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설계와 의미의 흔적 : 개념 이후의 공간

06. 단일한 개념을 넘어, 공간과 경험의 열린 가능성으로

by Jeonghoon KIM

설계 실무와 건축 교육에서는 종종 콘셉트(concept)가 설계의 출발점이자 궁극적 판단 기준으로 여겨진다. 많은 건축 설계 스튜디오에서 콘셉트는 설계의 논리를 통일시키는 장치이며, 작품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핵심 질서로 기능한다. 그러나 콘셉트가 절대화되는 순간, 설계는 단일한 의미 구조에 갇히고, 공간이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관계를 제한하게 된다. 건축이 하나의 개념으로 완결될 수 있을까—이 질문은 지금 우리가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할 지점이다.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철학적 실마리 중 하나인 해체주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존 단일 콘셉트 중심 사고를 비판하며, 의미와 경험이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방식을 탐구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특히,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차연(différance) 개념을 통해 의미가 결코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지연된다고 보았다 [1].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의미가 유동적이라는 사실이 곧 ‘의미 없음’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의미의 유동성은 다양한 해석과 층위가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낸다. 즉, 의미가 미끄러지고 지연된다는 사실은 의미의 부재가 아니라 다양성을 의미한다.


Bernard Tschumi가 말하는 공간(space)-사건(event)-움직임(movement)의 충돌과 긴장은 이러한 해체적 관점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2]. Tschumi에게 건축은 사전 정의된 의미를 구현하는 매체가 아니라, 사용자가 움직이고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의미가 생성되는 장으로 이해했다. 공간, 사건, 움직임의 상호작용 속에서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생성되고 재조합된다. 단일 콘셉트가 공간을 규정하는 방식보다, 공간 안에서 발생하는 관계와 경험이 건축적 논리를 형성함을 보여준다.


Islami(2009)는 해체주의를 건축에 적용하며, 의미의 유동성이 결코 무의미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3]. 그는 “삭제(erasure)는 결코 전체적일 수 없으며, 해체는 파괴가 아니다. 소통을 위해서는 공통의 기반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하며, 해체적 접근이 모든 의미를 비워내는 전략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는 기존 질서의 경직성을 풀어내고 새로운 의미의 층위를 생성하는 과정이다.

공간과 사람, 사건이 만들어내는 경험의 층위는 단일 콘셉트로 환원될 수 없다. 사용자가 공간을 걷고 머무르며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설계자는 의미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를 관찰하고 조정할 수 있다.


Hamed Farnia Shalmani(2015) 데리다의 차연(différance) 개념이 건축 설계 과정(conception)에 적용될 때, 설계 절차 자체를 변형하여 기존 위계(hierarchies)나 기존 이론적 기반(foundations)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구조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4]. 설계자는 모든 의미를 통제하려는 절대적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관계 속에서 의미를 관찰하고 조형하는 역할을 맡는다. 설계 과정은 고정된 결론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흩어지고 다시 연결되는 열린 과정이 된다. 이는 설계자가 단일 콘셉트로 모든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사람, 사건과 경험이 만들어내는 복합적 네트워크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조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물론, 콘셉트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지침이 되며, 경쟁적 설계 환경에서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건축은 예술의 한 분야이기도 하며, 결국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콘셉트만으로 설득력을 줄 수 있을까? 오히려 소수 건축가만이 즐기는 자기만족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설계는 끝없는 질문과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과정이며, 공간과 사람, 사건과 경험을 연결하는 장을 만드는 행위다. 사용자가 공간 속을 걸으며, 머무르며, 서로 상호작용할 때, 공간은 비로소 살아 있고 의미 있는 장소로 완성된다.


건축은 단순히 물리적 구조를 만드는 행위를 넘어, 공간과 인간, 경험과 기억, 상호작용과 가능성을 모두 담아내는 종합적 활동이다. 건축가는 설계 과정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열어두고, 거주자와 관계 맺는 공간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단순히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세계와의 관계를 촉진하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설계의 핵심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설계가 반드시 하나의 명쾌한 답으로 귀결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질문과 관계의 변주가 건축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다. 해체주의적 관점은 설계를 ‘의미 없는 모호함’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닫힌 콘셉트가 포착하지 못하는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준다. 의미의 유동성을 인정할 때, 건축은 더 풍부한 경험과 더 넓은 해석의 장을 열 수 있다.


따라서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설계를 여전히 하나의 콘셉트로 설명하는 데 익숙할까,

아니면 그 개념 이후의 가능성을 조금 더 열어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공간을 어떻게 경험할까.

그것을 하나의 설명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머무는 순간마다 달라지는 감각과 기억 속에서 새롭게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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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acques Derrida, Margins of Philosoph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2, 특히 “Différance” 참조. 차연 (différance): 자크 데리다가 1968년 강연 “Différance”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차이(différence)’와 ‘연기(différer)’를 동시에 의미한다. 의미는 다른 의미와의 차이를 통해 존재하며, 항상 지연되어 고정되지 않는다. 이는 언어와 의미, 존재의 유동성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후 글쓰기와 차이 (L’écriture et la différence, 1967), 철학의 주변부(Marges de la philosophie, 1972) 등에서 논의됨.


[2] Bernard Tschumi, Architecture and Disjunction, MIT Press, 1994, p. 162-163.Tschumi는 공간, 사건, 움직임(Space-Event-Movement, SEM)이 서로 충돌하고 긴장을 이루는 순간에 건축적 의미가 생긴다고 설명한다. 즉, 단순히 공간의 형태만으로는 건축을 이해할 수 없고, 사건과 사용자의 움직임이 함께 작용할 때 건축의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접근법은 해체주의 건축과 맞닿아 있다.


[3] Farshad Islami, The Architecture of Surface, University of Edinburgh, 2009, p. 112.


[4] Hamed Farnia Shalmani, Architecture contemporaine et théorie de la Déconstruction: Le processus architectural à l’épreuve de la philosophie, Thèse de doctorat, Université de Strasbourg, 2015, p.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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