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oT, 프랑스 도시의 서사 : 광역 계획으로 읽다

2.4 광역 계획으로 보는 도시 구조와 발전 전략

by Jeonghoon KIM

도시는 결코 하나의 경계로 닫히지 않는다.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맞닿으며 형성하는 생활권은 행정 구획보다 더 넓은 리듬으로 호흡한다. 국토정합계획(SCoT : Schéma de Cohérence Territoriale)은 바로 그 리듬을 구성하는 뼈대인 서사 구조이다. 이는 프랑스의 지방 단체들이 연합하여 하나의 광역 단위에서 장기적 공간 전략을 써 내려가는 제도적 언어로, 도시와 농촌, 중심과 주변을 함께 읽기 위한 공동의 문법이다.


SCoT는 단일 시의 계획이 아니라 여러 코뮌(communes, 프랑스에서 가장 기초적인 행정 단위) 혹은 코뮌 연합(intercommunalités) 단위가 함께 써 내려가는 지역의 서사다. 그 안에는 환경 보전, 교통망, 주택, 경제, 농업 공간 등 도시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문장이 교차한다. 2000년 「도시 연대 및 재생법(SRU)」[1]에 의해 처음 도입된 이 제도는, 이후 2020년 6월 행정명령(Décret n°2020-788)을 통해 현대 도시가 마주한 생태적·사회적 과제에 맞게 갱신되었다. SCoT는 더 이상 단순한 행정 문서가 아니라, 한 지역이 스스로의 미래를 어떤 어휘로 정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철학적 문서다.


계획은 크게 두 개의 주요 장으로 읽힌다.

첫 번째는 전략적 개발 프로젝트 (PAS : Projet d’Aménagement Stratégique), 향후 20년의 전망을 공간적 언어로 번역해 도시화, 교통, 생태 보전이 서로의 문맥을 침범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다. 두 번째는 방향 및 목표 설정 문서(DOO : Document d’Orientation et d’Objectifs)로, 농업, 경제, 상업, 주거, 교통, 에너지 전환 등 각 분야별 지역의 어휘를 세분화한다. 또한 DOO에는 필요에 따라 상업·수공업·물류 개발과 관련된 규정(DAACL : Document d'Aménagement Artisanal Commercial et Logistique) 등이 포함되어, 일상의 경제 활동까지 계획의 구조 속에 편입된다.


그리고 이 두 장은 SCoT 안에서 제시되는 여러 지도와 도식들에도 동일한 문법으로 스며 있다. 넓은 시간의 눈금으로 지역의 공간 구조를 그려내는 지도들은 전략적 개발 프로젝트의 어휘에 속하고, 그 비전을 실제 규정과 목표의 문장으로 분해한 도면들은 방향 및 목표 설정 문서의 문장들에 해당한다. 하나는 지역의 서사를 펼쳐놓는 배경이 되고, 다른 하나는 그 서사를 일상의 규칙으로 번역하는 문장 구조가 된다. 그러나 실제 계획 속에서 이 둘은 종종 하나의 지면 위에서 겹쳐진다. 미래의 공간 구조를 그리면서 동시에 밀도, 환경 기준, 이동 체계의 지침을 함께 표기한 도면들이 바로 그런 혼합형 문장이다. 하나의 지도가 미래의 ‘서사’와 현재의 ‘규칙’을 동시에 보여주며, SCoT가 가진 이중적 성질—비전과 규제—을 한 페이지 안에 공존하게 한다.

실제로 전략적 개발 프로젝트와 방향 및 목표 설정 문서는 법적으로 구분되지만, 도면과 서술에서 두 내용이 자주 혼합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명확히 분리하여 해석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두 문서를 편의상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SCoT의 문장은 단지 지침이 아니라 구속력 있는 서사다. 어떤 개발 프로젝트도 이 계획의 논리와 상충하면 승인될 수 없다. 이는 무질서한 도시 확산(étalement urbain)을 억제하고, 교외의 무계획적 확장을 막으며, 도심의 기능과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장치다.


장기적 공간 구조와 연계성을 보여주는 전략적 지도. 도시 성장 축과 자연/수계 연결 구조를 한눈에 확인 가능 (출처© SMEAT – SCoT Toulouse)


교통, 상업 활동, 주거 등 일상의 공간을 구체적 규칙과 목표로 정리한 지도. 상업시설의 분포와 입지 규칙을 시각화 (출처© SMEAT – SCoT Toulouse)


장기적 비전과 구체적 규제가 동시에 반영되어, 환경 보호와 교통 계획 / 도시 구조가 한눈에 나타나는 통합적 도면(출처© SMEAT – SCoT Toulouse)


프랑스 남서부의 툴루즈(Toulouse) 지역은 광역권을 포함해서 약 90만 명이 사는 대도시권으로, 그들의 SCoT는 도시와 농촌, 산업과 자연이 서로 맞물려 쓰는 복합적인 장편 서사에 가깝다. 이 계획의 중심에는 ‘다핵형 도시 모델(Promouvoir un modèle urbain polycentrique)’이라는 문장이 있다. 하나의 중심이 모든 의미를 독점하지 않도록, 주변 위성 도시들의 자립성과 기능을 강화해 도시의 문맥이 고르게 확산되도록 설계한 것이다 [2].


이 비전은 교통의 언어로 구체화된다. 철도와 트램망의 확장, 자전거 도로 체계 구축, 고밀도 복합개발지구 조성 등 사람의 이동과 도시의 흐름이 새로운 구문 구조로 다시 쓰인다. 한편, 가론(Garonne) 강 유역과 같은 자연환경 보호구역은 ‘금지’라는 부정의 어법으로 도시의 확장을 제어하고, 농업과 녹지 공간은 장기적 문맥으로 보존되어 있다. 태양광, 에너지 효율 건축, 저탄소 교통수단의 우선 투자 — 이 모든 표현은 ‘기후 대응’이라는 한 문장의 다양한 변주다.


이처럼 툴루즈의 SCoT는 지역의 지역 도시계획 (PLU, Plan Local d'Urbanisme), 상업 허가, 산업단지 조성 등 이후의 모든 계획 문서에 어휘와 문체를 제공하는 상위 텍스트다. 툴루즈의 도시가 어떤 리듬으로 성장할지를 미리 설계하는 일종의 문법서인 셈이다.


SCoT는 도시를 규율하는 법령이자, 지역 공동체가 함께 써 내려가는 공동의 미래 서사 구조이다. 행정의 언어로 쓰였지만 그 밑바닥에는 기후 변화에 대한 응답, 지역 간 불균형 해소, 공공서비스 접근성 향상 같은 인간적 가치들이 문맥으로 흐른다. 오늘날 프랑스의 거의 모든 도시가 자신의 SCoT를 갱신하며 새로운 문장을 써 내려가고 있다. 그것은 제도적 문서의 갱신이 아니라, 도시라는 텍스트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시 읽히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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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시 연대 및 재생법 (SRU : Loi relative à la Solidarité et au Renouvellement Urbains) 프랑스의 도시 재생과 사회적 연대, 주택 공급 확대, 교외 및 도심 균형 발전을 목적으로 2000년에 제정된 법률.



[2] Synthèse (총론), Le SCoT en vigueur (현행 Scot), https://www.smeat-agglotoulouse.fr/?page_id=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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