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경쟁, 그리고 부모로부터 아이를 잠시 피신시키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아이가 다닌 고등학교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합니다. 아이가 그 학교에 지원하겠다고 할 때 나는 내심 학원에 보내지 않고 대학교 입시 준비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사교육을 굳이 하지 않아도 입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학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는 홍보 담당자의 말을 믿었습니다. 기숙사 비용을 포함한 학비가 동네 공립학교에 비해서 꽤 비싼 편이었지만 사교육 스트레스가 없다는 게 큰 매력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한국의 특목고를 캐나다나 미국에 있는 사립학교와 비슷한 시스템 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내가 한국 물정으로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겁니다.
내 예상과 다르게 그 학교의 많은 학생들은 사교육이 일상생활이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주중이나 주말이나 가릴 것 없이 학원에 다녔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에 그 학교 학생들만을 위한 학원이 들어섰고 부모들은 먼 길을 달려 아이들을 강남 학원에 실어 날랐습니다.
내 딸은 중학교 때 영어 토론 수업을 듣기 위해 강남 학원을 다니기는 했지만 학과목은 수학 공부방을 다닌 게 전부였습니다. 문제집 풀이식 자기 주도 학습에 익숙해진 터라서 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는 학원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더군요. 방학이 다기 오자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원 스케줄부터 정했습니다. 내 딸도 여름 방학 때 다녀야 할 학원을 나열하더군요. 나는 난감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학원을 전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방학 내내 학원에서 공부만 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더 심해질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적지 않은 학원비 내역을 보니 덜컥 걱정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3년 동안 이렇게 많은 학원비를 내야 한다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불안을 줄여줄 방법과 학원비를 아낄 구실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동안 고민을 한 끝에 아이에게 어학연수를 빙자한 휴식을 제안했습니다.
“여름 방학 동안 학원 다니지 말고 어학연수 가라. 학교를 그만 둘 생각까지 한마당에 뭐 하러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하니, 불어 배우고 싶다고 그랬지? 몬트리올 가서 한 달 동안 불어만 배우고 학교 공부는 하지 마. 인생에 한 달 정도는 그냥 놀아도 돼. 공부하지 마.”
나는 확신에 찬 어조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이는 의외라는 듯 놀랐습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학원에 다니거나 스펙을 쌓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 타지에 가서 입시와는 상관없는 시간을 보내라는 엄마 말을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돼?” 하고 묻는 아이에게 “그래도 돼!” 하며 안심시켰습니다.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간낭비라거나 “무모한 거야, 용감한 거야?” 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습니다. 나도 나중에 후회하게 될까 봐 불안했습니다만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좀 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사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목적은 프랑스어 연수였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겨우 한 달 만에 프랑스어 실력이 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어학연수비용은 입시 학원에 다니는 비용보다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학연수 비용은 아깝지 않았습니다.
많은 입시 전문가나 학원 선생들은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때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서 계획이 바뀌고 목표가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고등학교 입시를 끝낸 중학교 3학년에게도 그렇게 말합니다. 고 2가 돼도 고3이 돼도 항상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아이들을 몰아세우며 대학교에 가서 실컷 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면 취업준비에 마음이 쫓겨 마음 편히 쉴 수 없습니다.
내 딸도 중학교 3년 동안 쉼 없이 공부했고 고등학교 입시를 마친 후에도 편안하게 쉬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배울 것을 미리 예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하니 그래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어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질주하는 동물 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선두를 따라 맹렬하게 내 달리더군요. 선두에 달리는 동물의 우두머리는 자기 마음대로 질주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뒤 따라오는 무리에게 밟혀 죽을 수도 있고 자칫하면 도미노처럼 다 같이 넘어져 무리 전체가 위험해 처해질 수 있으니까요. 내 아이도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르는 체 무작정 내 달리는 것 것처럼 보였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잠시라도 그 무리에서 내 아이만이라도 쓱 빼내고 싶었습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남들 다 하는 방식으로 같은 길을 따라가게 두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맹목적으로 내달리는 것보다 가끔 한 번씩 쉬는 시간을 갖고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한국의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부분 진로와 학교 공부, 입시와 관련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줬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거나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살면 좋을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라는지 엄마로서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교 이름에 연연하지 않고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단단한 아이로 키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의 가치관에 좋은 영향을 주고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을 뿐 내 방식과 의지대로 아이들을 강제로 끌고 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강한 경쟁자들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를 보면서 내 교육방식과 신념이 잘못됐거나 가식적인 게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아이에게 학교 성적에 연연하지 말라는 말을 수시로 했지만 정작 행동이나 분위기로 공부에 압박을 주고 획일화된 ‘성공’을 강요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습니다. 아이와 나 모두에게 생각하고 반추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학교와의 단절, 부모와의 단절. 최대한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시간 말입니다.
아이에게 캐나다에 가면 학교 공부는 완전히 잊고 놀다 오라고 했습니다. 입시와 연관 짓지 말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엄마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라고 했습니다. 첫 아이, 처음 겪어 보는 입시였기 때문에 나도 불안했습니다.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망설여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무모한 듯 용감하게 밀어붙였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생전 처음 엄마 없는 곳에 가서 한 달 동안 살았습니다. 혼자 어린 아들 둘을 키우는 동구권 이민자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습니다. 남과 한집에서 살면서 ‘눈칫밥’을 먹었습니다. 주거환경도 열악하고 여러 가지로 편치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다행히 아이는 한 달 만에 밝은 얼굴로 돌아왔습니다. 내가 요구한 대로 캐나다에 머무는 동안 학교 공부를 하지 않고 대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게으름을 피우며 놀다 왔다더군요.
아이는 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