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6b) 칭다오에서 둔황까지- 중국 횡단여행 (32)
란저우를 방문하면서 지금까지 찾았던 명소와 문화재들은 대부분 실크로드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란저우나 둔황이 옛날부터 실크로드 때문에 생긴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이들 도시의 명승지를 방문하는 동안 실크로드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고 실크로드와 관련한 여러 의문이 들기도 하였고,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틈만 나면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다음은 실크로드와 관련하여 내가 가졌던 의문과 그 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시안에서 로마까지의 거리는 약 6,400킬로 정도였다. 그러므로 상인들이 시안을 출발하여 실크로드를 통해 로마에 도착하기까지는 최소한 8개월, 대개는 1년이 넘는 기한이 필요하였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 로마까지 상품을 운송하고 돌아오는데 걸리는 왕복 여정이 약 2년 정도라는 기록이 있으며, 마르크폴로는 이탈리아에서 중국까지 3년 반이 걸렸다고 한다. 다만 마르코폴로는 중국으로 가는 도중에 여러 곳에서 탐험도 하고 머무르기도 하였으므로 그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국에서 로마로 간 비단의 가격은 어느 정도였을까?)
내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중국에서 건너간 비단의 가격이 도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하는 점이었다. 상인들이 중국에서 비단을 구입하여 로마로 가서 팔았다. 수송기간을 1년 정도로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비단을 구입하는 원가에 더하여 수십, 수백 마리의 낙타의 이용에 필요한 비용, 상단 일꾼들에 대한 급여, 도둑을 막기 위한 호위병에 대한 지출, 숙식비 등 여행비용, 도중에 상품이 손상될 가능성, 강도 피해의 가능성, 투자자본에 대한 비용 등 수많은 비용요인이 발생한다. 이를 감안한다면 비단 한 필(약 0.5m X 10m)의 가격이 중국과 로마에서는 각각 어느 정도였을까?
이미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학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여러 가지 추계방법을 통해 당시 실크로드를 통해 건너갔던 비단의 가격을 추정하였다. 그러나 학자들마다 그 결과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로마에서 중국 비단이 엄청난 가격으로 팔렸다는 점에서는 대략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다. 대개 중국의 비단이 로마로 가면 가격이 수십 배에서 백배 이상으로 높아진다는 데는 의견이 접근하는 것 같다.
당시 중국에서의 비단가격은 품질에 따라 큰 차이가 있으나, 남아 있는 기록으로 추정한다면 현재 가치로 대략 한필에 50만 원~200만 원 정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미나이는 중국의 은화와 군인의 급여, 딥시크는 당시의 화폐에 의한 비단과 쌀 가격의 비교, 챗GPT는 중국의 은화가치를 기준으로 이상과 같은 추정결과를 내놓았다.
그럼 로마에서는 비단 한 필의 가격이 어느 정도였을까? 로마에서는 중국 비단이 최고의 사치품이었고, 그 가격은 중국 현지 가격의 수십 배 내지 백배 이상에 달하였다. 로마에서 비단의 가격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더 비쌌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기록은 그냥 과장된 비유적 표현일 뿐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로마의 2대 황제 티베리우스는 비단 수입 때문에 로마의 금이 유출되는 것을 걱정하였고,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아내에게 비단 드레스는 입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고 한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옷 한 벌 당 금 몇 킬로그램이 나갔다고 분노했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최고가격법령에서 비단 1파운드 가격을 12, 000데나리우스로 정했는데, 이는 당시 로마 군인 한 명의 10년 치 연봉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은 단편적 기록은 그동안의 상대가격 등의 변화 등을 감안한다면 당시 로마의 비단가격을 현재가격으로 정확히 환산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로마의 비단가격은 현재가치로 작게는 수백만 원, 크게는 수억 원으로 추정하기까지, 편차가 꽤 큰 편이다.
그러면 로마에서 비단은 다른 직물과 비교할 때 가격이 어느 정도였을까? 당시 로마인들이 이용하는 옷감은 모직, 리넨, 면과 최고급품인 비단이 있었다. 리넨의 가격을 10이라 했을 때, 모직의 가격은 5~10, 면의 가격은 10~15, 비단의 가격은 1,000~10,000 정도였다고 한다.
실크로드를 오가는 상단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 보통 낙타 300~400마리 정도의 규모가 일반적이었고, 대형상단은 1,000마리도 넘었다고 한다. 작은 상단은 수십 마리 정도의 규모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 상단은 우두머리 격인 상인이 일꾼, 낙타몰이꾼, 잡역꾼 등과 함께 도적에 대비하여 호위대도 거느렸다고 한다. 그래서 큰 상단의 경우 전체 인력이 1,000명을 넘었으며, 보통은 몇백 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가 가장 의문스럽게 생각하였던 것은 이렇게 많은 대형상단을 이동하는데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점이었다. 특히 호위대의 경우 이건 그냥 돈 먹는 하마이다. 이런 호위대를 1년 이상에 걸친 여정에 동행한다는 것은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그뿐만 아니다. 이들 호위대를 동행한다고 할 때 그들이 도둑에 제대로 대응하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상단이 운반하는 상품은 막대한 가치를 지닌 재물이다. 이를 도둑들이 그냥 둘리가 없다. 도둑들로서는 서로 연합하여 대부대를 만들어 상단을 습격할 가능성도 있다. 이 위험을 어떻게 회피하는가의 문제이다.
결국 의문은 모두 풀렸다. 실크로드를 이용하는 상단 가운데 실제로 시안에서 로마까지 이동하는 상단은 전혀 없었다. 모두들 중계무역을 하는 것이었다. 실크로드 구간은 크게 ① 중국 내 이동, ② 중앙아시아 단계, ③ 페르시아 상인 단계, ③ 동지종해 단계, ⑤ 로마 내 유통단계 등
5개 구간으로 나뉜다. 이들 구간은 다시 더 좁은 소구간으로 나뉜다. 이들 구간에서 상품은 상인과 상인의 손으로 차례로 넘어가며 비단은 로마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개는 5~8 단계, 많은 경우는 20단계 이상을 거쳐 중국의 비단이 로마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보통 상업이나 물류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유통단계(혹은 거래단계)가 있다. 그러면 대부분의 거래는 그 효율적인 유통단계와 유사한 모습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왜 5~8단계와 20단계 이상이라는 큰 차이가 발생하는가?
이는 동일한 거래를 관측하는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단은 크게 5~8단계를 거쳐 이동한다. 이는 물류를 가리키는 것이다. 상단은 이동하는 동안 수많은 도시와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상품은 그대로 둔 채 상인들 사이에 그 권리 혹은 소유권을 사고파는 거래가 형성된다. 즉 하나의 상단이 이동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유자는 계속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거래 형태는 현대에서도 흔히 관찰된다. 아파트 분양권을 사고파는 것과 똑같은 형태이다.
이러한 중계무역은 비용을 크게 낮춘다. 즉 상품의 이동에 따라 소유권이 바뀜으로써, 결국 상단은 계속 “특정 상인의 나와바리”안을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할 경우 도둑의 방지, 호위대의 확보, 상단에 대한 편의 제공 등 여러 면에서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중국의 비단이 로마로 흘러들어 갔다면 중국으로 유입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상단들은 귀환 길에는 역시 서양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가품을 싣고 중국으로 들어왔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말이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한혈마(汗血馬)는 예로부터 중국에서 최고의 군사용 말로 평가받았다. 그 외에 낙타, 고품질의 고급 모직물도 주요 수입품이었다.
로마제국에서는 비단을 사기 위해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이 유출되었다. 또한 당시 중국에서는 생산할 수 없었던 로마산 고급 유리제품과 함께 터키석, 산호, 진주, 루비, 사파이어 등 다양한 보속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왔다. 포도주, 향신료 역시 중국의 주요 수입품이었으며, 호두, 석류, 오이, 포도 등의 식물도 이때 중국으로 들어왔다.
실크로드 무역은 이렇게 동서양 쌍방이 상품을 주고받는 거래처럼 보였으나, 실제는 중국 비단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불균형 무역이었다. 중국은 비단을 팔아 막대한 이익을 얻었으나, 돌아오는 상품 중에는 자국 군마를 제외하면 비단만큼의 대규모 산업적 가치를 지닌 품목은 적었다. 이 때문에 로마 제국에서는 비단을 사기 위해 대량의 귀금속이 지속적으로 동쪽으로 유출되는 문제로 골치를 썩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