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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Aug 02. 2020

양파 이야기

내가 원한 건 아니잖아요?

아빠가 농사지은 양파를 20kg짜리 보리 박스에 보내주셨다. 한 개씩 꺼내 가지볶음, 꽈리고추 조림, 감자조림, 된장국에 넣었다. 달짝지근한 맛이 일품이다. 요리에 넣지 않고 단독으로 먹어도 단 맛에 손이 멈추지 않는다. 초록 망에 넣어뒀다. 그물망 사이로 통풍이 잘되어 상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부엌 옆을 지나던 편이 말했다.


"이건 무슨 냄새지? 마늘 냄새인가?"

"그렇겠지, 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는 초록 망 속에 담긴 양파와 마늘을 생각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양파 상태를 확인했다. 큰 녀석이 한 개 썩었다. 상한 양파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났다. 빈 김치통을 꺼내 한 개씩 꺼내 담았다. 지인과 나눠 먹고 50개 정도가 남아 있었다. 냄새를 풍긴 한 개를 빼고 다섯 개가 썩어가는 중이었다. 물렁물렁해졌다. 아차! 싶었다. 마늘도 까야겠구나. 물에 담갔다. 역시나 겉은 멀쩡하고 속이 썩은 것들이 보였다. 반으로 쪼개 보니 속이 갈색으로 변하고 뭉그러져 버렸다.


'한 뱃속에서 나왔는데, 어쩜 저렇게 다르니?'

뱃속은 같아도 환경은 똑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차이를 기질이라고 했다.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양파와 마늘도 똑같은 땅에서 자라지는 않았다. 자기가 있었던 땅 속, 햇 빚을 받은 방향과 양, 물을 흡수하는 능력은 달랐을 것이다. 멀쩡한 양파가 상한 양파에게 한마디 던진다.


"왜, 너만 그렇게 유별나게 구니?" 

"왜, 너만 환경에 적응 못해 썩어서 우리까지 피해를 보게 만드는 거야?"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를 읽었다. 남들과 다른 저자가 느꼈던 '고립감'에 대한 감정이 떠올랐다. 자신이 원하는 병은 없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오빠와는 달리 불안장애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사회적 유대관계가 적은 청소하는 일을 했다. 죽는 것이 무서워 살기로 결심하고 고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결국에는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상황과 마주하는 연습을 통해 두려움을 용기로 극복했다. 


썩은 양파는 회생이 불가하다.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사람은 다르다.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고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바라볼 수 있다. 회생이 가능하다. 단 자신이 변하고자 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대신할 수 없다. 겉은 멀쩡한데 속이 갈색으로 변하고 뭉그러져 버린 마늘은 나와 같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이른 아침 우체국 아저씨가 누르는 벨소리, 밤마다 꾸는 쫓기는 꿈, 식은땀, 우편함에 꽂힌 우편물을 볼 때, 또 그것을 열어볼 때 떨리는 가슴과 숨 막힘. 내가 견뎌야 하는 마늘과 같은 뭉그러짐이다.


세상이 인공지능으로 변화할수록 인간관계의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보통 사람과 다른 모습을 하고, 감정을 느끼고, 상처 받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또한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여러 개의 답을 가진 해답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고립감에 잠시 멈출 수 있다면 분명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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