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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현 Dec 04. 2018

시래기국 따위가 뭔데 해외 생활을 망치려 하냐?

내 감수성이 시래기 국으로 빠졌다



사회가 각박해지고 현실이 점차 힘들어지니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많은 젊은이들 입에 붙어 있음을 느끼고 있다.


한국을 떠나 말레이시아에 정착한 지 어느덧 2년 가까이 들어가고 있다.



군대에서 2년은 무진장 긴 시간이었지만 사회에서 2년은 아드레날린을 맞은 마린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듯하다.


외국에 나와 생활하면서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아니 해외에 나가 본 적 없는 사람들 마저도 알 만한 이야기가 있다.



해외에 나가면 가장 그리운 게 음식과 사람이란 것을.



어려서부터 맵고 뜨거운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애 입맛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요즘 입 맛도 잃어가느라 정말 이 생활에 대해 피곤함을 느끼고 있을 무렵, 우연찮게 100년 전통의 맛 집을 발견했다.



이 100년 전통의 맛집은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100년 동안 브런치 1개점만 오픈을 했다. 하지만 100년 동안 망하지 않은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 식당이 아니란 것은 음식을 먹으며 느끼게 되었다.



음식 가격은 3천 원 정도의 수준이었고, 이 가게에서 제일 잘 팔리는 메뉴를 시켰다.



음식이 식탁 위로 서빙이 되었고, 순간 살짝 놀랐다. 국 속에 담겨있는 내용물들이 시래기와 똑같기 때문이었다.


(좌) 현지 식당에서 나온 음식 (우) 한국 시래기 국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국물을 한 스푼 맛을 보았고, 시래기도 조금 건져서 입에 넣어 보았다.


맛을 보니 영락없는 시래기였다.


다만 아쉬운 점은 된장 한 숟갈 섞었다면 더 깊은 맛을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재 입맛).



난 어릴 때부터 시래기를 정말 정말 싫어했다. 그 시래기를 쓰레기라는 단어와 섞어가며 사용했었고, 아버지에게 시래기 때문에 대든 적도 있었다.




"이게 시래기인지 쓰레기인지 먹기 싫단 말이에요!!"




그리고 엄격한 아버지에게 힘으로 제압당한 나는 강제로 끌려와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시래기를 먹었던 기억도 있다.


그런 시래기를 지금 나는 매우 반갑게 먹고 있었고, 그 맛과 그 향이 타지에서 떨어진 이 곳에서 정말 행복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한 참을 먹으며 미소 짓고 있는 내 모습을 깨닫게 되었고 머릿속에는 아버지가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나중에 너네도 어른이 되면 시래기도 맛있다고 할 거야!"



나도 벌써 어른인 건가..



갑자기 머리가 띵 했고, 고 끝이 찡했다.



그때 아버지께서 하셨던 그 말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며 되돌아 갈 수 없는 그 날이 그리워지고, 그 순간이 그리워지는 듯했다.



별 것도 아닌 걸로 마음이 뭉클해지네..


이런 날은 타지 생활에 지쳐 고향으로 되돌아 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드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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