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프랑스의 정교한 위계와 한국의 유연한 체계가 만드는 공간
도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건물과 도로의 배열을 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도시가 품은 역사, 사람들의 일상, 환경, 그리고 미래 지속가능성까지 담긴 복합적 이야기 속에서 의미와 구조를 찾아내는 일이다. 프랑스와 한국의 도시계획과 법은 바로 그 이야기를 쓰는 문법과 규칙이다. 각각의 제도와 계획은 도시라는 텍스트 안에서 문장과 단락을 구성하며, 그 위계와 연계, 중앙과 지방의 역할은 글의 흐름과 톤을 결정한다.
프랑스에서 도시계획의 기본 틀은 도시계획법 (Code de l’urbanisme) 안에서 확립된다. 이 법 체계 속에서 여러 지자체가 모인 광역 단위에서는 국토정합계획 (SCOT, Schéma de COhérence Territoriale)이 장기적 도시화 방향, 교통체계, 환경 보전 등을 통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SCOT는 하위 계획인 각 지자체의 지역 도시계획 (PLU, Plan Local d’Urbanisme)이 반드시 정합성을 유지하도록 요구하며, 광역과 기초 계획 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설정한다. 이러한 제도는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 팽창에 대응해 장기적 도시화 방향과 광역 단위 정책 조율을 위해 발전했다.
그러나 현실의 공간은 언제나 계획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지방 간 이해관계, 경제적 압력, 교통과 환경 정책의 충돌은 도시의 이야기를 예상보다 복잡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는 서로를 묶는 장치로 작동하며, 장기 전략과 개별 집행 사이의 간극을 최소화하려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PLU는 기초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 도시의 세부 단어와 구절을 다루는 도구다. 필요하다면 여러 코뮌을 통합한 지방자치단체 간 공동 도시계획 (PLUi, Plan Local d’Urbanisme intercommunal) 형태로 확장되기도 한다. PLU는 토지 이용, 건축 형태, 교통, 환경 보전 등 도시 이야기의 다양한 장치를 통합하며, 건축허가 심사 기준으로 실질적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
PLU 안에서 핵심 전략 문서인 지속 가능한 정비 및 개발 계획 (PADD, Projet d’Aménagement et de Développement Durable)은 도시 서사의 장기적 주제와 방향을 설정한다. 환경 보호, 사회적 통합, 경제 활성화, 공공서비스 배치 같은 목표들이 이 문서 안에서 하나의 방향으로 묶이고, 이후 규제 계획(Règlement)과 정비 및 계획 지침(OAP, Orientations d’Aménagement et de Programmation)과 법적으로 연결된다. 이상적으로는 전략과 실행이 하나의 문단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현실에서는 주민 의견, 지역 경제, 환경 보전 요구가 그 문장을 수정하고 덧붙이며 긴장과 변화를 만들어낸다.
다소 많은 용어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전략(PADD)–규제(Règlement)–실행(OAP)이 하나의 체계로 묶여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도시계획 또한 하나의 체계 안에서 움직인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중심으로, 국가 단위의 국토종합계획, 광역 단위의 광역도시계획, 그리고 기초 지자체의 도시기본계획과 도시관리계획이 이어지는 다층적 구조를 이룬다.
국토종합계획은 나라 전체가 어디로 향할지를 그리는 큰 지도에 가깝고, 광역도시계획은 여러 시·군·구를 아우르며 방향을 조율하는 장치다. 다만 한국의 상위 계획들은 하위 계획에 대해 법리적인 '적합성 지침'의 성격을 갖지만, 프랑스의 연동 체제(Compatibilité)와 비교했을 때 행정적 재량권이 넓고 조정과 협의의 여지가 크다 [1]. 이로 인해 상위의 전략적 목표가 하위의 집행 단위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법적 강제력보다는 행정적 조율에 더 의존하게 되며, 이는 계획 간의 단단한 결속보다는 유연한 실행에 초점을 맞춘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유연성은 계획 간 불일치 가능성을 낳기도 하지만, 동시에 빠른 정책 실행과 상황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도시기본계획은 한 도시의 ‘줄거리 개요’다. 앞으로 어떤 도시가 되고 싶은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지를 제시한다. 실제로 용도지역이 정해지고 도로가 놓이며 건물이 들어서는 일은 시·군·구 단위에서 수립되는 도시관리계획에서 결정된다. 도시관리계획은 용도지역·지구·구역 지정, 기반시설 계획, 지구단위계획 등을 구체화한다.
지구단위계획은 특정 구역의 건축 형태, 토지 이용, 기반시설 배치 등을 상세히 규정하며, 실제 건축허가와 개발 집행에서 실질적 기준으로 작동한다. 교통·환경·경관 요소는 대부분 개별 법령에 따라 별도로 수립되지만, 지구단위계획은 계획과 집행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한다.
프랑스의 PLU는 한국의 도시관리계획과 지구단위계획을 합친 성격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적용되면서도 구체적 규제를 포함한다. 용적률, 건폐율, 사선 제한과 같은 규제는 계획의 실효성과 법적 구속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도시관리계획은 상위 계획과 연결되는 방식은 법적 강제라기보다 협의와 조정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2]. 이로 인해 계획 간 통합성은 낮고, 주민 참여 기회는 제한적이거나 일부 절차에서만 법적으로 의무화된다. 지자체의 자율성도 중앙 부처의 협의나 승인 요구로 인해 제약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3].
1960~70년대 경제 개발 계획과 함께 이 체계가 형성되면서 상위 정책 목표와 하위 집행을 연결하려는 구조는 마련되었지만, 법적 구속력과 계획 간 정합성 측면에서는 프랑스와 같은 강한 결속을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능상으로 보면 도시관리계획은 PLU에, 도시기본계획은 PADD에, 광역계획은 SCOT에 대응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 구조와 법적 구속력의 방식은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 프랑스가 문장과 문장을 비교적 단단히 연결해 하나의 단락을 구성하는 방식이라면, 한국은 장면과 장면을 보다 유연하게 이어가는 방식에 가깝다.
이 차이는 상·하위 계획과 중앙·지방 역할 구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프랑스는 SCOT–PLU–PADD라는 삼중 구조를 통해 광역과 기초 계획 간 정합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고, 주민 참여를 필수 화하여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를 계획에 반영한다. 반면 한국은 상위 계획의 전략적 목표와 하위 집행 사이의 연결이 간접적이어서, 정책 목표가 실제 개발 행위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일정한 간격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중앙집중형 구조는 신속한 행정과 강한 정책 추진력이라는 장점을 동시에 지닌다.
현실에서는 다양한 제약과 논쟁이 도시 이야기에 새로운 장을 덧붙인다. 프랑스에서는 지방정부 간 토지 할당 갈등, 농촌·도시 주변 지역 개발 불균형, 일부 지역의 ZAN 완화 요구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는 수도권 중심 그린벨트 개발 논쟁, 도시재생 뉴딜 사업과 공공주택 밀도 문제 등에서 상위 계획과 하위 집행 간 연계 문제와 주민 수용성 문제가 부각된다. 이러한 현실은 법과 제도가 도시 공간을 규정하는 이상적 틀과, 실제 도시의 역동적 변화 사이의 긴장을 보여준다.
결국 상·하위 계획과 중앙·지방 역할 구조를 읽는다는 것은, 도시라는 텍스트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주민의 삶과 환경이 어떻게 조율되는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어떤 서사적 긴장을 만들어내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프랑스는 장기적 비전과 통합적 정합성에 무게를 두고, 한국은 신속한 행정과 정책 실행력에 초점을 둔다. 두 체계 모두 장단점을 갖고 있으며, 서로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지속가능하고 참여적인 도시 설계의 교차점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표는 글에서 설명한 내용을 요약하여, 각 나라의 제도와 계획 체계, 법적 구속력, 주민 참여 및 현실적 조정 방식을 비교한 것이다. 요약하면 프랑스는 ‘정합성 중심 체계’, 한국은 ‘조정 중심 체계’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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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위 계획들은 ‘원칙으로 하되… 조정할 수 있다’, ‘고려하여 수립하도록 할 것’, 또는 ‘수립해야 한다’ 등의 표현으로 명시되어 있다. 즉, 계획 불이행이나 하위 계획과의 불일치가 발생하더라도 법적 제재나 강제 조치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2] 도시기본계획은 전략적 방향 설정을 위한 문서이며, 하위계획인 도시관리계획에 대해 법적으로 통제하거나 세부 지침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위계획이 상위계획과 불일치하게 수립될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열려 있다.
[3] 국토연구원, 『도시관리계획 수립 및 집행 실태와 개선방안 연구』,2021, P. 5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