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조율하는 동서양의 지혜
칼 융은 인간의 심리 작용을 이해하기 위해 네 가지 기본 기능을 제시했다. 감각(Sensation), 감정(Feeling), 사고(Thinking), 직관(Intuition). 이 기능들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방식이며, 누구에게나 고유한 선호의 경향을 이룬다. 융은 이 네 기능이 자아(ego)의 통제 아래 조화를 이룰 때, 인간은 심리적으로 성숙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퇴계 이황의 ‘심통성정’ 개념이 이러한 융의 심리 구조와 놀라운 대응 관계를 맺는다는 점이다.
퇴계는 ‘심(心)이 성(性)을 통제하고, 성은 정(情)을 낳는다’는 구조를 통해 인간의 감정이 단지 외부 자극의 결과가 아니라, 본성에서 비롯되며 마음에 의해 조율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감정은 억제할 대상이 아니라 인식하고 조율해야 할 흐름이며, 마음은 그 중심에서 전체를 통할하는 존재다. 이는 융이 말한 자아(ego)가 네 가지 심리 기능을 통합하고, 더 나아가 자기(Self)라는 심리적 전체성을 지향한다는 점과도 깊이 닿아 있다.
감각은 현실의 오감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능이다. 이는 퇴계가 말한 감정의 구체적 표현, 즉 슬픔의 눈물이 나 분노의 신체 반응과 같은 현상과 맞닿는다. 감정은 좋고 나쁨, 호불호를 판단하는 기능으로, 퇴계의 성정(性情)에 해당한다. 사고는 사물 간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파악하는 힘인데, 이는 퇴계가 강조한 ‘궁리(窮理)’의 이성적 사유와 같다. 마지막으로 직관은 무의식의 통찰과 상징을 포착하는 능력으로, 퇴계의 마음공부 속에서 감정의 흐름을 읽고 조화시키는 동양적 직관과도 통한다.
퇴계의 핵심 수양 개념인 ‘경(敬)’은 이 모든 감정과 심리 기능의 흐름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며 조율하는 태도다. 이는 융이 말한 ‘자기 통합’ 또는 ‘개성화 과정’과 유사하다. 융은 감정과 사고, 감각과 직관의 불균형이 심리적 갈등을 낳는다고 보았고, 퇴계는 감정이 중용의 상태를 벗어날 때 인간은 혼란과 왜곡에 빠진다고 보았다. 둘 다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읽고 중심을 회복하는 것’이 인간의 과제라고 본 것이다.
결국, 퇴계와 융은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하고 있지만, 인간의 마음과 감정, 이성과 직관을 통합하려는 동일한 목표를 향하고 있었다. 감정은 억눌러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마주하고 조율해야 할 에너지이며, 그 중심에는 깨어 있는 ‘마음’ 혹은 ‘자아’가 있어야 한다. 심통성정은 마음이 주체가 되어 감정을 조화롭게 다스리는 법을 가르치고, 융의 네 가지 기능 이론은 다양한 심리 작용들이 자아의 주시 아래에서 통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동양과 서양이 서로 다른 언어로 가리킨 같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읽고 중심을 잡는 것—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공부이며, 인간 내면을 돌보는 리더십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