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네로의 광기와 기독교인의 박해 속에서 피어난 사랑
■ 개요
영화 <쿼바디스>(Quo Vadis)는 네로 황제 통치 말기의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하는 종교 역사 영화로서, 1951년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폴란드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헨리크 시엔키에비츠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나중에 세계적 대스타로 성장한 소피아 로렌과 버드 스펜서도 엑스트라로 출연하였는데, 이 당시는 둘 다 무명이라 출연자 이름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서기 64년부터 68년 사이인데,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사건 및 인물을 결합하고, 그 기간 동안의 주요 사건들을 불과 몇 주 동안의 시간으로 압축하였다. 주요 주제는 로마 제국과 기독교 간의 갈등, 그리고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말기의 기독교 박해이다.
이 영화는 작품상을 포함하여 8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며,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두어 MGM을 파산 직전에서 구해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피터 유스티노프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로버트 서티스와 윌리엄 V. 스칼은 최고 촬영상을 수상했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로버트 테일러 분): 로마의 젊고 용맹한 군단장이다. 승전 후 로마로 돌아와 리지아에게 첫눈에 반한다. 처음에는 전형적인 로마 귀족으로서 그녀를 소유하려 했으나, 기독교인들의 희생과 리지아의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기독교에 귀의한다.
리지아 (데보라 카 분): 리기족의 공주이지만 로마에 볼모로 잡혀와 은퇴한 장군의 양녀로 자랐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마르쿠스를 사랑하지만 그가 가진 폭력성과 이교도적인 모습 때문에 갈등한다.
네로 (피터 유스티노프 분): 광기와 예술적 허영심에 사로잡힌 로마의 황제이다. 네로 역을 맡은 피터 유스티노프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페트로니우스: 마르쿠스의 외삼촌이자 네로의 최측근으로, 세련된 화술과 지혜로 네로를 조종하며 조카 마르쿠스를 돕는다. 로마의 타락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마지막에는 네로의 폭정에 반발하여 자신의 방식대로 우아한 죽음을 택한다.
베드로: 예수의 수제자이자 사도이다. 로마에서 기독교인들이 처참하게 박해받자 신자들의 간청으로 로마를 탈출하려 한다. 그러나 길 위에서 환영으로 나타난 예수를 만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라고 묻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 순교한다.
우르수스: 리지아를 그림자처럼 지키는 거구의 호위무사이다. 엄청난 괴력을 지녔으나 독실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으며, 원형 경기장에서 황소와 맨손으로 싸워 리지아를 구해내는 명장면의 주인공이다.
로마의 제14군 군단장인 마르쿠스 비니키우스는 브리타니아와 갈리아에서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성대한 개선식을 갖는다. 그는 은퇴한 로마 장군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의 집에 머물게 되는데, 그곳에서 만난 리지아라는 리기족 인질에게 매료된다. 리지아는 리기 왕국(현재의 폴란드 지역)의 공주로서 인질로 로마에 끌려와 지금은 아울루스의 양녀로 있다. 아울루스의 가족과 리지아는 모두 독실한 기독교도로서 그들은 그날 밤 사도 바울을 맞이한다. 마르쿠스는 그 모습을 보고 놀란다.
마르쿠스의 숙부인 페트로니우스는 마르쿠스가 리지아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네로 황제를 설득하여 마르쿠스의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 리지아를 조카에게 주도록 한다. 리지아는 이 처사에 분개하지만, 결국 마르쿠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한편, 네로 황제의 광기는 점점 더해지고, 그의 행동은 더욱 비이성적으로 변한다. 마침내 그는 시를 짓기 위해 불타는 도시를 보고 싶다고 하면서 로마 시내에 불을 지른다. 불바다로 변한 로마에서 시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네로는 기독교인들이 불을 질렀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린다. 이 소문을 들은 로마 시민들은 기독교인들에 대한 원망이 극에 달한다. 이를 이용하여 네로는 모든 기독교도를 체포하여 감옥에 가둔다. 그리고 경기장에 굶주린 사자들을 풀어 기독교인들을 물어 죽이도록 한다.
수많은 로마 시민이 경기장을 꽉 메운 가운데 기독교도들이 경기장으로 끌려 나오고 곧 굶주린 수십 마리의 사자가 경기장에 풀어졌다. 사자들은 닥치는 대로 기독교인들을 물어뜯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해서 기독교인들은 집단으로 죽어 나간다. 그 모습을 본 페트로니우스는 네로에게 이런 식으로 처형한다면 죽은 기독교인들은 순교자로 칭송받을 것이라며 그만둘 것을 건의하지만, 네로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네로의 광기에 환멸을 느끼고 나중에 자신에게도 화살이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 페트로니우스는 친구들을 초대한 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네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는 스스로 손목의 동맥을 끊어 자살한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이 사랑에 빠졌던 노예 소녀 유니스를 해방해 주었지만, 그녀 역시 그와 함께 죽음을 택한다.
기독교 사도인 베드로는 몸을 피해 로마를 빠져나가다가 예수의 모습을 본다. 자신을 내려다보던 예수가 몸을 돌려 떠나자 베드로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라고 절규하고는 다시 로마로 돌아온다. 그는 체포되어 경기장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그는 그 속에서 마르쿠스와 리지아를 결혼시킨다. 얼마 뒤 베드로는 네로의 친위대가 조롱의 표현으로 고안한 처형 방식인 거꾸로 된 십자가형에 처해진다.
네로의 아내 포파이아는 마르쿠스에게 욕망을 느끼고 다가갔지만, 그는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화가 난 포파이아는 잔인한 복수를 계획한다. 마르쿠스가 보는 앞에서 리지아를 죽이려는 것이다. 리지아를 경기장 한복판의 말뚝에 묶고는 사나운 황소를 한 마리 풀어 넣는다. 마르쿠스는 황제의 관람석에 끌려가 강제로 이 모습을 내려다본다. 황소가 리지아를 향해 달려가자 언제 어디서나 리지아를 지켜주는 우르수스는 맨손으로 황소와 맞선다. 우르수스는 황소를 넘어뜨려 목을 부러뜨린다.
그 순간, 마르쿠스는 묶인 밧줄을 끊고 경기장으로 뛰어 들어가 리지아에게 달려간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네로는 그들을 죽이라고 엄지손가락을 밑으로 내리지만, 관람석에 있던 로마 시민들은 그 광경을 보고는 그들을 살려주라고 일제히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리는 사인을 보낸다. 그 모습을 본 네로도 어쩔 수 없이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려 그들을 살려주라고 한다.
마르쿠스와 리지아를 살려준 후 궁으로 돌아온 네로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는다. 신하들은 주위에 모여 네로에게 그들을 살려준 것은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네로를 추켜세운다. 그 말을 들은 네로는 화를 푼다. 이때 페트로니우스의 자살 소식과 그의 편지가 도착했다. 페트로니우스는 네로가 가장 신임한 신하이자 친구였다. 네로는 그 소식을 듣고는 슬퍼하면서 편지를 뜯어본다. 편지는 네로가 저지른 갖은 폭정과 악행을 준엄하게 꾸짖으면서 마지막으로 “당신의 모든 폭정과 악행은 참을 수 있지만, 당신의 그 엉터리 시만은 구역질이 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라는 말을 남긴다. 스스로 위대한 예술가라 자처하였던 네로는 이 구절을 보고 분노를 터뜨린다.
다른 한편 페트로니우스는 로마의 화제가 네로의 짓이란 사실을 알렸다. 화재의 진상을 알게 된 시민들은 격분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네로를 몰아내기 위하여 히스파니아 총독인 갈바가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군해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성난 군중들을 피해 황급히 궁전으로 돌아온 네로는 자신을 부추겨 기독교도를 처형하게 한 아내 포파이아를 목 졸라 죽인다. 이전에 네로의 정부였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는 악테가 나타나 네로에게 폭도들에게 살해당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면서 단검을 건네준다. 네로가 머뭇거리자 악테가 단검을 그의 가슴에 밀어 넣는 것을 도와주고는 자신도 죽는다.
마르쿠스, 리지아, 우르수스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들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시칠리아에 있는 마르쿠스의 영지로 떠난다. 길가에서, 베드로가 로마로 돌아올 때 남기고 간 지팡이에서 꽃이 피어난다.
이 영화에서는 초반부에 개선식 등에서 수만 명의 군중이 모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화려한 고대 로마의 시가지가 배경으로 비친다.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은 세트에서 촬영할 수 있었겠지만 컴퓨터 그래픽이 없었던 그 시절 이런 대규모의 군중이나 또 로마 시가지의 풍경 등은 어떻게 촬영하였을까?
이 영화의 촬영에는 당시 할리우드 황금기의 자본력과 아날로그 기술이 총동원되었다. 이 영화에서는 실제로 많은 엑스트라가 동원되었다. 이 영화 촬영에는 3만 명 이상의 엑스트라가 동원됨으로써,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투입된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으며, 이들을 위해 32,000벌 이상의 의상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로마 군단의 행진이나 원형 경기장의 관중 장면은 당시 복제 기술이 없었으므로 실제 사람들이 의상을 입고 그 자리를 꽉 채워 촬영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영화 촬영을 위해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치네치타(Cinecittà) 스튜디오에 실제 로마 시내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세트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로마 시내 전체를 촬영할 때는 단순한 배경 그림이 아니라, 카메라에 잡히는 거리의 건물, 다리, 광장 등을 실제 건축 자재를 사용하여 실물 크기로 지었다. 이 덕분에 배우들이 실제로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는 생생한 연출이 가능했다고 한다.
물리적으로 건설할 수 없는 원경(Background)이나 수십만 명의 군중이 필요한 장면은 매트 페인팅 기법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는 실제 장면과 유리 그림을 합성한 것으로, 커다란 유리판에 로마의 먼 배경이나 꽉 찬 군중을 정교하게 그려 넣고, 이를 카메라 앞부분에 배치한다. 그리고 유리의 투명한 부분을 통해 실제 세트와 배우들을 촬영하면, 그림과 실제 장면이 합쳐져 거대한 도시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로마 대화재 장면과 같은 특수 상황에서는 축소 모형이 활용되었다. 도시가 불타는 장면은 정교하게 제작된 미니어처(Miniature) 세트에 실제로 불을 질러 촬영한 뒤, 실제 배우들의 연기 장면과 합성하거나 교차 편집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또한, 가까이 있는 물체는 크게, 멀리 있는 물체는 작게 배치하는 강제 원근법을 통해 세트의 깊이감을 과장하여 더 웅장하게 보이도록 연출하였다고 한다.
네로 황제 시기 로마가 대화재로 전소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화재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 영화에서는 물론 오랫동안 네로가 로마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 사실처럼 전해 내려왔지만, 이는 역사적 증거가 부족한 전설적인 주장이다. 현대 역사학계의 주류 의견은 네로가 방화범이 아니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화재 소식을 듣자마자 별장에 있던 네로는 급히 로마로 귀환하였으며, 직접 진화 작업을 지휘하고 이재민들을 위한 구호 조치를 시행하였다. 그는 자신의 궁전을 피난처로 개방하고 식량을 제공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화재 이후 네로는 건축 시 가연성 물질 사용을 금지하고 도로를 정비하는 등 화재 예방 및 도시 재건에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방화범의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네로가 아무리 폭군이고 망상가라 하지만 자신의 국가에 스스로 불을 질렀다는 사실은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믿기 어렵다.
네로가 폭군으로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어머니를 비롯하여 첫 번째와 둘째 아내, 그리고 처남과 장모까지도 죽였다. 그런데 네로가 로마 화재와 관련하여 특히 비난받고 있는 것은 그가 로마의 복구 과정에서 황금 궁전을 건설하려는 등의 계획을 세우자 사람들 사이에 그가 자신의 궁전을 짓기 위해 도시를 불질렀다는 소문이 급격히 퍼졌기 때문이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네로는 화재의 책임을 기독교도에게 덮어씌우고, 그들을 잔혹하게 박해하였기 때문이다.
네로 황제가 후계자도 없이 자살하면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는 단절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제 자리를 놓고 각 지역 군단의 사령관들이 황제 자리를 놓고 무력으로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 결과 불과 1년 동안에 4명의 황제가 제위에 오르는 등 극심한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
히스파니아(지금의 이베리아반도 지역) 총독 갈바는 네로의 자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하여 원로원의 추대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지나치게 엄격한 통치로 인해 근위대의 불만을 사게 되어 오토의 사주를 받은 근위대원들에게 붙잡혀 살해당하였다. 통치 기간은 겨우 7개월에 불과하였다.
오토는 네로의 측근이었으나, 근위대의 지지로 갈바를 죽이고 황제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게르마니아 군단의 지지를 등에 업은 비텔리우스 군대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자, 더 이상의 내전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재위 기간은 불과 3개월이었다.
다음으로 황제 자리에 오른 사람은 비텔리우스로 그는 게르마니아 주둔군 사령관 출신이었는데, 오토를 물리치고 로마에 입성하여 황제가 되었다. 그는 유대 지방의 군단이 지지하고 있는 베스파시아누스와 극심한 대립상을 보였다. 베스파시아누스의 군대가 로마로 진격하자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했으나, 군대에 의해 붙잡혀 로마 시내에서 굴욕적으로 끌려다니다 살해당했다. 그의 재위 기간은 8개월이었다.
비텔리우스를 물리치고 새로운 황제가 된 베스파시아누스는 유대 지역에서 전쟁을 지휘하고 있던 뛰어난 장군이었다. 그는 동방 지역 군단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로마로 진격하였으며, 비텔리우스를 제거하고 마침내 권력을 장악하였다. 베스파시아누스의 집권으로 로마의 정치는 안정되고, 그는 이후 10년 동안 로마를 통치하였다. 그는 네로의 통치와 내전으로 피폐해진 로마 제국을 재건하는 데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