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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어떤 계시와도 같았다.
‘눈을 뜬다’는 감각은 꿈속에서 느끼기엔 모호한 감이 있지만, 그 외에 달리 내가 겪는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금껏 본 적 없던 낯선 장소였다. 푸른 식물이 빽빽하게 우거진, 그리고 색색의 꽃이 활짝 피어 있는. 야생이라기에는 사람의 손을 탄 듯했고 관리를 지속적으로 받았다기에는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 강했다. 그럼에도 정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듯한 곳이었다.
나는 그 생생한 꿈 속에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광경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길을 잃을까 두려웠으나 그보다는 이 장소를 탐험하고 싶은 호기심이 우세했다. 길을 잃는다 해도 꿈에서 깨면 그만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걸음을 떼었다.
다리를 스치는 풀잎의 감각이, 꽃의 내음이, 지저귀는 새의 소리가 너무나도 또렷하게 감지되었다. 그 기묘한 감각에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곁에 누가 다가온 줄도 몰랐다.
‘안녕?’
“으악! 깜짝이야!”
화들짝 놀라는 반응에 인사를 건넨 상대가 두 눈을 크게 뜬다. 몇 번인가 동그란 눈을 끔벅이더니, 이윽고 작게 키득거리며 웃었다.
‘되게 웃기게 놀라네.’
“넌 누구……세요?”
대뜸 반말로 물으려다 얼마 있지 않은 사회성을 장착했다. 꿈속에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으나, 본능에 가까운 반응이었으며 굳이 정정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 말에 상대가 언짢은 기색을 내비친다.
‘그건 내가 물을 말이지. 남의 정원에 멋대로 들어와 놓고 뻔뻔하네.’
“여긴 어디야?”
장착한 사회성을 벗어던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야, 이 기이한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 정원이라니까.’
“어디의?”
‘어디의?’
“어느 도 어느 시 어느…… 아무튼. 구체적인 위치.”
질문한 이유는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꿈 속이라고 생각했으면서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온 머릿속이 가득 차고 말았다. 그러나 상대는 고개를 갸웃하고 옆으로 기울이며 희한한 것 보듯 하는 얼굴을 했다.
‘정원이 정원이지, 어디라니?’
“.......”
미친 사람이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 그럼 저는 이만.”
‘그러니까, 어딜 가는데?’
“이거 꿈이거든? 깨려고.”
‘뭐라는 거야 진짜.’
기가 막힌 듯한 얼굴에 나는 그만 억울한 심정이 되었다. 아니, 내 꿈에서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많이 피곤했던 것일까 요즘. 물론 학교 생활은 녹록지 않지만 나에게 학교는 특별히 좋지도, 특별히 싫지도 않은 곳이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고등학생이란 소리다, 적어도 내 기준에는.
‘기억을 잃었든 길을 잃었든 둘 다이든 뭐 아무튼, 그렇다는 거지?’
“...... 아니.”
‘따라와.’
스스로를 정원의 주인이라 칭한 이는 그렇게 얘기하고는 뒤를 돌아 앞장을 서기 시작했다. 내게는 항변을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낯선 곳에서 내게 선택지가 있을 리도 만무하다. 나는 조용히 앞장서는 소녀의 등을 쫓았다.
“어……?”
‘여기서 머물러.’
작은 오두막이었다. 참 동화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는데, 나한테 이런 취향이 있었나 싶다. 어쨌든, 머물 곳이 있다는 것이 왜 위안이 되는지…….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소녀를 따라 들어갔다. 꿈 속인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피로감이 느껴졌다. 침대에 몸을 눕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쉬어.’
“잠깐.”
‘왜?’
나를 집 안에 두고 나가려는 소녀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정작 본인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으나, 낯선 사람을 물리적으로 붙잡았다는 생각에 머쓱한 심정이 되어 손을 놓아버렸다. 멋쩍음에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야?”
‘...... 고맙다는 말을 희한하게 하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 스스로도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호기심을 물릴 수는 없기에 물러서지는 않았다. 나를 빤히 올려다보던 소녀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생각나는 사람?”
‘개인적인 건데, 이런 것까지 물을 사이인가?’
날카로운 지적에 그제야 충분히 실례를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이 생겼다.
‘그럼, 난 간다.’
미련 없이 문을 열고 나가버리는 소녀를 망연히 바라보던 나는, 덩그러니 낯선 정원에 떨어졌던 때와 같이 오두막 안을 둘러보았다. 작지만 있을 것은 다 있었고, 무엇보다 침대가 아주 포근해 보였다. 생각할 것이 많음을 알고 있음에도 어쩐지 저항할 수 없는 피로가 몰려와 침대에 누워야만 한다는 강렬한 충동이 일었다.
“그냥……. 조금만 쉬지 뭐.”
털썩 침대 위에 누우니 예상대로 푹신하고 따뜻했다. 호기심도, 의문도, 의아함도 모두 그 순간만큼은 강렬한 수면욕 앞에 후순위였다. 그렇게 나는 삽시간에 수마에 삼켜졌다. 여기서 잠들면 더 깊은 꿈으로 들어가는 걸까, 아니면 현실에서 깨어나는 걸까.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마지막으로 암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