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잃어버린 사회가 잃은 것들

by 이재현

죽음이 사라진 사회는 무엇을 얻었을까.

위생적이고, 효율적이며, 감정적으로 덜 불편한 일상을 얻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대가로 잃은 것들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삶의 깊은 층위에서 서서히 작동한다. 죽음을 잃어버린 사회는 단지 한 주제를 잃은 것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감각들을 함께 잃었다.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시간의 밀도다. 끝이 있다는 인식은 시간을 농축한다. 유한함을 아는 사람은 하루를 대충 넘기지 않는다. 반면 죽음이 지워진 사회에서 시간은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소비된다. 바쁜 일정 속에서 우리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시간이 무엇을 위해 쓰이고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죽음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시간은 길어졌지만, 얕아졌다.


다음으로 잃어버린 것은 관계의 진정성이다.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은 말의 무게를 달라지게 하고, 침묵의 의미를 깊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을 의식하지 않는 사회에서 관계는 쉽게 소모된다. 오해는 미뤄지고, 화해는 나중으로 남겨진다.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우리는 정작 지금의 관계를 놓친다.


또 하나 잃어버린 것은 애도의 문화다. 애도는 단지 슬퍼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상실을 삶 속에 통합하는 시간이다.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사회는 슬픔을 처리하지 못한 채 다음 단계로 건너뛴다. 그 결과,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얼굴로 돌아온다. 무기력, 냉소, 분노, 혹은 이유 없는 피로로 남는다. 죽음을 말하지 않는 사회는 슬픔을 표현할 언어를 잃고, 그 언어의 부재는 마음을 고립시킨다.


죽음의 부재는 겸손도 함께 가져간다. 죽음은 인간의 한계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어도, 결국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죽음을 잃어버린 사회에서는 성취와 성장의 서사가 과도하게 부풀려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사람들은 지치고, 패배는 곧 존재의 실패처럼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것은 의미를 묻는 질문이다. 죽음은 언제나 삶의 의미를 묻는 문을 연다.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지금의 선택은 어디로 나를 데려가는가. 이 질문들은 불편하지만 필수적이다. 죽음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이런 질문들이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대신 더 빠른 성과, 더 분명한 결과가 요구된다. 그러나 의미 없는 효율은 결국 방향을 잃는다.


죽음을 잃어버린 사회는 겉으로 보기에 활기차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설명되지 않는 공허가 흐른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려 하지만, 무엇이 비어 있는지는 정확히 말하지 못한다. 그 빈자리는 죽음이 남긴 자리다. 그리고 그 자리는 곧, 삶의 깊이가 빠져나간 자리이기도 하다.

죽음을 다시 삶의 언어로 불러오는 일은 후퇴가 아니다. 그것은 회복이다.
죽음을 되찾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을 잃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불길한 이야기’를 피하는 집단 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