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라는 텍스트를 읽는 법 : 프랑스와 한국의 서사

3부. 프랑스와 한국, 도시를 쓰는 방식 - 3.1 프롤로그

by Jeonghoon KIM
지난 여정을 통해 프랑스라는 도시가 규범의 언어로 어떻게 정교한 단락을 구성하고, 그 속에 어떤 미학적 서사를 담아내는지 읽어왔다. 이제 그 낯설고도 치밀한 문법의 렌즈를 한국의 풍경으로 돌려보려 한다.
3부는 도시를 '읽는' 법을 넘어,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도시를 '쓰는' 방식을 대조해 보는 과정이다. 프랑스의 정교한 위계가 만드는 '정합성'과 한국의 유연한 체계가 빚어낸 '역동성'. 이 두 문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단순히 제도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살아갈 도시의 다음 페이지를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에 대한 실질적이고도 철학적인 답을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1920px-Paris_-_20150801_16h07_(10628).jpg 정교한 규범이 만든 수평적 정합성 (Photo: © William Crochot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도시는 단순히 건물과 도로가 모여 있는 물리적인 공간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사람들의 삶과 기억, 자연환경, 문화유산, 그리고 경제적 활동이 겹겹이 쌓여 있는 복합적 체계다. 이러한 공간에서 도시계획과 법은 마치 보이지 않는 글자처럼 도시의 문장을 구성한다. 도로 하나, 공원 하나, 건물의 높이와 용적률, 심지어 보호받는 역사적 건물까지 모든 규정은 도시라는 텍스트에 새로운 문장을 써 내려가는 행위와 같다. 도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그 문장을 읽는 일이며, 법과 계획을 이해한다는 것은 도시라는 서사를 해석하는 일이다.


프랑스와 한국은 서로 다른 역사적·정치적 배경 속에서 도시계획 법과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프랑스는 지방분권과 시민 참여를 중심으로 계획을 세우고, 법적 위계와 제도적 연계를 통해 장기적 비전과 일상적 집행력을 동시에 확보하려 한다. 국토정합계획 (SCOT)과 지역 도시계획 (PLU), 지속 가능한 정비 및 개발 계획(PADD)처럼 상·하위 계획 간 정합성을 갖춘 체계는 단순히 개발을 규제하는 것을 넘어,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까지 고려하는 장치다. 반면 한국은 중앙정부의 강력한 정책 추진력과 행정 효율을 기반으로 신속하게 도시를 확장하고 재정비해왔다. 도시계획의 속도와 집행력은 높지만, 상위·하위 계획 간 연계성과 장기적 전략성에서는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상위 계획의 비전을 하위 집행 단계에서 유연하게 적용함으로써 급변하는 사회적 요구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탄력성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두 나라 모두 지속가능성, 주민 참여, 정책 일관성이라는 고민 앞에서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도시계획법과 제도는 단순한 규제의 틀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이며, 삶의 질과 공간의 공존 가능성을 고민하게 만드는 장치다. 작은 공터 하나의 배치 결정이 수천 명의 일상과 도시의 생태적 균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법과 계획은 행정 서류를 넘어, 도시의 생김새와 분위기, 주민의 행동과 선택까지 조율하는 보이지 않는 손과 같다. 또한 법과 계획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역할도 한다. 역사적 건축물과 문화재를 보호하고, 기존 주민의 생활권과 자연환경을 고려하는 방식은, 단순한 개발이 아니라 도시의 시간과 기억을 존중하는 행위다.


1920px-Downtown_Seoul_from_Inwangsan_in_2023.jpg 유연한 체계가 빚어낸 층위의 역동성 (Photo: © Seoul Tourism Organization / Wikimedia Commons, KOGL Type 1)


도시계획은 기술적 도구이자 행정적 절차일 뿐 아니라, 동시에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어떤 도시를 원하는가,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 환경과 사람, 역사와 경제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균형을 선택할 것인가. 프랑스의 ZAN 정책이나 한국의 개발제한구역, 도시재생 뉴딜처럼 각국의 제도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이자, 현실과 이상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다. 때로는 지방정부 간 토지 배분 갈등, 주택 가격 상승, 농촌 개발 불균형 같은 문제로 논쟁이 발생하지만, 이런 논쟁 역시 도시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제 3부에서는 프랑스와 한국의 도시계획법과 제도를 비교하며, 상·하위 계획과 중앙·지방 역할, 법 체계와 적용 방식, 그리고 이러한 법과 제도가 도시 공간과 주민 삶에 만들어내는 ‘서사’를 함께 살펴보려 한다. 법과 제도가 만들어낸 도시의 문장을 읽고, 서로 다른 제도가 어떻게 도시와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지 관찰하는 과정이다. 결국 도시계획은 기술과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공간, 시간과 기억을 엮어가는 사유의 과정이며, 프랑스와 한국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도시라는 글을 더 깊이 읽는 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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