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갑이 되는 그날을 꿈꾸며
지난 8월 12일부터 2주일에 걸쳐, 나는 총 40여 군데의 출판사에 투고한 바 있다.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중에 한 곳과 인연이 닿아, 종이책 출간을 진행하게 되었다.
현재 나와 출간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인 출판사는 투고 메일을 보낸 당일에 바로 답신을 보내왔더랬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소○○○○○ 대표 박○○입니다.
우선 원고 투고에 감사드립니다~
게다가... 제가 요즘 육아 문제로 친정이 있는 수지에서 살고 있는데
피터소아청소년과란 이름을 보니 이것도 인연인듯하여 반갑습니다. :)
지금 원고 열어서 읽고 있는데, 필력이 좋으시네요.
쭉 읽어보고 답메일 다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후 진료 잘 보시고요.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그다음 날, 내 원고를 모두 검토해보았다는 대표님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미팅 약속까지 잡게 되었다.
그리고 (반휴일인 금요일이었던) 8월 30일 오후, 나는 오전 진료를 마친 후 개포동에 위치한 출판사로 찾아갔다.
나보다 세 살 연상인 대표님은 S출판사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다가 퇴사 후에 독립한 베테랑 편집인이라고 했다. 대표 겸 에디터이면서, 때로는 직접 글도 쓰신다고….
허세 없이 진솔하면서도 담백한 언변에서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연륜과 함께 명민한 동물적 감각이 느껴졌다.
대표님은 내게 두 가지의 출간 방향을 제시했다.
플랜 A : 내가 투고한 원고 그대로 사진이 들어간 '육아 에세이집'으로 출간한다.
플랜 B : 원고를 보강하고 추가해서, 육아 에세이뿐만 아니라 소아 질환과 육아 전반을 다루는 '본격 육아책'으로 발간한다.
"선생님의 원고는 그 자체로 한 권의 책으로 엮을 가치가 충분합니다. 하지만 사진이 들어간 에세이집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 손익분기점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판매량에 대한 기대치도 낮게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독자가 필요에 의해 찾는 책을 만들면, 좀 더 탄탄한 구매층을 확보하면서 안정적인 입지를 구축할 수 있고 꾸준한 판매도 기대할 수 있죠."
작가가 내고 싶어 하는 책과 시장이 원하는 책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한다는 대표님의 말에 수긍이 가면서도, 작가로선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인지도 없는 작가의 책이 시장으로부터 관심을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미 한 번의 자비 출판 경험을 통해 몸소 절감한 바 있는 나로선 절대 반박 불가한 팩트 중의 팩트였다. 내가 내고 싶은 책은 분명 플랜 A 쪽이지만, 그런 스타일의 책이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건 정말 드문 일임을 잘 안다. 자기만족에 그치는 책이 아니라 팔릴 만한 책을 내고 싶은 건, 나 역시 마찬가지란 말이다.
그렇다고 대표님이 줄곧 현실적인 이야기만 하신 건 아니었다. 투고 원고에 포함된 내 수필 작품에 대해선 이런 말씀도 해주셨다.
"육아책에 들어가기엔 좀 아까운 마음이 드는 작품들도 보였습니다. 그런 작품들은 선생님이 더 유명해지신 다음에 에세이집으로 출간하시는 게 훨씬 더 좋을 것 같아요."
책 내고 싶은 사람은 넘쳐 나고 책 사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출판계의 현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도 내 원고의 가치를 인정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더해 진심 어린 조언까지 해주었다.
"마음은 이미 긍정 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다만 제 결심이 서야 하니,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가진 후에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미팅에선 그런 말을 남긴 후에, 확답 없이 출판사 문을 나선 나였다. 그런데 이틀 후인 일요일 오후에, 나는 대표님에게 전화를 걸어 최종 답변을 하기에 이른다.
"대표님 같은 분과 작업할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요. 열심히 한 번 잘해보겠습니다! 저는 보기보다 꿈이 좀 높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제 욕심을 잘 감당해주셔야 하고, 좋은 방향으로 잘 이끌어 주셔야 해요!"
그리하여 나는 지난 4월부터 준비해온 '육아책 출간 프로젝트'를, 마침내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틀 전, 나는 똑같은 내용을 기입한 출간 계약서 2부를 빠른우편으로 송부했다.
지난 4개월 동안 그토록 간절히 꿈꿔왔던 순간이었건만, 막상 계약서를 쓸 땐 철자 틀리지 않도록 신경 쓰느라 별다른 감회를 느낄 새도 없었던 듯하다.
다만 내 이름 옆에 찍힌 '갑(甲)'이라는 글자를 보며, 잠시 우쭐하면서도 조금은 황송한 기분이 들었다.
글쟁이로 살아갈 결심을 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태 스스로 인정할 만큼 굳건한 그 무엇이 되지 못한 나에게, '갑'이라는 칭호는 아직 과분하다고 해야 할까?
요컨대, 아직은 내가 바라는 ‘무엇’이 되기보다는, 일단 ‘무엇’이라도 되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나다.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그 ‘무엇’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언젠가는 '갑'이라는 호칭에 어색한 민망함을 떠올리지 않는 진정한 갑이 될 날을 꿈꾸며,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써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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