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토지 활용 규제가 만드는 도시 구조와 시간의 흐름
도시는 언제나 땅과 시간을 기록하는 문장을 품고 있다. 그 문장은 단순한 건축 허가나 규제의 기술적 언어를 넘어, 즉 인간과 자연, 역사와 미래가 서로 얽힌 도시의 시간적 구조를 보여준다. 순 토지 인공화 제로(ZAN : Zéro Artificialisation Nette) 역시 그러한 도시의 문장 중 하나다.
토지 인공화, 즉 본래의 자연 토지가 콘크리트, 아스팔트, 건축물 등으로 변하는 과정은 단순한 공간 변화가 아니다. 도시화와 산업시설 개발, 교통 인프라 구축은 지하수 침투 감소, 생태계 파괴, 생물다양성 손실, 도시 열섬 현상 심화 등 복합적 문제를 초래한다. 이러한 환경적 흔적은 도시의 시간을 읽는 중요한 기록이 되며, 이를 관리하고 조율하는 것이 ZAN 정책의 핵심이다.
유럽연합은 2050년까지 토지 인공화를 실질적으로 ‘제로’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단순히 개발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신규 인공화 면적과 생태계 복원, 토지 복구, 재활용 부지 활용 등으로 상쇄되는 면적을 고려해, 순수하게 남는 인공화 면적을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이는 유럽 녹색 전환 전략(Green Deal)의 핵심 중 하나다 [1]. 프랑스는 이를 국내법으로 반영해 2021년 8월 기후와 복원력법(Loi Climat et Résilience)을 통해 2030년까지 토지 인공화 속도를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ZAN 상태를 달성하겠다는 법적 목표를 세웠다 [2].
ZAN은 단순한 금지 조치가 아니다. 도시가 스스로 자신의 땅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문서화하는 행위이며,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설계하는 도시 설계 문법이다. 이를 위해 프랑스는 기존 도심 내 고밀도 개발과 토지 재생을 장려하고, 신규 개발보다는 리노베이션과 재활용 중심의 공간 전략을 선택하도록 제도화했다 [3]. 농지와 자연지역은 보호되고, 생태적 가치가 높은 지역은 개발 제한 구역으로 지정된다. 지방정부의 PLU, 광역계획인 SCOT 등 도시계획 문서에는 ZAN 기준이 통합되어, 토지 개발 허가 단계에서부터 환경적 영향을 고려하도록 한다 [4].
(출처: ©L'Agence d’Urbanisme et d’Aménagement de Toulouse aire métropolitaine, 라이선스: CC BY-NC-SA 4.0, https://www.aua-toulouse.org/zan-recit-dune-trajectoire-vers-la-sobriete-fonciere/)
ZAN 달성을 위해 프랑스는 단계적인 계획을 세워 두었다. 먼저 2021년부터 2031년까지는 토지 인공화, 즉 자연 땅이 콘크리트나 건물로 바뀌는 속도를 이전 10년(2011–2021)보다 50%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후 2031년에서 2041년, 2041년에서 2050년까지는 10년 단위로 인공화 속도를 조금씩 더 낮추는 계획이 이어진다. 최종적으로 2050년 이후에는 새로운 인공화 면적과 복원된 자연 면적이 서로 상쇄되어, 결과적으로 자연 땅의 손실이 없는 ‘순 제로’ 상태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5].
이 목표는 다양한 계획 문서와 연결되어 실행된다. 국가 차원의 SRADDET(지역·환경 계획)는 2024년까지, 광역 SCoT(도시권 계획)는 2027년까지, 지방 PLU/PLUi(지자체 토지 이용 계획)는 2028년까지 ZAN 목표를 포함해야 한다. 이렇게 단계별로 계획 문서에 반영함으로써, ZAN이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실제로 실행되는 정책임을 보여 준다 [6].
또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도구도 마련되어 있다. Play-ZAN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시민과 지자체는 실제로 토지 계획을 조정하며 ZAN 목표를 체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정책이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시민과 함께 배우고 고민하는 사회적 학습 과정으로 확장된다 [7].
도시의 땅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이러한 질문은 단순한 규제 이상이다. 과거처럼 도시 외곽으로 무한히 확장하는 개발 방식을 넘어, 도시 내부를 재조직하고 토지 소비를 줄이는 구조적 전환을 요구한다. 도시재생과 연결된 이 전략은 녹지 보전, 탄소 배출 저감, 도시 열섬 완화 등 기후 변화 대응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동시에, 주거 수요가 높은 지역에서는 신규 개발 억제와 공급 부족 사이에 긴장이 존재하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 도심 내 중밀도 주거 공급과 공공주택 확보 같은 보완 전략이 병행된다.
프랑스는 이러한 목표를 중앙정부의 제도적 리더십과 지방정부의 실행력, 시민사회의 참여와 합의를 통해 실현한다. Bénéfriches, UrbanVitaliz [8]등 다양한 재정 지원과 플랫폼이 유휴지 재활용을 촉진하며, 사회적 참여를 구조화한다. ZAN은 단순히 토지 개발을 억제하는 조치가 아니라, 도시가 남기는 환경적 흔적과 시간적 층위를 조율하는 문법이다. 도시가 시간을 쓰는 문장, 땅 위에 남기는 흔적, 그리고 환경과 공공성 사이의 균형을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ZAN은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편집 기술이며, 법과 제도, 사회적 합의가 결합하여 도시의 시간을 조율하는 방법론을 보여준다. 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조항을 읽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어떤 원칙 위에서 미래를 설계하고, 어떤 땅을 지키고, 어떤 공간을 재구성하는지 그 흐름을 읽는 경험이다.
더 나아가 ZAN은 도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도시의 땅을 어떤 방식으로 남기고, 어떤 흔적을 허용할 것인가. 단순한 개발이나 보존을 넘어, 인간과 자연, 역사와 미래가 함께 살아가는 도시의 시간을 설계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상기시킨다. ZAN을 통해 배우는 것은, 지속가능한 도시 운영이 단순한 정책 목표가 아니라, 시민, 전문가, 정책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적 약속이라는 점이다. 도시의 문장은 그렇게 우리에게 미래를 읽고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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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uropean Commission, Soil Strategy for 2030. Retrieved from https://ec.europa.eu/environment/strategy/soil-strategy_en, 2021
[2] Article 192, LOI n° 2021-1104 du 22 août 2021 portant lutte contre le dérèglement climatique et renforcement de la résilience face à ses effets
[3] Recycler les friches. CEREMA. (2023). https://www.cerema.fr/fr/activites/services/recycler-friches
[4] Guide pratique pour limiter l’artificialisation des sols, Ministère de la Transition écologique. (2022)
[5] AUA Toulouse, La trajectoire zéro artificialisation nette en une image, 2023, https://www.aua-toulouse.org/la-trajectoire-zero-artificialisation-nette-en-une-image/
[6] 위 자료, 법·계획 문서 단계별 반영 일정: SRADDET 2024, SCoT 2027, PLU/PLUi 2028
[7] 시민 참여형 도구 Play-ZAN, AUA Toulouse, 2023, 웹 링크
[8] Bénéfriches 도구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으며, 유휴지 재활용을 통해 발생하는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수치화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도구는 평가 기준표와 사용자가 입력하는 스프레드시트를 기반으로 하며, 재활용 프로젝트로부터 발생하는 직·간접적 이익을 금액으로 환산해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 도구는 모든 유형의 유휴지에 적용할 수 있다.
UrbanVitaliz는 프랑스 정부의 France Relance 계획의 일환으로 환경에너지관리청(Cerema)이 운영하는 지자체 지원 서비스로, 유휴지(프리쉬) 재활용 프로젝트를 원활히 추진할 수 있도록 재정, 기술, 파트너 연결 등을 무료로 지원한다. 이 서비스는 디지털 플랫폼과 전문가 네트워크를 통해, 지자체가 현재 상황에 맞는 조치, 이용 가능한 자금, 협력 가능한 기관 등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https://www.cerema.fr/fr/actualites/rehabiliter-friches-opportunites-methodologie?utm_sour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