을 할 때도 내가 차로 데려다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내가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하면 오히려 미안 해 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가족에게는 당연한 일인데 그 엄마 눈에는 내가 아이를 방치하는 한심한 엄마로 비추어졌던 것 같습니다. 나와는 형편도 생각도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강남에 살고 있었고 돼지 엄마의 제안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 제안을 뿌리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원하는 최고의 팀에 합류해 탄탄하게 입시 준비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시작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덕에 나는 그 엄마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내 딸은 그 팀에 합류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내 아이는 엄마들의 관여 없이 친구들과 팀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미숙하지만 서로 의논하고 정보를 교류하며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물론 성적이 좋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은 즐겁게 배웠습니다.
그렇게 어긋난 만남이 있고 난 후에 그 엄마의 아이와 내 딸은 토론대회와 퀴즈대회에서 몇 번 경쟁자로 만났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아이가 어느 대학교 주최 토론대회에 참가하느라 대중교통을 타고 갔습니다. 그런데 학교 언덕을 걸어 오르는 아이를 그 엄마가 보고 차에 태워 대회장까지 데려다줬답니다. 뒤늦게 아이를 데리러 간 나에게 “여전히 용감한 모녀예요.” 하더군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서 되물었더니 “어떻게 중요한 대회에 참가하는 애를 혼자 버스 태워 보내실 수 있어요?” 하더니 농담이라는 듯 소리 내 웃더군요.
내 아이의 입시 성공을 위해서 남의 아이들과 그 엄마들까지 몰고 다니는 엄마 눈에는 내가 이상한 엄마로 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 나와 내 아이의 형편에 맞는 방식으로 응원했을 뿐입니다.
나는 아이가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 돼지 엄마를 피해 다니려고 노력했습니다. 내가 그 엄마의 요구에 맞출 자신이 없었고 내 아이를 그 집 아이의 들러리로 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돼지 엄마는 존재 이유가 분명합니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고 다양한 방식으로 입시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원하는 정보를 찾기가 어렵더군요. 나는 학원 정보를 찾아 헤맨 경험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의외로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어느 학원에 보내야 하는지 몰라 애를 태우더군요. 그럴 때 필요한 사람이 돼지 엄마입니다.
내 큰 딸의 주변에는 항상 돼지 엄마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엄마들은 활동적이고 적극적이라서 원하는 것을 관철시킬 카리스마도 있습니다. 돼지엄마가 옆에 있는 것 만으로 뭔가 도움받을 것이 있을 것 같아 믿음직합니다. 내 아이가 돼지엄마의 선택을 받으면 대단한 인정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돼지 엄마 덕에 내 아이가 좋은 학원에 다닐 수 있다거나 내 아이의 실력이 좋아질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엄마 아이 일정에 맞춰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자칫 돼지 엄마에게 버림이라도 받는 날에는 엄마와 아이 모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내 아이와 내 형편에 맞는 학원과 비교과 정보를 찾는 것이 처음에는 어려운 것 같지만 결국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길입니다.
요즘은 학생부 종합 전형 덕에 돼지엄마의 입지가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나 돼지엄마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심지어 어른의 세계에도 자신이 가진 정보력과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좌지우지하려고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의지대로 길을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알게 모르게 자신의 아이를 중심으로 들러리 설 아이들을 찾는 엄마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부모가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 합니다. 내 아이와 상의해서 어떤 사교육을 할 것 인지 정하고 아이에게 맞는 학원에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다른 누군가를 원망하며 마음 상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