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멀어졌는지 알지 못한 채 소원해진 한 사람. 내 책 ‘어떤 꿈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의 한 꼭지에 그와 관련된 경험을 썼다. 관계의 유한함, 최소한의 성의, 그럼에도 변치 않는 마음 같은 것들.
그 책의 마지막 퇴고를 하던 지난겨울, 단골카페에서 우연히 그와 마주쳤다. 이따금 상상했던 순간이 느닷없이 다가와 당황했고 생각보다 반가워서 놀랐다. 일행과 헤어진 그는 혼자 작업하던 내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왔다. 이 또한 의외였다.
우리는 만나지 못한 시간 동안 쌓인 이야기와 변화된 근황에 대해 한참 이야기 나눴다. 그래, 이래서 내가 이 언니를 좋아했지... 제법 길었던 만남의 공백이 무색하게 그 시간은 즐거웠다. 어쩌면 다시 연락하며 지내게 될지 모른다는 예감도 살풋 스쳐 지나갔던 것 같다. 2시간 가까이 이야기 나누느라 그날 작업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내 찜찜했던 뭔가가 조금은 산뜻해진 기분이라 괜찮았다. 곧 다시 만날 사람들처럼 다음을 기약하며 유쾌하게 헤어졌다.
그날 이후, 그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 또한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날의 2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좋았던 점만 확인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의 유연한 태도는 못 본 사이 미묘하게 변해있었고 쫓기듯 늘어놓는 그의 자랑은 낯설었다. 그날의 나 역시 그에게 어떤 실망을 주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간의 간극은 꽤 벌어졌고 그걸 메울 노력은 서로에게 무의미해졌다. 그걸 깨닫는 순간 이제야 진정한 끝을 맞이한 것 같았다. 놀랍게도 후련했다.
‘미우라 씨의 친구’ 속 미우라와 지카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 ‘옛날로는 돌아갈 수 없겠다 싶어서’ 멀어짐을 선택한 우리. 그걸 인정하자 내 책에 담은 우리의 전우애가 더욱 소중한 무엇이 되었다. 미우라 씨 역시 그 깨달음 뒤에서야 다른 관계를 받아들일 용기를 품는다. 나의 후련함도 어쩌면 그와 같지 않았을까. 마음속 그의 자리는 깨끗하게 비어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손 내미는 다른 친구가 놀러 와도 미안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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