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도시 속 시간이 공간에 반영되는 방식
파리의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감탄하게 된다. 골목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오래된 벽돌과 석조 건물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골목을 나가 마주치는 센 강의 반짝이는 물결까지, 모든 것이 한 폭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잠깐 멈춰서 이렇게 물어보자. “왜 이 골목은 이렇게 생겼을까? 건물은 왜 이런 높이와 폭을 갖고 있을까?” 단순히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읽는 행위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사실, 파리의 공간 구조와 건물 양식은 우연이 아니라 역사적 필요와 제도의 산물이다. 좁은 골목길은 중세 성벽 안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도시는 마차 중심과 보행자 이동을 고려해 길을 계획했다. 또한 건물 폭에 따라 세금을 부과받던 시대, 사람들은 세금을 줄이기 위해 건물을 좁게 짓고 길게 늘였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보는 좁고 긴 건물 구조가 탄생했다. 1층은 상업 공간, 위층은 주거 공간으로 활용되며, 상업적 편리성과 생활 효율성을 동시에 충족했다. 좁지만 깊게 뻗은 공간 안에서는 작은 상점이 운영되고, 가족 단위 거주 공간이 확보되었으며,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도시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17~19세기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였던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높은 층고와 긴 창문, 아치형 출입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환기와 채광, 화물 출입 등 당대 도시와 시대가 필요로 했던 기능을 반영한 산물이다.
이러한 중세 도시 구조와 더불어 19세기에는 오스만(Haussmann)의 파리 재편과 같은 제도적 계획이 더해지며, 조망, 거리 폭, 건물 높이, 공공 안전 등 일부 규범이 적용되었다. 당시 규정에 따라 건물은 도로 폭보다 높게 지을 수 없었는데, 이 제한은 파리의 대로변에 균질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 널리 쓰인 망사르 지붕[1]이다. 위쪽은 완만하고 아래쪽은 가파른 이중경사로 이루어진 이 지붕은 사실 오스만 이전인 17세기부터 존재하던 양식이었지만, 오스만 시대의 높이 제한 속에서 지붕 공간이 건물 높이에 포함되지 않는 특성을 활용해 주거 공간을 확장하는 합리적 해법으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망사르 지붕은 파리 건축의 전형적 이미지로 정착하며 오늘날까지도 도시 경관의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 비록 정치적 의도와 일부 사회적·경제적 부작용이 있었지만, 오늘날 파리의 골목과 강변 경관은 오랜 세월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구조와 제도적 계획이 결합된 산물이다. 다시 말해, 역사와 현대가 함께 살아 있는 도시 풍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모든 요소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도시와 시대가 요구한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건축은 설계와 시공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 삶, 역사적 가치, 환경 지속 가능성, 공공 이익을 모두 고려하는 복합적 실천이다. 이러한 복합성은 법규와 제도를 통해 구체화된다. 역사 지구 내 건물 높이 제한, 외관 규제, 공공 공간 확보 의무 등은 도시의 미적 통일성을 유지하고, 시민과 관광객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환경 정책과 에너지 효율 기준 역시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을 가능하게 한다. 즉, 프랑스의 건축 제도는 과거와 현재, 인간과 환경, 상업과 공공의 이해관계를 조화시키는 도구로 작동한다.
이러한 제도적 접근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도시계획은 단순히 건물의 높이나 골목의 폭, 공원과 광장의 배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패턴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고려한 결과물이다. 또한 문화유산 보호는 단순히 오래된 건축물이나 거리 풍경을 그대로 남겨두는 차원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과 시민이 경험하는 삶의 풍경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장치로 기능한다. 환경 정책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강변 산책로나 공원은 단순한 여가 공간이 아니라, 도시 생태계와 시민의 안전과 건강을 동시에 반영한 제도적 설계의 성과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규범과 창의성의 균형은 건축가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그들은 법규와 제도적 기준을 지키는 동시에 창의적인 디자인을 구현해야 하며, 전통과 현대, 규범과 혁신 사이의 긴장은 오히려 새로운 미학과 기능을 만들어내는 기회가 된다.
프랑스의 사례는 프랑스만의 특수성을 넘어, 현대 도시가 직면한 보편적 과제를 보여준다. 역사와 현대의 공존, 개발과 환경의 균형, 시민 중심 설계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도시 설계는 더 이상 건물 단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환경, 역사와 미래를 연결하는 복합적 실천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골목길을 걷고, 카페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강 위의 햇빛을 따라 걷다 보면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도시의 역사를 읽고 제도가 만든 공간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사는 도시, 우리가 설계하는 도시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프랑스의 건축과 제도는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 인간과 환경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다. 이러한 교훈은 전 세계 도시가 고민해야 할 문제—역사와 개발, 환경과 공공, 시민 중심 설계—를 탐구하는 데 중요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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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망사르 지붕(le toit mansardé): 17세기 프랑스 건축가 프랑수아 망사르(François Mansart)가 자주 사용한 양식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위쪽은 완만하고 아래쪽은 가파른 이중경사로, 지붕 속 공간을 주거층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다. 오스만 시대에는 도로 폭에 따른 건물 높이 제한 속에서 이 지붕이 주거 공간을 확장하는 방법으로 널리 채택되며 파리의 상징적 건축 요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