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카르텔의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밀입국한 소년의 이야기
이전에 이 블로그에서 <로마>라는 멕시코 영화를 소개한 바 있다. 오늘 소개하는 <나는 여기에 없다>(Im No Longer Here) 역시 2019년 멕시코에서 제작된 영화이다. 이 영화는 2020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는데, 비평가들로부터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 부문 후보 명단에 선정되었으나, 후보에 오르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마약 카르텔과 갱단이 지배하는 멕시코 시티의 언덕 빈민가에 사는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작품이다. 갱단의 복수를 피해 미국으로 밀입국한 소년 율리세스가 현실의 생활과 과거 멕시코에서의 생활을 회고하는 장면이 엇갈리고 있다.
저 멀리 멕시코-미국 국경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길, 그곳까지 율리세스를 태워다 준 그의 부모는 율리세스에게 얼른 미국으로 밀입국하라고 재촉한다.
2011년 멕시코 몬테레이의 빈민가에 살고 있는 17세 소년 율리세스는 “로스 테르코스”라는 조직의 두목이 되었다. 말이 좋아 조직이지 실은 율리세스 또래나 그보다 어린 동네아이들로 구성된 골목 패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춤과 노래를 즐기고, 가끔씩은 학교 친구들로부터 작은 돈을 뜯기도 한다. 로스 테르코스 멤버들은 밝은 원색의 헐렁한 옷을 입고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괴상한 모습의 헤어스타일을 자랑한다.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몰려다니며 춤추고 노래하는데 보낸다.
율리세스는 MP3 플레이어가 사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를 마치고 나오면서 힘없는 친구에게 돈을 뜯는다. 그 광경을 로스 F라는 소년 갱단이 목격하였다. 로스 F는 율리시스보다 나이가 조금 더 든 소년들로 구성된 패거리이다. 이들은 로스 테르코스 멤버들보다 나이가 좀 더 들어서인지 불법적인 일들을 저지르고 있기도 하다. 로스 F는 율리세스에게 이번만은 봐주겠지만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얼마 후 로스 F의 멤버 가운데 하나가 경찰에 체포되자, 테르코스 멤버 아이 하나가 체포된 로스 F 멤버의 라디오를 훔쳐서는 로스 F에게 장난을 친다. 이를 안 로스 F의 멤버는 계속 이런 장난을 치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다음날 율리세스는 사과와 라디오를 돌려주기 위해 로스 F 멤버들을 찾아간다. 그때 율리세스는 다른 갱단이 로스 F 멤버들을 습격하여 그들 대부분 죽이고 도주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로스 F 멤버 가운데 중상을 입고 겨우 살아남은 아이 하나가, 율리세스가 자신의 멤버가 가지고 있던 라디오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는 율리세스가 자신들을 습격한 갱단과 연결되어 있다고 오해한다. 그는 율리세스에게 배신자라고 비난하며,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가족 전부를 몰살시키겠다고 협박한다. 그 대신 그는 율리세스가 미국으로 밀입국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준다.
율리세스는 미국의 도시로 밀입국해 왔지만 가진 돈이 한 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영어도 한 마디도 할 줄 모른다. 그는 겨우 막노동을 하는 패거리와 만나 그들과 함께 살게 된다. 율리세스는 패거리 리더를 따라 중국인 노인이 경영하는 가게에 옥상 수리를 하러 간다. 패거리 리더는 일을 마치는데 2주일이 걸린다고 하지만, 가게 주인인 노인은 4일이면 충분하다고 해서 결국 그 일은 취소된다. 결국 일도 못하고 다시 패거리와 함께 숙소로 돌아온 율리시스는 멤버들과 사소한 일로 다투고는 그 패거리를 뛰쳐나온다.
율리세스는 다시 중국인 가게를 찾아갔다. 자신이 혼자 일하겠으니 자신에게 일을 맡겨 달라고 하고, 가게 주인인 로 노인은 이를 승낙한다. 로의 손녀인 린은 율리시스에게 흥미를 표시한다. 그러나 린은 스페인어를 모르고, 율리세스는 영어를 모르므로 둘 사이의 의사소통은 쉽지 않다. 이때부터 린은 율리세스가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사전을 사주기도 하고, 틈틈이 영어도 가르쳐준다. 그리고 갈 곳 없는 율리세스에게 옥상 위의 낡은 헛간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율리세스는 지하철역과 거리에서 춤을 추며 돈을 벌려하지만, 경찰의 단속으로 그 일도 힘들게 되었다. 그는 린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지만, 맥주에 취하자 집생각이 나서 견딜 수 없어 혼자 그 자리를 빠져나온다. 율리세스는 고향의 어머니에게 집에 돌아가고 싶다며 전화를 한다. 그렇지만 그의 어머니는 로스 F가 율리세스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다면서 돌아올 생각을 말라고 한다.
율리세스는 갈 곳이 없다. 할 수 없이 이전 라틴 바에서 잠시 만난 적 있는 나이 든 호스티스의 집에 찾아간다. 그녀는 거의 율리시스의 엄마뻘 정도의 나이이다. 그녀는 오늘 하루만은 재워줄 테니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말라고 한다. 다음날 율리세스는 거리를 돌아다니다 시너 한 병을 사고 그것을 흡입하고, 자신의 자랑거리였던 머리칼을 깎는다. 린을 찾아갔지만, 그녀 역시 더 이상 율리세스를 받아주지 않는다.
율리세스는 노숙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몇 달 동안 수용소 생활을 한 후 멕시코로 송환된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몬테레이의 빈민가로 돌아왔다. 그곳은 이미 로스 F가 마을을 지배하고 있고, 로스 테르코스의 멤버 대부분이 범죄 조직에 가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율리세스는 옛 친구 중 한 명의 장례식에 참석한 후, 친구 제레미를 찾아간다. 제레미가 함께 지내자고 제안을 하지만, 율리세스는 혼자 거리에서 살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MP3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이 영화는 범죄가 지배하는 멕시코의 빈민가에서 암울하게 살아가는 소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목숨에 위협을 느껴 어머니의 강요로 미국으로 밀입국하지만, 그 풍요한 사회에서도 주인공 율리세스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없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군대까지 동원하여 멕시코인들의 밀입국을 막으려 하고 있다. 갱단과 마약카르텔이 지배하는 멕시코 사회는 범죄의 온상이고, 미국의 마약은 대부분 멕시코를 통해 들어온다. 이런 점에서 미국으로서는 멕시코를 “나쁜 이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그런데 이 영화 마지막에 재미있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멕시코의 비극은 세계 최대의 마약소비국이자, 총기 소지에 제한이 없는 국가를 이웃으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나쁜 이웃을 두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멕시코가 나쁜 이웃을 두고 있는지 모르겠다. 시각에 따라 동일한 문제에 대해 이렇게 달리 인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