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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Mar 16. 2024

조용한 다독임

1월, 내 안이 텅 빈 것 같은 기분에 시달렸다. 책이라는 내 안의 알맹이가 쑥 빠져나가 껍데기만 남은 기분, 휑한 마음 사이로 부는 바람이 시렸다. 자꾸 가라앉는 마음에 좋아하는 것들을 심어보아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쩌지 못하는 사이 닿아버린 마음의 밑바닥에서 갈구를 만났다. 다시 글에 몰두하는 나. 어디서 본듯한 글 말고 뻔하지 않은 글을 써내는 나를 원했다. 그렇다면 써야 했다. 쓰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 갈망 뒤에 떡하니 자리 잡은 한없이 빈약한 나의 세계가 방해했다. 아는 얘기를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에둘러 말하며 큰 체하고 싶지 않은데 내가 가진 것은 그 한계를 벗어나기엔 힘이 약했다.      

지금은 쓰기보다 읽어야 할 때였다. 책장을 정리하고 도서관 서가를 거닐며 비타민 챙기듯 내게 필요한 책을 담았다. 처음 발견한 건 #세계관만드는법  그 책을 따라 평소 읽고 싶었던 유유출판사 책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실컷 담아와 읽으며 2월을 보내고 3월을 맞았다. 지금은 조금씩 부풀어 오른 나를 느낀다. 나는 여전히 얄팍하고 바뀐 조건도 없다. 그런데 읽다 보니 뭐 괜찮아진다.      

박총 작가님의 <읽기의 말들> 참 좋았는데 <듣기의 말들>도 두말없이 여전히 좋다. 세 번째 책도 준비하신다고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말하기의 말들이었나... 나오면 챙겨봐야지. 재수 작가님의 <자기 계발의 말들>을 읽으면서 걷기를 너무 오래 쉬었다는 걸 깨닫곤 놀랐다. 날 풀리면 다시 걸어야지 했는데 3월이 왔는데도 예상했듯 못(안) 걸었다. 그러다 오늘, 요즘 읽고 있는 #눈이보이지않는친구와예술을보러가다 에서 “산책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입구인 것이다.”p260라는 문장을 읽곤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 모든 건 책이 건넨 조용한 다독임.


#듣기의말들 #박총 #유유 #들리지않는것까지듣기위하여

- 상대가 말하는 중에 치고 들어갈 기회를 엿보거나 말이 언제 끝날지 조바심을 낸다면 나는 듣지 않는 것이다. 이는 상대의 말을 경청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할 말의 재료나 배경으로 삼는 것이다. 남의 말을 안개꽃 삼아 내 말을 장미꽃으로 내세우려는 것이다. 경청은 내 말에 왕관을 씌우지 않는다. 경청은 상대방의 말에 베푸는 대관식이다. p165


#자기계발의말들 #재수

- 적극적인 걷기 생활을 이어 가며, 걷기를 생활에서 아예 제외하려 했던 과거의 어리석음을 돌아본다. 걷기는 그 자체로 길이다. 창작과 건강에 이르는 좋은 길. p41

- 쓰기는 결국 내 안에 무언가를 모으는 행위이다. 물론 발산하는 측면도 있지만, 단순히 배출이 목적이라면 굳이 글을 쓸 필요도 없이 말로 해 버리면 그만이다. - 사이토 다카시 <2000자를 쓰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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