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식과 첸페이페이(鄭佩佩)의 대결
판타지 소설은 서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양에서도 옛날부터 여러 판타지 소설이 나왔다. 동양의 판타지 소설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가운데 하나인 <서유기>(西遊記)라 할 것이다. 동양의 판타지 소설의 역사는 만만치 않다.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金鰲新話)도 판타지 소설이라 할 수 있으며, 김만중의 <구운몽>도 역시 판타지 소설이다. 그리고 이 외에도 <전우치전>이나 <박씨 부인전>, <홍계월전>, <숙영낭자전> 등도 모두 전쟁 판타지 소설에 들어간다고 할 것이다. 일본도 가장 오래된 소설인 <겐지 이야기>(源氏物語)도 역시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다.
동양의 수많은 판타지 소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 서유기이다. 손오공을 필두로 한 삼장법사 일행의 갖가지 모험들은 판타지 소설이 갖추어야 할 모든 흥미로운 요소를 고루 갖추었다 할 것이다. 그래서 서유기에 관한 영화, 애니메이션은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이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수입된 홍콩 무협영화 <방랑의 결투>(大醉俠)에서 여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첸 페이페이의 인기가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올라갔다. 이러한 첸 페이페이의 인기를 이용하여 서유기의 이야기로 국내에서 제작한 영화가 바로 <손오공과 철선공주>이다.
<서유기>에서 손오공과 삼장법사 일행은 수많은 요괴들을 물리치면서 천축으로 향한다. 이들의 일행에 큰 난관이 닥친 것이 화염산이다. 8백 리에 이르는 화염산의 불길은 아무리 손오공이라 해도 뚫고 나갈 수가 없었는데, 화염산의 불을 끌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바로 철선공주가 가지고 있는 파초선(芭蕉扇)이다. 철선공주는 나찰녀(羅刹女)라고도 하며, 우마왕의 부인인데, 우마왕은 손오공의 의형제이기도 하다.
** 만화 <드래곤 볼>에서는 우마왕의 딸 치치가 손오공의 부인으로 나오고, 우마왕은 손오공의 장인이다. 그럼 철선공주는 손오공의 장모가 되는 셈인데, 족보가 좀 복잡하다. **
우마왕은 의형제인 손오공에게 파초선을 빌려주고 싶으나 철선공주는 손오공을 싫어한다. 그래서 가짜 파초선을 손오공에게 건네준다. 당연히 가짜 파초선으로 화염산의 불을 끌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하여, 손오공은 불을 끄려다가 혼이 나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철선공주로부터 파초선을 훔치려고 한다. 손오공은 우마왕으로 변신하여 철선공주를 속여 진짜 파초선을 훔쳐 화염산의 불을 끄고, 마침내 화염산을 넘는다.
이 영화에서 손오공 역으로는 박노식이 철선공주 역으로는 첸 페이페이가 연기하였다. 이 영화는 1967년에 제작되었는데, 당시로서는 드물게 특수촬영을 통해 손오공이 파리로 변신하고, 몸을 손가락보다 작게 하여 철선공주의 뱃속에 들어가 그 안에서 철선공주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리고 손오공은 부리는 여러 가지 마법을 특수촬영을 통해 재미있게 보내준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제작에 꽤 신경을 쓰고,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을 도입한 영화로서 영화를 감상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상당히 재미있었던 영화로 기억한다. 이 영화도 흥행에 성공했는데,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SF 영화이면서 또 여주인공인 첸 페이페이의 인기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다.
얼마 전 중국 무협영화 <와호장룡>을 감상하였는데, 그 영화에서 첸 페이페이는 악인인 <푸른 여우>로 등장한다. 아무리 매력적인 여배우라도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