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법과 제도가 조율하는 두 나라 도시들의 일상적 질감
프랑스와 한국의 건축·주거·환경 관련 법령은 도시라는 ‘사회적 텍스트’를 구성하는 세부 문장과 단락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프랑스는 건축 및 주거법(CCH : Code de la construction et de l’habitation)을 통해 건축물 구조 안전, 화재·지진 대응, 에너지 효율, 접근성, 공공주택 공급 등 건축과 주거 전반을 하나의 일관된 문체로 서술한다. 이 체계는 지역 도시계획 (PLU), 국토정합계획 (SCOT) 등 도시계획과 자연스럽게 연계되어, 상위 계획의 줄거리와 하위 건축 허가의 문장이 충돌 없이 이어지도록 유도한다. 또한 건축 및 주거법은 도시 개발과 주거 정책의 조화를 확보해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는 통합적 서사의 틀을 제공한다.
반면 한국은 건축법과 주택법을 별도로 두어 각 법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도시계획(지구단위계획, 용도지역·지구 지정)과 반드시 일관되게 작동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이원적 구조는 도시라는 텍스트를 읽을 때 계획과 실행 사이의 행간을 넓히는 제약이 되기도 하지만, 분야별 전문성을 극대화하고 주거 공급이나 규제 변화라는 시급한 문항에 신속히 답할 수 있는 명확한 행정 체계를 제공하는 실용성을 지닌다.
프랑스의 환경법(Code de l’environnement)은 도시계획 단계에서 전략적 환경영향평가(EES, Evaluation Environnementale Stratégique)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도시의 서사가 시작되는 단계인 국토정합계획과 지역 도시계획 단계에서 생물다양성, 탄소 배출, 수질·토양·대기질 등 다양한 환경 요소를 검토하고, 그 결과를 계획에 직접 반영함으로써 장기적 도시 전략과 환경 지속가능성을 하나의 문장 안에 녹여낸다.
전략적 환경평가 대상 여부는 환경법의 첨부표[1]에 열거된 프로젝트 유형과 임계값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프로젝트의 유형, 규모, 환경 영향 범위에 따라 평가가 체계적 평가(Systématique) 또는 개별 검토(cas par cas) 방식으로 적용되며, 단순한 면적 기준만으로 대상이 정해지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소규모 계획이라도 환경 영향이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평가가 실시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환경영향평가법(EIA, Environmental Impact Assessment) 또한 도시기본계획이나 관리계획 수립 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도시계획 수립 과정의 필수적인 내부 구성 요소'라기보다 행정 절차상 '외부 부서와의 협의 과정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크다. 이로 인해 환경적 가치가 계획의 서사 속에 완전히 녹아들기보다는,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2]에 대한 사후적 혹은 절차적 검증이라는 주석으로 기능하며 프랑스에 비해 계획과의 유기적 연계성에서 차이를 보인다.
문화재 보호 측면에서 프랑스의 문화재법(Code du patrimoine)은 국토정합계획·도시계획 단계에서 문화재 보존과 역사적 경관을 사전에 통합 검토하도록 규정한다. 문화재 구역, 보호 시야권, 역사적 건축물 경관 통제 등이 계획 문서에 공간적으로 표현되며, 계획 단계에서 개발과 보존 목표를 조율한다.
반면 한국의 문화재 보호 체계는 개별 지정 문화재와 그 주변 보호구역에 대한 '현상변경 허가'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도시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역사적 경관을 하나의 공간적 레이어로 통합 관리하기보다는, 개발 인허가 과정에서 개별 문화재에 미치는 영향을 사후적으로 심의하는 성격이 강해 [3], 도시 전체 차원의 통합적 보존 전략과 개발 계획 사이의 제도적 간극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이로 인해 도시 전체 차원의 통합적 문화재 관리와 장기 보존 전략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한국 도시계획에서 문화재와 역사적 경관을 보존하면서 개발을 추진해야 하는 과정에서 제도적 균열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계획 문서에는 보존 목표가 명시되지만, 실제 집행 과정에서는 행정적 판단, 경제적 압력, 지역 이해관계가 개입하며, 법과 계획이 의도한 통합적 목표가 일부 제한될 수 있다.
프랑스와 한국 모두 계획과 현실 사이에는 조정과 제약이 존재한다. 프랑스에서는 지방정부 간 토지 할당 갈등, 농촌·도시 주변 개발 불균형, 일부 지역에서의 ZAN 완화 요구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는 수도권 중심 그린벨트 개발 논쟁, 도시재생 뉴딜 사업과 공공주택 밀도 문제 등이 상위 계획과 하위 집행 간 연계 문제와 주민 수용성 문제를 드러낸다.
프랑스는 순 토지 인공화 제로(ZAN : Zéro Artificialisation Nette) 정책을 통해 2050년까지 순 토지 인공화를 ‘제로’로 만드는 목표를 법제화하였다. 이 정책은 단순한 신규 개발 억제를 넘어, 기존 시가지 재개발, 도시 재생, 공공시설 재배치 등 도시 구조 최적화를 유도하며, PLU, SCOT, ZAC 등 계획 수단과 직접 연계되어 실제 집행에도 목표가 반영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를 통해 프랑스는 지속가능성과 생태적 균형을 확보하고, 장기 전략과 법적 구속력을 결합한 체계적 토지 관리가 가능하다.
반면 한국은 1971년부터 개발제한구역(Green Belt)을 운영하고 있으나, 전체 국토를 대상으로 한 정량적 인공화 저감 목표는 없으며, 도시계획과 직접적 연계는 제한적이다. 개발제한구역은 중앙정부를 통해 지정·관리·해제되며 [4], 지방자치단체의 조정이나 시민 참여는 상대적으로 제한된다. 따라서 특정 지역 보전에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광역 단위의 지속가능한 공간 전략과 통합되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결국 프랑스와 한국의 법령과 계획 체계는 도시라는 ‘사회적 텍스트’를 집필하고 교정하는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프랑스는 계획과 법령, 환경과 문화재를 하나의 통합된 서사로 엮어 장기적 정합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둔다. 한국은 독립된 문장들의 명확한 역할 구분을 통해 신속한 추진력을 얻지만, 그만큼 문장 간의 유기적 연계와 장기적 지속가능성이라는 맥락을 관리하는 데에는 더 정교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 비교를 통해 우리는 도시 설계와 정책 실행에서 나타나는 법과 현실의 복합적 상호작용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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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annexe à l'article R. 122-2 du code de l'environnement est consultable sur Légifrance à cette adresse : https://www.legifrance.gouv.fr/codes/article_lc/LEGIARTI000049691404
[2]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 별표 2 제2호 가목 3)에 따르면 도시지역(녹지지역 제외)은 계획 전체 면적이 60,000 ㎡ 이상인 경우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이고, 그 외 지역은 전체 면적이 10,000 ㎡ 이상이면 적용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3] 문화재보호법은 보호구역 지정, 현상변경 허가, 매장문화재 조사 등 개별 문화재 단위의 규율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시계획 수립 단계에서 문화재 보존을 통합적으로 반영하는 직접 규정은 제한적이다.
[4]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