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집안일

by 지하

대부분의 맞벌이 가정이 그러하듯 저희 집도 결혼 초부터 수많은 다툼과 치열한 논의의 고개를 넘어 육아와 집안일을 분배하였습니다. 심지어 와이프와 저는 동일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에 누가 더 시간이 많다 적다를 따질 수도 없었습니다. 살다 보니 각자의 취향과 적성을 알게 되었고 그에 맞추어 육아와 집안일을 알아서 분배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먹는 것에 진심인 저는 주방과 청소 및 쓰레기 처리를 주로 맡게 되었고, 와이프는 육아, 인터넷 장보기와 집안의 돈 관리를 주로 담당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칼로 자르듯이 완전히 나눈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로 담당하는 사람이 있고 담당하는 사람이 바쁘면 다른 사람이 하는 형태로 나누어진 집안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육아 휴직을 하면 육아 휴직 한 사람이 육아와 집안일의 비중이 살짝 높아지다가 복직을 하면 다시 적당히 분배가 되는 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 육아와 집안일 분담 정도 >


전담 육아로 달라진 점


육아를 전담하면서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생각보다 아이랑 오랫동안 붙어 있게 되니 화를 자주 내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아이의 답답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져갈 때가 종종 있었죠.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할 때도 많았습니다. 주말에 화를 내고 있는 제 모습이 보이면 보다 못한 와이프가 슬금슬금 아이를 데리고 갈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아이에게 화를 낸 다음 자기 전에 꼭 아이에게 사과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이를 설득하거나 이해시켜야 하는데 화를 내면서 윽박지른 것은 잘못이니까요.



집안일


저는 이과(理科) 남자라 뭐든 프로그램처럼 루틴이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고 실행도 잘됩니다. 그래서 집안일도 루틴을 만들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빨래는 일주일에 두 번, 청소는 가능하면 이틀에 한 번꼴로 청소기를 돌리는 루틴을 만들어 그대로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제가 하는 집안일(청소, 빨래, 설거지)에 대해 와이프가 크게 잔소리를 하지 않아서 어려움이 적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해놓은 집안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었죠. 물론 뭐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니까요. 그래도 와이프와 제가 그동안 같이 살면서 했던 집안일 처리 수준만큼은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흔히 집안일은 끝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데 이번 휴직에서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마음먹은 정도에 따라 집안일의 양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시간적 여유가 생겨 집안일에 익숙해지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조금만 더 하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설거지만 했다고 한다면 이제는 설거지하면서 싱크대 주변을 모두 정리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다 보니 집안일의 양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집안일의 크기는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했죠. 부부가 평소 분담했던 집안일이 있다면 부부 각각이 생각하는 집안일의 범위는 차이가 날 듯합니다. 따라서 아빠가 육아 휴직을 한 뒤 집안일을 도맡게 되었다면 와이프가 담당했던 집안일의 수준을 남편이 순식간에 따라잡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럴 경우 부부 모두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을 듯합니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와이프와 상의 후 최소한의 기준을 같이 맞춰두는 것이 서로의 정신건강을 힘들지 않게 하는 비결이 될 것 같습니다.


청소, 빨래, 설거지에 비해 식사 준비가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밑반찬이 중요했다면 저희 집 입맛에 딱 맞는 반찬집에서 밑반찬을 사면 쉽게 해결이 되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저희 집은 밑반찬보다 메인 메뉴가 중요한 집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녁 메뉴 결정과 저녁 식사 준비가 생각보다 신경도 많이 쓰이고 준비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요즘도 매번 저녁 뭐 먹지로 고민하죠. 오늘 저녁은 소고기 카레입니다.


경험해보니 육아와 집안일은 한 번에 몰아쳐서 주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저녁시간은 더욱 그렇습니다. 4시 30분쯤부터 저녁 준비를 시작하면 5시 30분이나 6시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합니다. 그러면 설거지를 하지 않는 부부 중 한 명은 아이 숙제를 봐주어야 아이가 9시에 잠을 잘 수 있습니다(저희 집 아이는 9시에 재웁니다. 개인적으로 아이가 어릴 적엔 아이를 일찍 재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일찍 자야 성장호르몬이 잘 나와 아이의 키가 잘 클 수 있고, 일찍 자야 잠자는 시간이 많아져 다음날 피곤이 풀린 아이의 생활도 안정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잘 살펴보시면 피곤한 아이는 짜증을 많이 내거나 부정적인 행동을 많이 합니다.ㅠㅠ).

그런데 가끔 직장에 다녀온 와이프가 힘들다고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들다고 누워있는 경우가 생깁니다. 흔히 직장에 다녀온 남편이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저희 집은 제가 육아휴직하니까 반대가 된 거죠. 막상 제가 그런 상황을 마주하자 아이 수면시간 루틴이 깨질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에 괜스레 힘든 사람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발 동동 거리며 집안일 하는 나를 보고도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야속함도 느꼈습니다. 결국 이 일로 몇 번의 다툼이 생겼고 그 결과 나름의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와이프도 힘들겠지만 제가 부탁했습니다. 아픈 게 아니면 아이 좀 봐주라고 아이 잠잘 시간은 맞춰야 하지 않겠냐고 나 혼자 하기에는 어렵다고. 물론 매번 이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눈치껏 와이프가 힘들어할 때는 모른 척 쉬게 해주기도 하고 아닌 것 같으면 와이프에게 제가 설거지하는 동안 아이를 좀 봐달라고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이걸 몰랐던 저는 저녁 시간 육아와 집안일에 대해 적당한 타협점을 찾기까지 생각보다 꽤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육아 휴직으로 육아와 집안일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는 육아와 집안일의 속성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특히 초등학생 육아는 생각보다 마음이 많이 쓰였고, 보다 보면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집안일은 생각보다 조그마한 일들의 연속이라 부지런하게 계속 조금씩 해나가야 하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아마 제가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수도 있었던 세계였을 것입니다. 물론 알아도 겉모습만 쪼금 알았을 수도 있죠. 육아 휴직 덕에 새로운 세계의 경험을 통해 아이와 가정에 대해 조금 더 섬세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진 듯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육아와 집안일이 쉬워지거나 잘해진 건 아닙니다.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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