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 공간에서 살아 있는 장소로

04. 몸과 감각, 선택을 통해 완성되는 나만의 집

by Jeonghoon KIM

집은 단순히 머무는 구조물이 아니라, 우리가 몸과 감각으로 삶을 살아내는 가장 근본적인 장소이다. 안에서 걸으며 벽을 스치는 감각, 잠결에도 익숙하게 찾아지는 스위치, 햇빛이 드는 방향에 따라 정해지는 가장 편안한 자리 모든 일상적 움직임과 느낌은 우리가 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집은 우리의 리듬에 반응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은 속에 스며들며, 결국 집은 우리 삶의 형태를 따라 변화하는 살아 있는 환경이 된다.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지각 철학은 이러한 관계를 이해하는 핵심적 통찰을 제공한다. 그는 그의 저서 지각의 현상학에서 인간의 신체를 단순한 물리적 객체가 아니라, 세계를 지각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로 보았다. “우리의 몸은 공간이나 시간 안에서 단순히 머물고만 있는 존재는 아니다. 우리의 몸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1]라는 그의 말처럼, 인간은 공간 안에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몸과 감각을 통해 공간을살아내는존재이다. 여기서 ‘habiter’(거주하다) 단순히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몸과 감각으로 공간을 경험하고 구성하며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는다. 아침에 어둑한 복도를 걸으며 자연스럽게 손잡이를 찾고, 창가에 머물며 따뜻함을 느끼는 순간 모든 감각의 흔적이 집을 살아 있는 장소로 만든다.


여기에 메를로-퐁티의살아 경험된 세계(le monde vécu)개념을 더하면, 집은 단순한 외적 구조물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관계 맺으며 구성하는 세계임을 이해할 있다 [2]. 자주 사용하는 컵의 위치, 손이 기억하는 손잡이의 감촉, 몸이 익힌 소파로 향하는 동선 같은 반복되는 습관들이 쌓일 집은 우리 고유의 질서를 갖는다. 우리 몸은 공간 속에서 길을 만들고, 공간은 몸의 기억을 품는다.


이러한 경험적 관계는 개인적 내면을 넘어 사회적·문화적 의미까지 확장된다. 지리학자 Yi-Fu Tuan 그의 저서 공간과 장소에서 설명하듯, 대상이나 장소에 대한 경험이 총체적이고 적극적이며 감각적으로 이루어질 , 공간은 구체적 현실성을 가진 장소로 전환된다 [3]. 가족이 함께 식사를 나누는 거실, 아이가 뛰어놀며 상상력을 발휘하는 , 창문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사색하는 공간, 모든 것들이 집을 관계의 공간이자 기억의 무대로 만든다. 그리고 경험과 감각이 누적되어 장소성 부여한다. 이때 집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문화, 기억과 감정이 겹겹이 쌓인 살아 있는 장소가 된다.

다시 말해, 공간은 몸과 정신이 적극적으로 관계하고, 감각을 통해 기억과 감정을 축적할 , 장소로 인식된다. 안에서 반복되는 일상, 작은 동작, 공간과 감각의 상호작용은 개인적 경험을 넘어 보편적 의미로 확장되며, 우리가 집을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나아가 이러한 감각적 장소 경험은 삶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힘을 발휘한다. 하루의 시작을 깨우는 커튼 너머의 , 퇴근 몸을 맡기는 소파의 감촉, 주방에서 들려오는 따뜻한 소리들은 삶의 리듬을 조율하며 존재를 지탱해 준다. 집은 우리의 몸이 긴장을 내려놓고, 감각이 안도하며,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장소이다.


결국 집은 단순한 배경이나 벽체의 집합이 아니다. 집은 인간이 몸과 감각으로 세계를 경험하며, 관계를 형성하고, 시간을 누적하며, 삶의 이야기를 쌓아가는 살아 있는 장이다. 집에서의 하루하루, 반복되는 습관, 가족과의 관계, 공간 속에서의 경험적 선택은 모두 집이 의미 있는 장소로 완성되는 과정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집은 단순히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살아가는 삶과 감정, 기억과 사회적 관계를 담는 복합적 장치이며, 속에서 인간 존재는 공간과 함께 구체적·실존적으로 자리 잡는다.


우리가 머무는 공간에서 느끼는 감각을 조금 세심하게 의식하고, 삶의 흔적을 애정 어린 방식으로 쌓아간다면,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나의 삶을 온전히 담아내는 장소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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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aurice Merleau-Ponty, 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Gallimard, 1976, p.162 « Il ne faut donc pas dire que notre corps est dans l'espace ni d'ailleurs qu'il est dans le temps. Il habite l'espace et le temps. » 문장에서 habiter는 단순히 거주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공간을 살고, 몸으로 경험하고 구성한다는 현상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2]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철학에서 'le monde vécu'(살아 경험된 세계) 인간의 지각과 존재의 핵심 개념으로,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고 이해하는지를 탐구한다. 이는 그의 대표작인 『지각의 현상학(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1945)』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Le Visible et l’Invisible, 미완성)』에서 중심적인 주제로 다루어졌다.


[3] Yi-Fu Tuan, 구동회 심승희 , 공간과 장소, 대윤, 2007,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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