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생 “나”라고 부르며 살아간다. 그러나 정작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면, 쉽게 말문이 막힌다. 이름일까, 성격일까, 직업일까, 혹은 타인이 나를 기억하는 방식일까. 평소에는 분명하다고 느꼈던 ‘나’는, 질문을 받는 순간 여러 조각으로 흩어진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정체성은 덧붙여진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역할, 지위, 관계, 성취, 소속. 부모라는 역할, 직업이라는 이름, 사회적 평판과 타인의 기대. 이 요소들은 삶을 살아가는 데 실질적인 틀을 제공한다. 문제는 우리가 어느 순간부터 그것들을 나 자체로 착각하기 시작한다는 데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말속에는 종종 조건이 숨어 있다.
무언가를 해낼 때의 나, 인정받을 때의 나, 쓸모 있을 때의 나.
그 조건들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정체성도 안정되어 보인다. 그러나 조건이 흔들리는 순간—실패, 상실, 은퇴, 병—‘나’라는 감각도 함께 흔들린다. 이때 우리는 당황한다. 내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사실 사라진 것은 ‘나’가 아니라, 나를 설명하던 이야기다. 우리는 자신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살아간다. 출신, 선택, 성공과 실패, 관계의 연대기. 그 이야기는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나를 가두는 틀이 되기도 한다. 죽음은 그 이야기를 끝맺는 사건이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이 이야기가 끝나면, 나는 남아 있는가?”
정체성을 이루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기억이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연속성을 느낀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는 이유도 기억 덕분이다. 그러나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잊히고, 왜곡되고, 사라진다. 기억에 의존한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기억이 흐려질수록 ‘나’의 경계도 흐려진다.
여기에 감정과 생각이 더해진다. 우리는 흔히 “내 생각”, “내 감정”이라고 말하지만, 생각과 감정은 끊임없이 변한다. 분노했다가 후회하고, 확신했다가 의심한다. 만약 정체성이 생각과 감정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감각이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죽음의 문턱에서 더 날카로워진다. 역할도, 기억도, 생각도, 감정도 하나씩 내려놓아야 할 때—그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무언가가 있는가. 이 질문을 피해 온 사람에게 죽음은 붕괴로 느껴진다. 반대로 이 질문을 삶 속에서 여러 번 마주한 사람에게, 죽음은 완전한 낯섦이 아니다.
‘나’라는 정체성은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임시로 엮어진 구조물에 가깝다. 그것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상황에 따라 변한다. 문제는 그 구조물을 영원한 것처럼 붙잡고 살아갈 때 발생한다. 죽음 공포의 상당 부분은, 이 임시 구조물을 절대적인 것으로 오해한 데서 비롯된다.
정체성을 다시 묻는 일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더 넓게 이해하는 일이다. 역할과 이야기, 기억과 감정 너머에 무엇이 남는지를 탐색할 때, ‘나’는 더 이상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알 때, 무엇이 무너져도 괜찮은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죽음은 이 질문을 한꺼번에 던진다.
그러나 삶은 우리에게 그 질문을 조금씩 연습할 기회를 준다.
‘나’라는 정체성을 다시 묻는 순간부터, 두려움은 서서히 성찰로 바뀌기 시작한다.