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개구리를 통해 배우는 유리 멘탈 강화법
지난 일요일, 나는 우리 집 두 여자와 함께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에 다녀왔다.
사실, 그리 인상 깊게 다가온 전시회는 아니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낮잠에서 덜 깬 딸아이를 안은 채 관람해야했기 때문에 진득하게 감상할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다만 저 진귀한 피사체들을 담아내기 위해 렌즈 너머에서 고군분투했을 사진가들의 숨은 노고가 사진을 통해 느껴지면서 잠시 숙연한 마음이 들긴 했다.
14Kg짜리를 한 시간 가까이 안고 있느라 팔이 아픈 나머지 한시라도 빨리 관람을 끝낼 생각에 서둘러 전시장을 나서려던 내게 우리 딸 채연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 유리 개구리 한 번만 더 보고 가자!"
그래서 우리는 다시 유리 개구리 사진 앞으로 다가갔다. 첫눈엔 그냥 슬쩍 지나쳤던 유리 개구리 사진을, 나는 채연이 덕분에 다시 제대로 들여다 보게 된 것이었다.
투명한 피부를 통해 배 속의 장기와 알까지 훤히 보이는 '유리 개구리'는 라임(rhyme)이 살아있는 예쁜 이름과는 달리, 아름다움보다는 징그러움 쪽에 더 가까운 비주얼을 지녔다.
그렇게 속을 훤히 드러내놓고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취약해 보이는 유리 개구리를 들여다 보고 있자니, 싫은 소리 한 번에도 쉽게 흔들리고마는 내 유리 멘탈이 꼭 저런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움찔하는 나였다.
지난 주 월요일인 8월 12일부터, 나는 책 출간을 위한 원고 투고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총 서른한 곳의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내놓은 상태다.
브런치북 '현실육아(https://brunch.co.kr/brunchbook/reality )'를 만들면서 쓴 책 소개와 목차를 보강하는 한편, 사진이 포함된 원고가 돋보일 수 있도록 인디자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원고 편집도 새롭게 했다.
그렇게 해서 장장 2주일에 걸쳐 출간제안서를 완성했을 당시만 해도, 나는 자신만만하고 의기양양했다.
'한꺼번에 너무 여러 곳에서 연락이 오면 어떻게 대응하지? 엄선해서 몇 군데만 투고할까?'
'연락이 온다고 무조건 덥썩 계약하지 않을 거야.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하자!'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내 멘탈은 거절 메일 한 통에 여지없이 무너져버리고 만다.
보내주신 원고는 잘 검토해보았습니다만,
저희와는 방향이 맞지 않아 출간은 어렵겠습니다.
귀한 원고 보내주셨는데 긍정적인 답변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뜻 맞는 곳에서 좋은 책으로 출간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S출판사 논픽션팀 담당자가 실명으로 보내온 메일 끝에 붙은 선심성 문구처럼, 정말 뜻 맞는 곳에서 좋은 책으로 출간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예의를 갖출 만큼 갖춘 저 이메일이 내 멘탈에 이토록 아픈 데미지를 입히는 건 왜일까?
지난 1주일간 내가 투고한 31개의 출판사 중 현재까지 응답을 준 곳은 모두 여섯 군데다.
그중 세 개는 원고가 접수되었음을 알리는 자동 메일이었고, 나머지 세 개가 거절 메일이었다.
첫 거절 메일은 꽤 인지도 높은 M출판사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해당 출판사의 경우, 에세이 장르는 내부 기획을 통해 청탁된 원고에 한해서만 출판한다는 방침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두번째 거절 메일을 보낸 Y출판사는 해당 분야의 책을 내지 않는다는 답을 보내왔는데, 알고 보니 그 출판사는 인문학과 동아시아 관련 서적들만 출간하는 곳이었다.
앞서 받은 두 통의 거절 메일은 투고한 당일에 받은 것이었고 예외적인 상황이라 여겼기 때문에, 내 나름의 심리적 방어가 가능했다.
그런데 S출판사가 1주일 간의 검토 기간을 거쳐서 오늘 보내온 세번째 거절 메일은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한꺼번에 너무 여러 곳에서 연락이 오면 어떻게 대응하지?'
그런 같잖은 걱정을 하고 있던 나에게로 현실 자각의 쓰나미가 몰려오면서, 나는 곧 절망의 급류에 휩쓸리고 만다.
'서른한 곳 모두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그런데 말이다.
약해 보인다고 해서 꼭 약한 건 아니었다.
투명한 몸을 가진 유리 개구리는 주변 환경과 잘 동화되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부가 훤히 드러나서 취약해 보이는 유리 피부는 오히려 천적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는 방어수단인 셈이다.
그리고 부성애 강한 수컷 유리 개구리는 삼투압과 소변을 이용해 알을 촉촉하게 유지하면서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데, 알을 노리고 덤벼드는 말벌에게 뒷다리 킥으로 맞서는 용감함을 보이기도 한단다.
약해 보였던 유리 개구리의 투명 피부에 생존과 직결된 당위적 이유가 숨어 있듯, 예민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내 유리 멘탈에도 분명 존재 가치라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사에 대한 감동과 분노의 역치가 매우 낮음과 동시에 내 안에서 피어나는 희로애락을 좀처럼 감추지 못하는 내 유리 멘탈 덕분에, 나의 글쓰기도 가능한 게 아닐까?
나는 앞으로 몇 통의 거절 메일을 더 받게 될지 알지 못한다.
발신인에 출판사 이름이 보이는 메일 알림이 울릴 때마다 내 심장은 철렁할 것이고, '저희와는 방향이 맞지 않아 어쩌고저쩌고…' 하는 글귀를 볼 때마다 내 유리 멘탈은 어김없이 데미지를 입고 말겠지.
하지만 나는 맷집을 키울 필요가 있다. 거절의 충격과 아픔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도 계속 글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말이다. 거절당하는 게 두렵다고 글쓰기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순 없지 않은가?
내가 글쓰기를 지속하는 한 거절의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미래의 나에게 이렇게 당부해본다.
거절 메일을 받게 되더라도, 긍정의 삼투압을 이용해 내가 취할 것만 취하고 절망의 불순물은 차단하는 기능이 있는 스마트한 유리 멘탈로 거듭날 것!
지금 내가 하고있는 시도가 설혹 '유리 개구리의 목숨 건 뒷다리 킥' 만큼이나 무모한 일일지라도, 망가짐 없이 내 소중한 꿈을 지키며 뜨거운 열정을 발산하는 강화 유리 멘탈이 될 것!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유리 멘탈 님들,
파이팅입니다!
[커버 이미지 : ChristopherPluta(pixab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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