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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의 풍경에 취해서...

(2025-10-10a) 칭다오에서 둔황까지- 중국 횡단여행 (41)

by 이재형

(케이블카를 타고 계곡 위로)

황룡(黃龍)은 민산산맥의 계곡으로서 석회질 침전물이 흘러내려 형성한 황금빛 용의 비늘 같은 지형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황룡의 가장 큰 특징은 석회 성분을 함유한 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침전되면서 만들어진 수천 개의 다채로운 계단식 연못이다. 특히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오채지(五彩池)는 황룡의 대표 명소로서 햇빛의 각도에 따라 에메랄드, 녹색, 파란색 등 영롱한 오색 빛깔을 띠는 것으로 유명하다.


케이블카를 타니 종점까지 금방 오른다. 구채구는 거의 30킬로에 이르는 길고 긴 계곡이지만, 여긴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계곡 길이가 7.5킬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종점에서 내리니 근처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오르니 황룡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산들과 아래로 펼쳐지는 황룡의 풍경이 내려다 보인다 이곳에서는 바로 출구를 향해 지름길로 내려갈 수도, 약간 우회하여 황룡의 최고 절경인 오채지를 둘러보고 내려갈 수도 있다.


집사람은 어제 구채구에서 너무 무리를 해 힘들다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겠다고 한다. 나는 걸어서 내려가기로 하고 혼자서 오채지로 향했다. 전망대에서 오채지로 가는 길은 거의 평탄하거나 근소하게 오르막인 데크 길이었다. 집사람과 헤어지면서 만약에 내가 버스 시간에 맞춰 내려오지 못한다면 혼자 버스를 타고 돌아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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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지 풍경

(누런색 바위 위를 흘러내리는 맑은 물, 오채지)

약 3킬로 정도를 걸었다. 어제 무리를 한 탓일까 왼쪽 무릎 관절이 아파온다. 이 상태로 계속 걸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잠시 쉬고 나니 통증은 사라진다. 저 앞에 관광객들이 몰려있는 곳이 보인다. 오채지라 생각했는데, 기대했던 못은 보이지 않고 누런색의 바위 위로 물이 흘러내리는 편편한 암반밖에 없다. 이곳이 오채지였다. 넓은 누런색 바위 위로 얕은 물이 흐른다. 처음에는 황톳물인가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물은 맑고 바위 색깔이 누렇다.


사전에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오채지는 물의 색깔이 다양하고 영롱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누런 색의 물뿐이다. 날씨가 흐려 햇빛의 반사가 없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하튼 기대했던 것보다는 실망이다.


오채지를 크게 한 바퀴 돌고 내려오니 옆으로 사원이 보인다. 황룡고사란 사원으로서, 크진 않지만 오밀조밀하게 예쁘게 생긴 절이다. 들어가는 문은 아주 크다. 도교 사원인데 티베트 불교적 형식이 많이 가미되었다고 한다. 절 구경을 하고 나왔다. 근처의 팻말에 출구까지 5.2 킬로라 표시되어 있다. 시계를 보니 오후 한 시이다. 오후 4시까지 세 시간이나 남았으니 이 정도라면 굴러서라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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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계곡의 수많은 샘과 계곡)

아래쪽으로 내려가는데 특별한 경치는 보이지 않는다. 오채지와 비슷한 형태로 누런 바위 위로 물이 흘러가는 광경이 주 나타난다. 조금 더 내려가니 금사포지(金沙鋪地)가 나온다. “황금 모래를 펼쳐놓은 땅”이란 뜻으로 광대한 황금빛 석회암 퇴적지형이다. 그 위로 물이 흐르고 있으니 마치 황톳빛 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 “산 위에 위치한 황하”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곳을 내려가도 비슷한 모습의 지형과 계속 나왔다. 비로소 왜 이곳이 “황룡”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이해가 간다. 이 계곡이야 말로 계속되는 누런색 바위로 인해 하늘에서 보면 큰 황룡이 누워있는 모습일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왔다. 경치를 구경하면서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내려오다 보니 그제야 구채구에서 볼 수 있었던 계단식 푸른 못이 점점 늘어난다. 못이 크지는 않지만 매우 아름답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계단식 샘과 못은 점점 다양해지고 작은 폭포들까지 보인다.


황룡믜 진면목이 이제야 보이는 것 같다. 아래쪽의 경치는 오히려 구채구보다 나은 면도 있는 것 같다. 황룡은 아래로 내려올수록 점점 더 경치가 다양해지고 아름답다. 곳곳에 있는 코발트색의 작은 샘과 못은 마치 환상의 세계를 보는 듯하다. 정말 경치에 취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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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까지의 표지판이 없어)

그런데 지금 어느 정도 내려 욌는지 모르겠다. 구채구와 황룡 모두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다. 공원 안에는 많은 표지판이 있다. 거의 몇십 미터마다 여러 가지 길 안내 표지판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구까지의 거리가 거의 표시되어 있지 않다. 출구 방향 표시는 많은데 거리 표시는 없다.


시계를 보니 3시 반 정도 되었다. 앞으로 30분 내에 버스로 돌아가야 한다. 2시 무렵에 출구까지 3.5킬로라는 표지판을 본 후 지금까지 출구까지의 거리 포시를 본 적이 없다. 이후 한 시간 반이 지났으니 그동안 아무리 천천히 걸었어도 지금쯤은 출구 근처에는 와 있어야 한다. 그래도 거리를 확신할 수 없으니 자꾸 불안감이 들어 걸음을 재촉한다.


기다리던 거리 표지판이 드디어 나타났다. 출구까지 1.5킬로미터라고 표시되어 있다. 시계를 보니 벌써 3시 40분이다. 버스를 놓쳤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때부터 발걸음을 빨리했다. 잘못하다 넘어지면 큰일 난다. 위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있는 힘을 다해 속도를 높였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버스가 기다리는 곳까지 내려오니 4시 15분. 겨우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시간에 쫓겨 놓친 황룡의 절경)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고 생각한 집사람도 지름길을 통해 걸어서 내려왔다고 한다. 집사람은 황룡 최고의 경치들은 출구와 가까운 곳에 많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마지막 1.5킬로를 허겁지겁 정신없이 내려오느라 다 놓쳤다.


여하튼 구채구의 숙소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황롱 관리당국의 처사다. 수많은 길 안내 표지판을 세워두면서 왜 출구까지의 거리를 표시해두지 않은지 모르겠다.


출구 방향표시는 많다. 그런데 거리 표시는 없다. 이곳은 대중교통 여건이 아주 나쁜 곳이다. 오후 5시만 되면 대중교통은 끊어진다. 탐방객들이 출구에 도착하는 시간을 예측하여야 안심하고 황룡의 경치를 즐길 수 있을게 아닌가. 어디선가 거리표시가 있었는데 내가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정도 거리 표시는 누구나가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보기 좋게 그리고 자주 표시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구채구의 숙소에 돌아왔다. 밤중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하더니 비가 쏟아진다. 당초 일기예보에는 이번 3일 동안 내내 비가 온다고 했는데, 다행히 예보는 빗나고 여행이 끝나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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